[영화觀] 네가 누워있을 때
입력 : 2023. 12. 08(금) 00:00수정 : 2023. 12. 11(월) 09:05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영화 '빅슬립'
[한라일보] 잠만 잘 자도 살 것 같다고 생각이 들 때가 꽤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면의 밤에는 잠들어 있어야 할 근심들이 무성하게 피어나고 후회할 일들로 시간을 죽이며 썩 유쾌하지 못한 새벽을 보내게 된다. 카페인 때문일까,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 때문일까 아니면 낮에 충분히 햇빛을 쬐지 못한 게으름 때문일까. 아마도 복합적인 무엇이겠지만 뇌도 몸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한 채 늦은 후회로 점철된 또 한 번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건 복에 겨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적당히 따뜻하게 또는 시원하게 온도를 조절할 수 있고 내 몸 하나를 충분히 누일 수 있는 방 안의 침대에서 하고 있는 고민이니 말이다. 이 같은 시간에 누군가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방 밖을 헤매며 잠 들 곳과 시간을 간절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안전하고 깊은 잠이 누군가의 삶을 어떻게 다독일 수 있는지를 그리는 영화가 있다.

 김태훈 감독의 영화 '빅슬립'은 내 몸 하나 누일 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소년 길호가 그런 자신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 기영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낯선 이들이 만나서 서로가 되는 이야기를 특히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 간단한 영화의 줄거리만으로도 구미가 당기는 영화였다. 거리를 헤매는 가출 청소년 길호는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성실한 생활인 기영과 우연히 기영의 집 앞에서 처음 만나게 되고 영화의 마지막은 두 사람 모두가 기영의 집 거실에 누워 잠든 모습으로 끝이 난다. 둘 모두 각기 다른 사연이 있고 그 사연들은 때로는 포개진다. 가족이라는 구성원들이 모인 집이라는 공간에서 동떨어진 채 홀로가 되어버린 두 사람은 타인의 공간을 편안하게 넘나들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렇게 사랑받지 못한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거칠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세상과 접촉면이 넓어진 이들은 다정을 처방처럼 쓸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길호와 기영 모두 서걱거리는 자신과 부대끼는 자신 밖의 삶들로 인해 매일의 단잠이 요원한 이들이다.

 영화 '빅슬립'은 좀처럼 온도를 높이지 않는 영화다. 한 번의 호의를 운명 같은 인연으로 그리지 않고 서툰 포옹이나 눈물의 화해 또한 이 영화에는 없다. 큰 사건 앞에서는 덤덤하고 작은 변화 앞에서는 서툰 이들의 작은 전진만이 있는 영화다. 어쩌면 '빅 슬립'은 더 길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 타인들 사이에 놓인 상호 간의 예열의 기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했다. 대신 '빅 슬립'은 고단한 일상을 버틴 노곤한 몸을 지닌 이들을 다양한 방향에서 마주한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집을 나온 뒤 가출팸 무리와 절도를 일삼는 길호의 잦은 머뭇거림을 발견해 내고 병환으로 누워 있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돌보는 새엄마와 매끄럽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기영의 묵묵하고 수고스러운 움직임을 묵묵히 쫓는다. 누군가가 여린 속살을 드러내는 일은 그것을 기어코 발견한 이들 앞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 '빅슬립'은 알고 있다. 서로의 상처를 캐묻지 않고 알게 된 둘은 드디어 친구가 될 수 있는 조짐 앞에 선다.

 그렇게 하루의 틈을 열고 들어온 타인의 곁에 누워 불안에 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신에게도 허락한다. 잠깐 깨어나도 놀라지 않고 다시 잠들 수 있는 여유는 두 사람이 갖지 못했던 것이다. 내내 조심스럽게 인물들의 측면과 후면을 살피던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미동 없이 멈춘 채 잠에 들고 깨어나고 다시 잠에 드는 인물들을 편안하게 바라본다. 이 작은 평화가 지속 가능할지는 약속하기 어렵다. 다만 의심과 번뇌 없이 잠에 든 시간이 만들어낼 가능성이 희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을 관객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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