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가족은 왜 '건강가정'이 될 수 없나요"
입력 : 2023. 05. 14(일) 11:27수정 : 2023. 05. 16(화) 17:32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14일 거리 캠페인 나선 제주한부모회 '해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양육비 대지급제 촉구
한부모 차별·편견 여전… "프레임 달라져야"
제주한부모회 '해밀'이 14일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등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강희만기자
[한라일보] "요즘엔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한부모면 어떠냐는 말을 많이 해 주세요. 한부모여도 괜찮다고요. 그런데 뒤에선 또 다른 말이 들리기도 하죠. '저러니 이혼녀가 됐겠지'라는 말이에요."

제주한부모회 '해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진서연(45) 씨가 말했다. 서연 씨는 한부모가족 당사자다. 한부모여서 겪었던 일은 그에게 큰 상처가 됐다. 20대 초반부터 살던 곳을 떠나 제주로 오게 된 것도 근거 없는 소문과 편견 때문이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제주로 간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너무 무모한 거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그런데 거의 도피하다시피 제주로 오게 됐어요. 이혼을 했다는 이유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말까지 소문으로 퍼지게 되면서죠. 씀씀이가 헤퍼서 돈 한 푼 못 받고 이혼을 당했다느니 누군지 모르는 씨로 임신을 해서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느니 말이에요. 제 얼굴도 모르는 동네 사람들까지 그런 말을 하니 더 이상 그곳에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서연 씨의 사연은 우리 안의 한부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여전하다는 걸 드러낸다. 제주한부모회 해밀(이하 해밀)이 14일 거리 캠페인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형태의 가정을 '정상'과 '비정상', 두 개의 프레임으로만 바라 보게 하는 사회를 향한 목소리다. 때마침 지난 10일은 국가기념일인 '한부모가족의날'이었다. 이번 캠페인에 대한 이야기를 서연 씨에게 들어 봤다.

제주한부모회 '해밀'은 한부모가족을 향한 편견과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해체 가족은 '문제적 가족'인가요?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에는 가족의 정의가 이렇게 내려져 있다.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제8조), '가족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9조)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런 가족에 대한 정의가 바뀌지 않으면 법률혼,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이혼이나 사별 등으로 가족이 해체된 경우에는 '문제적 가족'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해밀은 말한다. 현행법이 오히려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이를 낳기 전에 만삭 사진을 신청하는 이벤트가 있었어요. 막내가 뱃속에 있을 때 신청을 했는데, 당첨이 됐다고 연락이 왔죠. 그래서 사전에 얘기를 했어요. 아이 아빠는 없고, 두 아이와 함께 찍겠다고요. 그랬더니 바로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 아빠랑 찍는 게 원칙이면서요."

서연 씨가 겪었던 이 일은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드러낸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가 함께하는 가족의 모습에서 벗어나면 어디에도 쉽사리 낄 수 없게 된다. 한부모가족만이 아닌 미혼부·모 가족, 조손가족, 위탁가족, 1인가족, 동거가족 등도 예외는 아니다.

법이 정한 '가족'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면 아이를 낳는 것부터가 걱정이다. 현행 '출생신고제' 안에선 법적 부모만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연 씨는 "혼인신고가 안 돼 있으면 출생 신고조차 할 수 없는 건 큰 문제"라며 "(아이를 낳는) 엄마 입장에선 별 문제가 아니지만, 미혼부의 경우 실제 아이의 아빠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법원의 확인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지금의 제도에선 "태어났는데 태어나지 않은, 그림자 같은 아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서연 씨는 말한다. 최근 전국적으로 '출생통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것도 출생등록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해밀은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이 부모의 법적 지위나 출신지와 무관하게 모두 출생 등록될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가 도입, 정착돼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고 아동이 원가정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14일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캠페인을 진행하는 제주한부모회 해밀. 이들은 양육비 대지급제 실시 등을 요구했다. 강희만기자
|양육비 안 줘도 그만?… 부담 짊어지는 한부모

해밀은 '양육비 대지급제'도 촉구하고 있다. 자녀 양육에 대한 의무는 모든 부모에게 있지만, 비양육자가 이를 지키지 않아도 소송 외에는 손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서연 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2016년에 법적으로 이혼했지만 양육비를 받기 시작한 것은 2021년쯤부터다.

비양육자인 전 남편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2019년 강제집행을 받고도 2년간 더 양육비를 내지 않았다. 이전까지 경제적 부담은 오로지 서연 씨가 짊어져야 했다. "월급은 한정돼 있으니 투잡에 쓰리잡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고된 일에 잠은 항상 부족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방치"되는 악순환이었다고 서연 씨가 말했다.

'양육비 대지급제'는 한부모가족이 그와 같은 문제를 겪지 않도록 하자는 거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대신해 국가가 먼저 양육비를 지급하고 비양육 부모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이를 회수하는 제도다. 이미 독일, 스웨덴, 핀란드에서 시행하고 있다. 한부모는 비양육자를 상대로 소송 부담을 덜 수 있고, 아동은 정기적으로 양육비를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해밀은 "아동이 법앞에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며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비를 국가가 대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양육비 선지급제의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한'부모, 하나로도 크고 가득해요"

해밀은 2020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2021년 7월에 정식으로 꾸려진 도내 한부모단체다. 현재 한부모 당사자와 비당사자를 모두 포함해 약 30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 중에 한부모는 10명 안팎이다. "'한부모'라고 당당하게 말은 하지만 위축돼 있다"는 서연 씨에게도 앞으로 나서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현실이 그를 움직였다.

"한부모들이 조금 더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비당사자 분들이 한부모를 위해 활동해 주는 게 정말 감사하고 좋지만, 우리의 목소리를 제일 잘 낼 수 있는 것은 당사자일 테니까요. 저희가 당장 법을 바꾸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도 꾸준히 목소리를 낸다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게 해밀이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해요."

해밀이 여는 캠페인은 오늘(14일)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진행된다. '한부모'의 '한'이 한 명이라는 부족함이 아닌, '하나로도 크다, 가득하다'는 의미를 전할 예정이다. 어떤 형태의 가족이라도 차별이 없어야 함을 알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캠페인은 이날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이어진다.

제주한부모회 해밀은 14일 '한부모가족의날'(5월 10일)을 기념한 캠페인에서 '한부모'의 '한'이 한 명이 아닌 '하나로도 크다, 가득하다'는 의미를 전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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