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32)조천읍 함덕리
입력 : 2023. 01. 13(금) 00:00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제주의 가치를 높여주는 보석 같은 마을
[한라일보] 먼저 비취빛 바다가 떠오르는 마을이다. 방대하게 펼쳐진 고운 모래가 바닷물과 만나 빚어내는 광선의 환희. 부지런한 파도가 눈부시게 넘실거리는 곳. CNN이 선정한 아름다운 해수욕장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해변이 주는 느낌은 필경 세계적이다. 제주에 살고 있어서 자주 보는 곳이라 그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면 함덕해수욕장이 첫 번째 일 것이다. 지구촌의 숱한 모래해변과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 경관과 청정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덕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뜻을 마을 이름에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서우봉이 동쪽에 후덕하게 자리하고 있다. 넓은 농경지와 풍부한 바다자원이 토대가 되어 대대로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살아왔다. 전국에서 리 단위로는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농어촌 지역 웬만한 읍면보다 인구가 많은 7285명(2022년 12월 31일 기준)이다.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이 함덕리 영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각 구장들이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다섯 개의 구로 이뤄져 있는 마을 조직. 지금도 계속해서 대형 숙박시설이 지어지고 메이저 요식업체들이 입점하고 있으니 투자가치가 얼마나 높은 곳인 지 상업지역 간판들만 둘러봐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 원로들의 말씀에 의하면 후한서에 기록된 주호인들이 살던 시기부터 함덕은 교역의 중심지였다. 1237년 여몽연합군이 삼별초를 토벌하기 위하여 상륙한 곳이 함덕해변이었다. 그 때 모든 시설과 자료들을 불태워서 이전의 역사는 불타버린 비운의 마을이라는 것이다. 여몽연합군의 상륙지점. 해석하면, 병력을 동원한 집중의 원리에 의하여 탐라의 중심지에 집결한 병력과 경제적 위상을 치지 아니하고서는 삼별초의 지배력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탐라시대 함덕의 위상을 입증하는 지명이 남아있다. 지명은 불태울 수 없었으니. 제주목 규모의 읍성이었음을 보여주는 다섯 개의 문. 동문이었던 '새날문' 서문이었던 '금성문' 남문이었던 '마령문' 북문이었던 '놉양문' 그리고 '병문'을 합하여 다섯 개의 문이 있었다. 한반도를 지배했던 왕조들의 시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탐라국의 어떤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함덕리의 전통적 문화정체성이며 정신적인 공동체의식을 보여주는 미담이 있다. '함씨 할망'의 고마움. 그 옛날, 해변 구조가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가려면 반나절을 돌아서 걸어가야 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인근 국밥집 함씨 할망이 지혜를 냈다. "150보가 되는 물가에 돌다리를 놓아야 하니 큰 돌덩이를 들고 와서 빠트리면 술이든 국밥이든 한 사발을 주겠다." 흉년에 그냥 밥을 나눠준 것이 아니라 배고픈 마을 사람들의 자존심까지 어루만지며 7년동안 꾸준하게 돌을 쌓게 하여 결국 모든 사람들이 쉽게 건너서 시간절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고귀한 스토리텔링 자산이다. 이 이야기가 함덕이라는 마을 명칭에 끼친 영향도 크다고 한다.

함덕리 한명용 이장에게 마을공동체의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세 글자로 대답했다. "추진력" 조상 대대로 함덕 사람들의 기질은 모여서 하기로 결정된 일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행동으로 보여주지 아니하면 어떤 확신도 갖지 못한다는 것. 오늘의 발전된 마을의 위상은 그러한 추진력공동체의 유전적 기질을 실천하여 이룩한 성과라고 했다. 숱한 난관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목표에 도달 할 수 있었던 저력이 다가오는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확신. 마을의 번창은 개방성에서 찾으려 했던 조상들의 정신적 유산이 오늘의 함덕을 낳고 키웠다. 함덕 해변에 끊임없이 드나들던 상선들을 통하여 외부와 실질적인 교류를 이어왔던 그 실용적 마인드가 아직도 흐르고 있는 마을. 배타성이 있는 곳에 상업은 발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오랜 역사적 경험으로 터득한 사람들이기에 오늘의 발전이 이룩된 것이리라. 세계화시대에 폐쇄성으로 경직된 사람들이 있다면 함덕리가 가지고 있는 유연한 수용능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

함덕리 주민들이 생각하는 미래상은 '제주 최고의 체류형관광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관광객들이 오래 묵어야 소비도 늘고 지역경제도 활발하게 움직여 궁극적으로는 마을공동체 운영과 발전에 동력이 될 것이라는 사실. <시각예술가>





어느 집터, 그 세월의 단면도


<수채화 79㎝×35㎝>



주제를 부각하기 위하여 가끔 이런 스타일의 그림이 부득불 필요할 때가 있다. 무대에서 모두 떠들면 그건 공연이라고 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집담 뒤에 건물들은 판화적 개념으로 단색화 처리하여 주인공의 메시지 전달 위치를 설명하는 역할로 단순화시켰다. 함덕리 주민이라면 뒤에 보이는 집들의 외곽선만 보고도 대충 위치를 짐작할 것이다. 이 큰 마을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의미 있는 풍경을 찾다가 길가에 잇닿은 집터 공간. 철거가 이뤄진 상태다. 하지만, 집담이 있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지난 세월의 타임캡슐이 돼주고 있는 것. 시멘트가 서민들의 생활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된 1970년대 초 이전, 흙으로 돌틈을 막으며 쌓았던 초가 벽의 흔적이 벽이었던 곳 속에 보이고 있다. 최소 두 세대 전에 있었던 초가집 벽에 시멘트를 바르고, 필경 지붕을 개량해서 살았을 것이다. 저 집에서 뛰놀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놀라운 것은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건물 벽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같이 힘을 모아야 운반과 이동이 가능했을 그 무게. 마치 동양화의 여백처럼 집터이자 마당을 화면 가득 여운으로 남겼다. 농도에 의한 원근감으로 공간미를 충족시키고. 건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다. 그렇다면 이 풍경속에 있었던 건물은 가족사가 되는 것이다. 이 공간을 그냥 놔두지 않을 터. 다시 어떤 새로운 역사가 지어지나? 끊임없이 발전하는 함덕리의 오늘을 과거 속에서 그리려 하였다.





큰단물의 의미


<수채화 79㎝×35㎝>



아이러니란 이런 것, 눈부시게 밝은 모래 해변에 현무암은 상대적으로 어두워야 함에도 오히려 태양광선의 내리쬐는 강도를 몇 배 더 증폭시켜준다. 그 실증적 풍광이 여기다. 용암이 흘렀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투뮬러스 지대에 용천수가 솟아나고 있음을 발견한 옛 함덕리 조상들은 생존에 필요한 식수원으로 활용하였을 것이다. 이 귀한 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돌담을 견고하게 쌓고. 해변 풍광과 함께 하는 그 모습이 너무도 매력적이다. 어떤 치장도 없고 그냥 현실적인 선택에 의한 실용적 단순미. 자세히 보면 파도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화면 왼쪽 파도가 밀려오는 곳에는 용암의 흐른 자국이 확연한 암반이고 오른쪽은 깨져서 밀려난 돌들이 널려 있는 상황이다. 모를 일이다, 수 백 년 전에 저 용천수 주변에 쌓여 있던 돌들이 파도에 무너져 널려있는 것은 아닐까? 바닷물과 만나 옥색 바다를 만드는 모래. 거기에 정오의 햇살을 받는 현무암. 그 속에서 솟아나는 용천수. 제주섬 해변의 숱한 바닷가 담수원들이 있으나 이런 배경색과 대비되어 시각적 풍요를 형성 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 시대에 풍경이 가지는 차별성은 또 하나의 소중한 미의식으로 다가온다. 해수욕장이라는 공간 속에 마치 하나의 조형물처럼 조상들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저 둥근 물공동체 울타리를 그리려 하였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원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다양한 포토존의 역할을 지닐 수 있도록 출중한 사진작가들의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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