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25시]흔한 것의 재발견
입력 : 2013. 07. 30(화) 00:00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고층 건물의 계단을 오른다. 한 여름 더위에 땀이 비 오듯 흐르지만 시원한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여의치 않다. 전기 없는 생활의 한 장면. KBS TV 예능프로그램 '인간의 조건' 이야기다. 여섯 남자가 전기 없이 사는 모습에 보는 사람까지 불편해진다. 평소 당연한 듯 누려왔던 것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와 닿는다.

이처럼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것일수록 그 값어치를 잊고 살 때가 많다. 누군가에겐 바람이 부는 오름, 바다 등이 "삽시간의 황홀"로 다가가지만 그 풍경이 익숙한 사람들에겐 그저 그런 '일상'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제주사람보다 제주를 더 사랑했다고 불리는 故 김영갑 사진작가는 "뭍의 것들이기에 (제주의) 일상적인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가 '뭍의 것'이었기에 섬사람들이 지나쳐버린 아름다움을 더 많이 담을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제주사람들이 밭담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너무 흔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지난 6월 밭담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와 관련해 제주를 찾은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관계자와 동행한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밭담은 제주의 농업을 키워온 유산으로 평가 받으며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정작 도민들은 이에 무심한 것 같다는 말일 것이다.

너무 흔해서 그랬을까. 그의 말마따나 밭담의 가치는 그동안 크게 조명 받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농업환경의 변화와 도시화 등으로 인해 위협요인이 늘어나 밭담 훼손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제주 전역에 걸쳐 형성돼 왔기에 한 번 파괴가 시작되면 그 속도를 걷잡을 수 없을 거라고 진단한다. 더 늦기 전에 지역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보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할 때다. 어떤 이는 말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르다."

<김지은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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