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무명(無名)은 없다
입력 : 2026. 07. 29(수) 01:00수정 : 2026. 07. 29(수) 07:11
김동현 hl@ihalla.com
[한라일보]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 안쪽에 '제주 4·3희생자 무명신위(無名神位)'가 있다. 이름 없는 자들을 위한 신위다. 오영훈 도정 시절 세워졌다. 제막식에서 오 지사는 "70여 년이 넘도록 1만이 넘는 희생자의 이름을 아직 찾지 못했다"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잊힌 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만들었다고 했다. 남은 진상규명과 정명(正名) 찾기, 정의로운 해결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무명신위는 오영훈 도정이 제주4·3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낸 상징이다. 제주4·3 진상규명운동은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을 불러내는 일이었다. '폭동'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제 이름을 되찾아주는 것, 그 호명의 과정이 곧 진상규명이었다. 평화공원 건립 초기 각명(刻名)과 위패는 진혼의 핵심 과제였다.

무명신위를 세우겠다고 했을 때 당시 운영위원들은 반대했다. 이름이 왜 없는지, 그 부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희생자로조차 인정받지 못한 존재를 애도의 공동체 안에 어떻게 들일 것인지. '무명'이라는 두 글자는 이 숱한 물음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진상규명운동의 출발이 호명이었음을 떠올린다면, 이보다 더한 역설이 있는가.

이 선택의 배경에는 도지사의 강한 의지가 있었다. 진상규명운동에 투신했고 보상까지 이끌었으니 4·3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그러나 그 '운동적 에고'야말로 그의 4·3 철학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스스로 증언한다. 진상규명은 몇몇 정치인의 공적이 아니다. 정치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몫을 자신의 치적으로 포장하는 자기애, 그 지독한 자기애가 1만5000의 얼굴을 '무명' 두 글자로 봉인했다.

이것이 '정의로운 해결'의 실상이다. 1만5000명 저마다의 이름을, 저마다의 죽음을, '무명'이라는 관료의 언어로 축소하는 순간 정의는 수사가 된다. 이름을 찾겠다는 다짐과 이름을 지우는 위패가 한자리에 나란히 서 있는 풍경. 그 모순이야말로 '정의로운 해결'이 끝내 정치적 수사에 머물렀음을 증언한다.

새 도정이 출범했다. 4·3의 과제는 여전히 무겁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의로운 해결'이라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박제된 애도와 관료화된 기억을 넘어, 우리의 공동체를 더 많은 민주주의의 전망으로 감당하는 일이다. 무명신위라는 잘못된 상징을 걷어내고, 그 이름들을 다시 불러야 한다.

위패봉안실의 구성도 다시 물어야 한다. 희생자로 인정된 이들의 위패를 기억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아직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 신청조차 하지 못한 3만이 넘는 죽음을 오롯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 모든 이름을 끝내 찾아 불러야 한다는 역사적 과제를 매일 환기하는 방식으로. 그러니 오영훈 전 지사의 자기애가 남긴 무명신위를 철거하자. 4·3을 제 공(功)으로 삼는 정치인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무명은 없다. 다만 아직 부르지 못한 이름들이 있을 뿐이다. <김동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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