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62)한경면 청수리
입력 : 2024. 04. 19(금) 00:00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살아 숨 쉬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의 마을
[한라일보] 마을 명칭 그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먼저 느끼게 된다. 청수(淸水)―'맑은 물 마을'이다. 맑다는 것이 무엇이랴? 오염되어 탁하거나, 죽어서 썩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살아있기에 스스로를 정화할 힘이 있다. 단순한 생태 자원을 지키기 위한 마을공동체의 노력으로 해석하기에는 주민들이 지니고 있는 철학이 바탕이 된 실천이다. 그 맑은 심성이니 마음 열어 포용하고, 상생한다. 누가 이주해 오더라도 융화되어 살아가기에 편안한 마을이다.

섬 제주의 서부 중산간 비옥한 토양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에 의하여 삶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약 350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봉천수를 음용수로 사용하며 목축, 수렵, 농경으로 생활해온 사람들의 땅. 물 이름이 너무 순박하여 그 물을 떠다 먹던 사람들이 심성이 느껴지는 듯 하다. 곱은덴밭물, 돗죽은물, 헉게물, 동산알물, 검부낭치물, 냇골물 등등. 4·3 이전이라고 할 수 있는 1930년대 인구가 225가구 1538명이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큰 마을이었다. 그 아름답던 마을이 4·3소개령으로 불타고 주민들은 해변마을로 내려가 살다가 다시 돌아와 복구하여 살기 시작하였다. 1956년 7월에 한림면이 한림읍과 한경면으로 나눠지면서 청수1구는 청수리로, 청수2구는 산양리로 분리되었다.

지금 세대, 의식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청수리 주민들이 추구하는 비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농촌마을 건설'이다. 강력한 마을공동체 결속력을 가지고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업들을 펼쳐오면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농촌발전 방향을 열어왔다. 일일이 열거하다보면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다양한 마을사업들을 추진하여 거둔 성과들이 모여 지금의 청수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쟁력으로 결코 뒤지지 않은 마을공동체의 역량 배경에는 청수곶자왈로 대표되는 친환경생태마을에 대한 주민공감대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생존산업인 농업의 근본적 에너지를 환경보존에서 찾고, 이를 실천운동 차원으로 끌어올린 의지가 전국적인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청수리 자체가 부가가치가 되도록 노력해온 주역들이 아직도 건재하다.

박종군 이장에게 청수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물었더니, 대답은 두 글자다. "청정!" 청정청수. 살아 숨 쉬는 생태 자원을 응축하여 일컬은 것이다. 오염도 제로 마을이라는 다부진 수식어 또한 뒤를 이었다. 입증 근거로 반딧불이 축제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보유한 마을이 전국에 과연 몇 곳이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청수곶자왈이 지닌 생태보존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방법. 마을공동체 임원을 맡고서 불철주야 노력해온 한 세대 동안의 선배들 덕분에 이룩한 현실적 성과는 '청년농업인이 많다'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부모세대부터 긴 안목으로 농업경쟁력은 마을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실천해온 결과이리라.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 분가하여 살아갈 주택문제가 또 하나의 과제로 떠올라 있어서 안타깝다고 토로하는 실정. 심지어는 도시화된 다른 지역에 살면서 직장처럼 출퇴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농촌주택 마련을 위한 지원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상황임을 행정당국도 잘 알고 있을 터.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획기적인 극복방안이 절실하다.

마을공동체 사업에 희망을 심고 가꿔온 청수리 주민들. 전국적 성공모델로 평가 받았던 사업들도 수두룩하다. 각종 역량강화 프로그램들을 수행하기 위하여 참여하고 실천해온 시간들이 모두 미래에 대한 투자였다. 그 미래가 지금의 현실이 된 상황에서 성과의 열매를 따야 할 청년농업인들이 주택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면 그 안타까움을 오롯이 수용하여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은 정책당국에 있다. 농업소득만 가지고는 엄두가 나지 않는 건축비 현실을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야 청수리의 미래와 섬 제주의 소중한 농촌성공모델이 산다. <시각예술가>

맑은 봄길 따라서
<수채화 79cm×35cm>

담백하게 담을 그렸다. 담채화의 묘미를 살리기 위하여 다른 회화적 요소들을 축소하거나 제거하였다.

담채는 절제력의 시험대이다. 연필 선으로 물상의 다양한 성질을 표현하고 색감을 최소화 하는 것은 전체적인 느낌이 수채화가 지니는 투명한 본질을 극대화 시키는 작업. 길이 그냥 길이 아니라 아주 미세한 높낮이를 가지고 있다. 화면의 중앙이 가장 높은 기준으로 낮은 지역과 1미터 정도되는 낮은 파도 출렁임 정도다. 오래전 농촌마을길 그대로의 공간적 흐름. 이 작은 차이와 존재감이 오른쪽 돌담들의 변화다. 돌 하나하나를 쌓아가듯이 그려야 하는 이유는 길의 높이 변화를 돌담의 공간적 배치가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면에 마주하는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과 빛이 바랜 주황색. 돌이 보유한 회색과 감칠맛 나게 상보적 격조를 불러온다. 돌틈에 뿌리를 내린 식물들이 연두색 새순을 통하여 봄날의 온화함을 표현하고 있다. 돌담의 흐름을 통하여 시간성을 나타내고자 했다. 오랜세월 마을사람들과 함께해온 이 소박한 길. 집담과 밭담 사이에 난 길이 주는 차분한 심성이 그립다. 연필맛과 채색이 격조 있게 만나서 보람을 얻는다. 광선에 대한 배려와 농촌마을의 태생적 질감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봄날의 일상성이다. 화려함은 없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품고 있는 농촌마을 어느 길가에서 누군를 만나더라도 인사를 건네고 싶은 그런. 담백한 심성을 지닌 분들의 마을이라는 것을 풍경으로 묘사하려 하였다.

청수곶자왈 두 개의 시간
<수채화 79cm×35cm>

풍경화라기 보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두 개의 시간성이 한 화면에 나타나 있다. 청수곶자왈 방문자센터로 보이는 곳, 입구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고 스케치에 들어갔다. 돌과 나무가 서로 기대어 선 모습. 암반지대에 숲을 이루고 있는 그 생태적 특징을 어떤 인위적 조형물을 가지고도 설명하거나 표현 할 수 없는 명쾌한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감동. 현무암 자연석과 나무는 오래된 이미지를 주기 위하여 동양화 필법과 흡사한 스타일로 그렸다. 테두리 선에서 이미 돌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강정을 지닌 방법이다. 주제의 특징을 회화적인 느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선택한 이유는 배경의 시간성 때문이다. 밤이라는 상황과 대비되는 나무와 돌. 어둠 속에 잠겨있는 곶자왈 숲과 살아 숨 쉬는 생태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반딧불이들의 화려한 흐름. 밝은 점들이 카오스적인 군무를 펼치는 과정을 그렸다. 수채화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지만 두 개의 시간이 화면 하나에서 만나 이질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반딧불이들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하며 그렸다. 앞은 낮이요 배경은 밤인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저 작은 빛들이 춤을 추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풍경에서 벗어나 작은 일탈을 꿈꾸는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청수곶자왈을 그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발칙한 선택이라 여기면서. 동화책의 삽화와 같은 느낌이 전달된다면 좋겠다는 소박한 기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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