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09)애월읍 애월리
입력 : 2026. 03. 20(금) 03:00
양기훈 hl@ihalla.com
새로운 도약, 지속 가능성이 곧 잠재력인 마을
[한라일보] 제주시 애월읍이 읍소재지라는 걸 알 수 있는 것은 행정관청의 유무를 떠나 초·중·고등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이 있고, 서부경찰서 애월파출소, 제주해양경찰서 애월출장소, 애월청년문화의 집, 애월도서관, 애월읍민체육관, 애월근린체육공원 등 공공기관 및 시설이 있으며, 애월농협본점, 애월감귤협동조합, 애월신용협동조합, 제주시 수협 애월지점, 애월여성농업인 종합지원센터, 한국농업경영인 제주시 애월읍회관, 항운노조 애월지부 회관과 같은 각종 산업·경제 기관들을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애월리가 보유하고 있는 위상을 어떤 형용과 수식을 통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나열을 하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문종오 이장
조상 대대로 경작지의 토질이 우수하고 해안선을 따라 다양한 수산자원이 풍부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는 참으로 좋은 여건을 보유했다. 구체적으로 마을 형성이 드러나는 것은 고려시대다. 촌락의 규모가 대촌이었음을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근거가 있지만 애월포는 관포로서 전라도 남해안의 여러 지역과 왕래를 했던 곳이다. 탐라의 관문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사람과 물류가 흐르는 곳이 번창하지 않을 까닭이 없는 것. 그러한 전통과 역사가 이 시대에 다시 한번 재도약의 웅비를 준비하는 저력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연안항의 입지 여건을 인정받아 항만기능이 성장동력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2028년을 목표로 애월~진도 간 여객선이 취항할 예정이라고 하니 역사적 배경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 도농복합지역이라는 경제적 외형 못지않게 섬경제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해양시대의 흐름에 합류하는 마을로 발전하고 있다. 단순하게 읍소재지라는 행정적 관점과는 다르게, 연안항이라는 여건이 가져올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위치적 강점을 파악하고 LNG생산기지 및 공급시설이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과 건설적인 협약까지 하면서 마찰이 없도록 하는 공존 상생의 모델을 마련하고자 했다. 명칭 그대로 '애월리 마을도시가스(LNG) 공급을 위한 협약서'다. 협약 당사자들은 제주특별자치도 미래전략국, 한국가스공사 제주LNG본부, 애월리 마을회. 협약 날짜는 2022년 10월 7일이다. 핵심 내용은 2023년 12월 말까지 애월리에 도시가스 공급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한다고 문서화하는 것. 그런데 지역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따지는 것은 올해로 벌써 2026년이지만, 협약 이행 책임을 가진 곳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 영리 목적으로 사업을 시행하고 도민경제에 이로움을 줄 수 있다는 공적 타당성 때문에 제주특별자치도가 협약 당사자로 애월리 주민들과 약속을 했다면 공신력 차원에서 이미 완료했어야 할 일이다. 불만과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떠넘기기에 급급하는 것은 아닌 지 확연하게 공론의 장에 나와서 밝혀야 할 사안이다. 협약이란 책임을 지겠다는 법적 약속이기 때문.

문종오 이장에게 애월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한 문장으로 대답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람들입니다." 단순하게 결속력 측면과 결부 지어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마을공동체정신이라고 했다. 팔 바깥쪽을 배타하는 성격이 아니라 애월리에서 낳고 자랐다는 것에서 혈연과도 같은 연결고리를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다른 지역이라고 해서 이러한 의식세계가 없는 것은 아니로되 애월리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먼저 내 식구를 생각하듯 마을공동체 구성원의 일을 마치 내 일처럼 여기는 문화가 있다는 확신이었다. 마을공동체가 어떠한 사업을 한다거나 어떤 난관에 봉착했을 때, 외부적 인식보다 내부적 연대감을 먼저 생각한다는 표현으로 와닿는다.

마을의 규모나 질적 성장이 옛날과는 확연하게 달라졌지만 엄연하게 마을 리(里) 자를 쓰는 정겨운 반농반어촌이다. 격변하는 성장과정에서 마을의 공동체문화를 더욱 강고하게 다질 수 있었던 비결이 아름답다. <시각예술가>



물가 涯 비친 月
<수채화 79㎝×35㎝>

세상엔 수 없이 많은 마을과 지명들이 있다. 전 세계 어디에 가서 찾은들 이토록 시적 서정성이 가득한 곳을 찾을 수 있을까? 명칭 자체로 문학적 감성이 드러나는 마을이기에 마을의 중심이었던 '하물'을 그리면서 사실적 현장성에 야경이라는 시간적 사상력을 동원해 달을 그려 넣었다. 풍경화라고 할 수 없는 상징화다. 하물은 큰 물이라는 뜻이다. 달을 품을 정도이니 어찌 그 크기를 갑론을박 한단 말인가? 마을의 역사성을 그대로 간직한 저 용천수로 말하자면 애월마을이 상애월과 하애월로 나뉘어 생활하다가 조선 후기 이후 주민들이 바다와 밀접한 하애월로 대거 이주하면서 방어진지인 애월진과 풍부한 지하 용천수인 하물을 중심으로 정주공간이 밀집하게 된 것이다. 애월리 하면 하물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인근마을 사람들에게도 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어떤 집에 경조사가 있을 때 물허벅으로 몇 번 길어다 주는 것을 '물부조'라고 해 마을 인정이 끊임없이 샘솟게 만든 저 하물을 그리면서 일부러 달을 간직하게 하는 것은, 옛날 어느 존경받던 선비가 이 마을 명칭을 지었는지는 모르나 그 의미 깊음이 그림으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그 궁금증이 더욱 이 그림을 그리게 했다. 하물은 여름에 여성들이 목욕공간으로 활용되고 옆에 장공물은 남성들이 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여성들이 더 크고 대표적인 용천수를 사용했던 연유를 어르신들께 여쭤봐도 그 해석이 각양각색이다. 여성존중의 문화를 억지춘향으로 곁들이고 싶은.



저 해변길에 깃든 사연
<수채화 79㎝×35㎝>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해변을 따라서 길이 생겼다. 제주 바닷가 대부분은 해안도로가 건설돼서 자동차가 다니는 경우가 많거늘 애월리 서쪽 일부 구간은 자동차가 갈 수 없어 걸어서 다닐 수밖에 없는 옛날 그대로의 길이 보존돼 있다. 엄청난 문화자원이요, 관광자원이라는 생각에 그리게 된 것이다.

저 길은 해녀가 테왁구덕을 지고 불턱으로 향하던 길이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이기에 더 부지런한 사람이 여명을 뚫고 바닷가에 당도해 감태를 건져 올리던 길. 겨울에 파도가 거칠게 치는 날 맹마구리(갑오징어)가 갯바위에 올라오는 것을 잡으러 가던 길. 배고파 우는 젖먹이 동생을 등에 업고서 불턱까지 걸어가던 누나의 길. 듬북을 건져 올려 말렸다가 한 짐 가득 등에 지고 걸어오던 아버지의 길. 갑자기 풍랑이 일어 고기 잡으러 바다로 나간 남편이 노 저어 오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연신 바다를 바라보며 서성거리던 아내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길이다. 애월리 사람들의 오늘을 있게 한 조상들의 숨결 가득한 길을 그리게 돼 감회가 깊다.

문화재라고 하는 것이 궁궐이나 성곽, 역사서에 기록된 것들 뿐으로 간주하는 학식 위주에서 벗어나 삶의 향기가 아직도 짙게 깔려 있는 이러한 길들이 진정한 제주인 문화재로 후세에게 전해지는 세상을 요구하며 그린 것이다. 무엇보다 존경스러운 것은 의식이 높은 마을 주민들이 해안도로를 여기는 연결하지 말자고 결의를 했다는 대목이다. 저 해변길의 소중한 가치를 깊이 느끼면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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