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7)성산읍 오조리
입력 : 2014. 09. 16(화) 00:00
대규모 양어장 마을에 환원돼 공동체사업 추진 열망
성산일출봉에 떠오르는 아침해가 성산보다 먼저 비치는 마을 오조리 전경.
새마을운동때 마을안길 확장 때도 제주의 전통 취락구조 고집한 마을
1970년대 자립마을사업으로 힘모아 식산봉 인접지에 대형 양어장 조성
국가 소유로 발전계획 수립 걸림돌
외부서 들어온 주민이 절반에 육박
마을자원 활용한 정체성 유지 고민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은 오조리다. 땅값으로만 그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을 이름을 가지고 5조원을 이야기하면서 웃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마을. 실은 吾照里, 멋스러운 한시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성산 일출봉에 떠오르는 아침 해가 성산보다 먼저 비치는 곳, 해가 먼저 내게 비치는 마을이라고 해야겠다. 일출봉 아래 마을에서는 성산 일출봉에 가려져서 아침 해를 오조리보다 늦게 볼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빌어 마을 이름을 삼은 것이다.

대자연의 품 속에서 집과 올레가 절묘하게 구성된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옹기종기 붙어있는 가옥들의 소박한 모습. 이웃의 정을 풍겨주는 제주의 전통적 취락구조가 남아있는 곳이다. 새마을운동 시기에 많은 마을들이 마을 안길 확장사업을 통하여 기존의 취락형태를 바꿨지만 오조리는 그대로 유지시켰다는 것이다. 연구 대상이다. 살아있는 제주의 전통적 취락구조 박물관 오조리. 남들처럼 살아야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오조리의 마을 모습은 분명하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조상들의 거주형태와 이웃과의 관계를 공간적으로 풀어내는 놀라운 품격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박태보(80) 노인회장이 전하는 설촌 시점은 650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는 지금 성산고등학교 부근에 있던 마을이 왜구의 침입이 많아서 안쪽에 조금 더 안전한 지역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유난히 군진과 관련된 지명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 시기에 속칭 안가름에 의병들이 진을 치고 왜적과 싸웠다. 식산봉이라는 이름도 그 당시에 이 오름을 곡식이 쌓여져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군사 수가 많은 것처럼 기만전술을 펼쳤기 때문에 왜군들이 상륙을 못했다고 해서 食山峰이다. 먹을 것이 산처럼 쌓여 있다니, 이 식산봉을 활용하여 마을 주민들이 두고두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지나 않을까.

학술적으로 보면 더욱 흥미롭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47호인 황근자생지 및 상록활엽수림이기도 한 식산봉은 화산의 분출에 의해 형성된 규모가 작은 오름이다. 과거 제주도 동부 저지대의 원식생이 자생하고 있는 유일한 지역. 이 작은 봉우리에서 조사된 유관속식물만 50과 91속 108종이라고 하니 식물의 보고라고 할 만하다. 문제는 식산봉과 인접하여 안쪽에 있는 양어장이다. 숭어와 자연산 뱀장어를 키운다는 곳이다. 1970년대 초 자립마을 사업으로, 당시 마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다치는 사람이 속출하면서 이룩한 양어장이다. 꿈에 부풀어 있었다고 한다. 자립정신을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마을공동체의 자산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일심 단결하여 동원 인원 대비 엄청난 규모의 양어장을 조성한 신화적 장소다. 그랬더니 행정적으로 오조리 소유가 아니라 국가소유가 되어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자산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변변한 마을공동체 수익사업이 없는 오조리의 입장에서는 이를 활용하여 관광사업과 연계시키고 싶어도 이 나라 정부는 오조리마을 주민들에게 양어장 관리만 하면서 살아가라고 하는 상황이다.

성산읍 오조리 마을에 있는 식산봉과 1970년대 초 마을주민들이 자립마을사업으로 조성한 양어장 풍경
1970년대 사고방식으로 오조리 사람들의 행복추구권을 묶어놓은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홍근수 오조리장은 묻고 있다. "마을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양어장 물고기만 가지고 되는 세상이냐?"고. 행정의 형식 논리에 가둬져 생긴 속병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일출봉이라고 하는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을 바로 옆에 두고도 양어장과 식산봉을 활용하여 발전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서러움을 집중적으로 설명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법에 의하여 특별하다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방자치 역량은 어디서 뭐하는 것일까. 이런 고질적인 주민 고통에 대하여 응답하여야 한다. 식산봉 부근에 관광객을 위한 주차시설을 하고자 노력하여도 한국자산공사 소유 부지이기 때문에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다고 잘라버리는 행정. 방치와 보전을 혼동하는 상황의 연속이다. 오조리는 타 지역 해녀들도 인정하는 실력파 해녀들의 터전이다. 우도와 오조리 사이를 흐르는 엄청난 조류 속에서도 물질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여타 지역의 해녀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송정자 부녀회장도 해녀다. 끈질긴 질문에도 오조리 바다 속 빠른 물살을 이기는 비법은 공개하지 않았다. 마을 발전을 위해 조개밭 활용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오조리 지경에 속해있는 조개밭을 활용하여 다양한 관광체험사업을 추진하고 싶지만 여건 마련이 쉽지 않다고 한다.

마을안에 있는 팽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올레꾼
희귀식물 황근
그래도 오조리엔 꿈이 있다. 강충희 개발위원장은 지역주민에게 양어장이 환원된다면 수상쇼나 캠핑장, 야영장과 같은 관광사업을 마을공동체가 나서서 추진하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관광객들이 일출봉으로 가는 과정에서 참으로 매력적인 테마관광지를 경유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지리적 여건을 살린 가장 현실적인 발전 전략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였다. "이런 모든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자산공사가 틀어쥐고 있는 양어장에 대한 주민 환원이 열쇠라고." 그래서 한 세대 뒤에는 '오조리가 십조리가 되는 세상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박태보 노인회장이 110세가 되는 30년 뒤에 오조리의 변화된 모습, 그 꿈을 물었다. "둘레가 4.2㎞나 되는 양어장이 야간관광지로 변해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대답이 돌아왔다.

지역주민이면서 양어장관리소장 역할을 하고 있는 채종일씨의 차분한 지적이 오조리의 현실과 미래를 함께 보여준다. "외부에서 들어와 살고 있는 주민이 이미 50%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오조리 마을공동체의 운명이 마을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그러한 위기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 바짝 정신을 차리고 진지하게 마을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자원에 대한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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