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2)안덕면 덕수리
입력 : 2014. 10. 21(화) 00:00
방앗돌 굴리는 모습과 덕수리 마을 전경.
350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마을포제 이어온 마을
1980년 전국민속경연대회서 '방앗돌 굴리는 소리' 대통령상
상설 공연장도 없어 아쉬움 커
'민속' 테마마을로 동쪽엔 성읍, 서부지역은 덕수리가 적격
행정적 투자 관광자원화 등 전통문화를 개발하는 정책으로



18세기 고문서에는 쇄당(刷堂)이라고 표기되었던 마을이다. 금물로리라고 하는 큰 마을에 속해있다가 사계리와 분리되었다고 한다. 산방산 북쪽 일대를 400년 전부터 개척하여 살아왔다. 전통을 중시하는 제주의 대표적인 마을답게 마을 어르신 중에 한 분을 향장으로 모시고 있었다. 김동권 향장이 주장하는 덕수리의 자긍심은 '350년을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마을포제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주민들이 불안에 떨던 4·3 때에도 끊어지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마을공동체정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점철된 역사를 지녔다.

그냥 변방의식 속에서 제주 문화를 하잘 것 없는 존재로 여겼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마을이다. 1980년, 하나의 마을 단위로 전국민속경기대회에 나가서 '방앗돌 굴리는 소리'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던 것이다. 그 쾌거는 제주인의 의식 속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조상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노동의 가치가 하나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다. 전국민속경연대회라는 형식을 빌어서 나타내지 않더라도 야산이나 냇가에서 지름이 2m에 가까운 방앗돌을 만들어서 마을로 옮겨오는 일은 마을공동체정신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실이었다. 백 명에 가까운 장정들이 동원되어야 가능한 일이면 온 마을 남성이 모두 나와서 줄을 당겼을 것이다. 특히 화산섬 제주의 옛날 길은 협소하고, 암반들이 튀어나와 힘겨운 움직임이었을 터. 비단 덕수리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 원형을 보존하고 선소리와 후소리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제주에 덕수리만한 곳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의 마을공동체의식을 노동과 노래로 풀어낸 것이다. 제주 민속문화의 대표성이자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방앗돌 굴리는 노래는 덕수리 주민들의 가장 중요한 문화자산 중 하나다. 이 운반 노동요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9호(기능보유자 김영남)로 지정하고 전승 방식에만 머물러 있는 현실이다.

불미공예.
덕수리 한 농가의 모습
마을 발전 전략의 중요한 자양분을 행사용 퍼포먼스로 취급하는 것은 아닐까. 관광자원으로써의 가치가 충분함에도 상설공연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민속보존회는 물론 주민들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덕수리 주민들이 지닌 또 하나의 전통문화 가치는 불미마을이라는 옛 명성에서 찾을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7호 불미공예(기능보유자 윤문수)로 지정 그 명맥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현실이다. 솥이나 보습 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틀에 필요한 점질이 좋은 흙이 필수적이다. 덕수리는 그런 흙을 구할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에 장인들이 쇳물을 녹이고 형틀에 부어 농경과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 생업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제주섬 전역에서 새당(덕수리의 옛 지명)보습이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는 묘한 자긍심이 있었다. 이 독특한 문화자원 또한 전승 위주다. 행사용 시연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고.
문성실 덕수리장
문성실 덕수리장은 이런 덕수리의 문화적 전통을 융합하여 마을 발전에 필요한 실천과제를 풀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꿈의 첫 단계는 마을만들기 예비마을 선정. 마을 주민들이 바빠졌다. 앞서가는 마을들을 답사해서 자체평가도 하고, 향후 발전방향에 대한 치열한 토론도 하고 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방앗돌을 굴리던 마음자세로 더 나은 미래를 열고자 하는 것이다. 성공이 확실해 보인다. 다른 마을에 없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행정이다. 덕수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행정적 관점에 머물러 있다면 희망은 사라질 것이다. 문화재청에서 규정하는 업무만 수행하면 '할일 다 했다'는 사고방식이 계속되는 한 제주의 가치를 키우겠다고 약속하며 출발한 민선 6기 제주도정도 덕수리가 지닌 문화적 가치를 외면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화려한 문화적 자산이 있지만 속병을 앓고 있는 마을이 덕수리다. 32만평이나 되는 마을 소유 땅이 있지만 12만 평은 제주조각공원에 들어가 있고, 20만 평은 대부분 개발행위가 규제 당하는 지역이다. 사업적 활로가 막힌 현실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바라본 가을 산방산
지역주민 강명언씨의 주장은 함축적이다. 성읍리가 동부지역에 민속을 테마로 한 마을이라면 서부지역엔 덕수리가 적격이기 때문에 행정적 투자를 통하여 관광자원화 해야 한다는 것. 농업 생산만 가지고 마을경쟁력을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관광마을을 향한 도전 앞에 놓인 장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융통성 있는 행정적 판단이 있어야 마을 소유의 부지를 활용하여 사업구상들을 현실화 할 수 있지만 법 테두리만 맴돌다 돌아가게 한다면 절망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송용준 청년회장의 꿈엔 울분이 녹아있다. "만일에 돈이 있다면 제주조각공원 지상권을 사버리고 싶다." 보전지역에 묶여 있는 20만 평을 활용 할 수 없다면 12만 평에 달하는 조각공원 부지를 활용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대로 그냥 한 세대 30년이 흐르면 덕수리 땅은 대부분 외지인들이 사들이게 되고 마을공동체는 붕괴될 것이라고 비관적인 진단을 했다. 자본주의 경제논리에 떠밀려 조상들이 물려준 마을을 잃어야 하는 현실이 덕수리에 밀려들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사람과 환경이 서로 딜레마에 봉착한 모습 앞에 해법을 제시해야 할 사람들은 피상적인 거대 담론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미래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다. 마을기업의 형태를 취한다거나 아니면 제3의 방법을 찾아서라도 '전통문화자원을 바탕으로 한 상설공연장을 만들어서 초기에 행정지원이 있어준다면 5년 내에 공연수익만으로도 자립 할 수 있는 마을로 변모시킬 용기가 있다'고 송철수 민속보존회장은 확신하고 있다.

어떤 흉년에도 굶어죽는 사람이 없었다는 자부심을 가진 덕수리가 내면에 흐르는 단결력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경관중심의 관광정책에서 전통문화를 개발하여 자원화 하는 관관정책으로 방향을 틀어야 부끄러운 그동안의 자화상을 지울 수 있다. 덕수리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겠기에.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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