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문화광장]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예술의 사회사
입력 : 2026. 11. 03(화) 02:00
김준기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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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부산시립미술관(이하 부시미) 재개관 기념전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 1945-1953'이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 전시는 해방공간과 분단,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를 다룬 아카이브형 전시다. 해당 시기별 대표적인 미술작품을 중심으로 시각문화 아카이브를 펼치고, 동시대 미술가들이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작품들을 함께 선보임으로써 한국 현대사를 입체적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연대기적 서술을 넘어 예술의 관점에서 가려진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전시는 몇몇 언론에 의해 불온한 좌파적 시각을 펼쳤다는 식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기사들은 '북한의 남침을 빼고 미군정과 반공주의를 비판함으로써 학생들이 찾는 공공미술관이 편향성을 보였다'는 논지를 폈다. 나는 이 기사들을 읽으면서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좌우 대립 이데올로기가 예술 영역까지 단죄의 칼날을 드러내는구나 싶어 섬뜩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우리의 가까운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에 이토록 예민하게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고 있는가? 뿌리는 분단에 있다. 일제강점에서 벗어난 해방을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진정한 독립으로 잇지 못한 참혹한 역사는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부시미가 마주하려 했던 역사의 단면들을 이념의 잣대로 비판하는 시각에 아픈 역사가 더욱 심난하게 다가온다. 압제에서 벗어났으되 분단을 맞았고, 1948년 남북의 단독정부 수립 이후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친 한반도는 갈라져 총을 겨눈 채 지금에 이르렀다. 이를 작품과 자료로 담담하게 펼친 전시를 향한 날 선 비판이 참담하다. 이 전시는 비난이 아니라 칭찬을 받을 사건이다. 그동안 미술계가 미술 내재적 관점으로 되돌이표 같은 해석을 반복해 온 일을 반성할 일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같은 저서를 접하며 예술과 사회의 상동성을 논하는 것은 서구만의 관점인가? 이제 우리도 분단체제의 고통을 바라보던 외눈박이 시선을 벗어나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예술의 사회사'를 대면할 때다.

올 한 해에도 제주 4·3과 광주 5·18, 대구 10·1, 부마 10·16, 여순 10·19 등 현대사를 기억하는 예술제가 열렸다. 재야 곳곳에서 역사 정명을 향한 예술인들의 용맹정진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부시미의 전시는 이러한 흐름과 함께 역사적 관점의 정상화 과정에 놓여 있다. 공공영역의 역사 관련 연구와 전시 역량이 진일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소 냉전이 남긴 이념 대립의 칼날을 80년 넘게 대물림하는 슬픈 역사를 펼쳐 놓고, 예술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대면하게 했다. 지금까지 금기나 불온의 영역에 머물렀던 한국 근현대사를 오롯이 되돌아보고 그 역사를 바탕으로 미술문화의 맥락을 짚어 내는 성숙한 예술문화를 향한 길. 부산에서 울려 퍼지는 잔잔한 파동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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