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비극 반복 안 돼… 역사 제대로 알려야" [당신삶]
입력 : 2024. 06. 04(화) 18:14수정 : 2024. 06. 09(일) 17:31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22) 6·25 참전용사 송치선 씨
제주4·3 아픔 속에 "나라 살리자" 전쟁터로
도솔산 전투 등 참전하며 수십 번 생사기로
형 송달선 하사 전사… "살아남았어도 미안"
"잊혀지는 6·25… 미래세대 위한 교육 중요"
6·25 참전 용사인 송치선 씨는 미래 세대에게 6·25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남은 사명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사진=신비비안나 기자
[한라일보]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요. 다 떠나가니까." 올해로 95세인 백발의 노인이 큰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70여 년 전, 옛일을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며 거침없이 쏟아내다가도 벅차는 감정에 자주 울컥했다. 오랜 기억 속의 일이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6·25.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참전했던 송치선(서귀포시 대정읍) 씨의 얘기다.

|"나라 살리자"… 자원입대 물결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제주는 4·3의 아픔이 진행 중이었다. 1947년부터 이어진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충돌, 토벌대의 진압 작전으로 무고한 죽음이 잇따랐다. 그가 주저 없이 전쟁에 나선 것은 "나라를 살려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지만 일종의 '증명'과도 같았다.

그는 "(4·3 때 제주를) '빨갱이 섬'이라고 하는 걸 저는 직접 들었다"면서 "(토벌대의)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도민은 모두 빨갱이다'라는 식의 판단에 억울하고 복받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4·3을 기점으로 제주에 들어왔던 해병대 사령부는 병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체신부(우체국) 공무원이던 그는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했다. 1950년 8월, 결혼한 지 막 6개월이 지나던 참이었다. 그는 "'가지 마라, 가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며 "나라가 망하는데 당연히 가야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입대 이후 곧바로 훈련이 시작됐다. 옛 제주농업중학교를 중심으로 25일간 훈련이 이어졌다.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완전 무장을 하고 훈련장이 있던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까지 오가는 날이 계속됐다.

"한 번은 우리 집사람이 면회를 왔어요. 훈련 중에 낮은 포복으로 남문통 비포장도로를 기어가고 있었는데, 그 길에 서 있다가 나를 봤지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다) '그냥 가라'고 했어요. 그때 딱 한 번이었어요. 그다음엔 면회를 올 기회도 없었고…." 그날이 눈에 선한지 그가 다시 울음을 삼켰다.

1950년 9월 1일. 컴컴했던 새벽녘, 그는 제주 산지항에서 배에 올랐다. 동이 트지 않아 사방이 어두웠지만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던 분위기만은 몸으로 기억한다. 해병대 3·4기가 전선으로 향하던 날이었다. 그는 "그날을 기념해 '제주해병대의 날'이 9월 1일"이라며 "지금도 그때가 되면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말했다.

|참혹했던 전쟁, 6·25

전쟁터에선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인천상륙작전부터 도솔산 지구 전투, 서울 탈환 작전, 김일성 고지 전투 등에 참전했던 그는 총알과 포탄이 날아드는 속에 "수십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살기 위해선 같은 민족이라도 총을 겨눠야 했다. "전쟁의 비참함을 느꼈다"고 그가 말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순 없었다. 도솔산 고지를 모두 탈환하기까지 벌어진 스무날에 가까운 격전은 그래서 더 잊을 수 없다.

"돌멩이 산이었기 때문에 길이 없었습니다. 목표는 도솔산의 24개 고지를 모두 점령하는 거였지요. 전투가 한창일 때는 여기저기 아우성이었습니다. 다리가 끊어져 '내 다리를 달라'는 고함도 기억에 납니다. 하루는 통신병인 제게 송수화기를 건네받아 본부와 연락하던 대대장이 눈물을 흘리는 걸 봤습니다. 부대원들이 다리가 잘리고 팔이 부러지는데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목숨을 걸고 올라가야 했으니까요. 정말 비극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말을 못 해요."

그는 70여 년 전, 옛일을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며 거침없이 쏟아내다가도 참혹했던 전장을 떠올리며 자주 울컥했다. 사진=신비비안나 기자
정전(1953년 7월)을 3개월쯤 앞두고 그에겐 의가사 제대 명령이 떨어졌다. 치선 씨에 그의 둘째 형까지, 한 집에 두 아들이 6·25전쟁에 참전했던 터라 2년 7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살아서 다시 고향 땅을 밟았지만 기뻐할 순 없었다. 답답함과 미안함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의 형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1950년 9월 육군에 입대한 형 송달선 하사는 이듬해 5월 북한군 6사단과의 설악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송 하사에겐 고향에 남겨둔 아내와 뱃속의 아이가 있었다.

전사한 지 70여 년 만이던 2021년, 송달선 하사의 유해는 제주로 돌아왔다. 유전자 분석으로 신원이 확인되면서다. 하지만 죽어서도 아들을 만날 순 없었다.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했다는 아들은 지병으로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6·25 바로 알리기는 우리 사명"

6·25전쟁은 그의 가족에게도, 한반도에도 큰 상처로 남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고통이다. 하지만 그만큼 두려운 것은 오늘날의 '망각'이다. 6·25를 기억하는 참전용사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그때의 '역사'가 잊힐까 하는 걱정이 크다. 2018년부터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제주특별자치도지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참전용사 한 명 한 명이 대한민국의 역사임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군뿐만 아니라 22개국의 수많은 유엔군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덕분에 오늘날의 한국이 있기에 고마움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가 잊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참전 노병은 세상을 떠나고 있지만, 대한민국을 구했고 민주 체제를 회복했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오늘도 삽니다."

2018년부터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제주특별자치도지부장을 맡고 있는 송치선 씨는 "참전용사 한 명 한 명이 대한민국의 역사임은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사진=신비비안나 기자
전쟁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6·25 바로 알리기'가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는 도내 학교에서도 관련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관심을 가져달라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입니다. 생명을 바쳐 지킨 대한민국이 서로 화합하고 타협하며 잘 되길 바라는 것뿐이지요. 정치가 어지럽고 서로 싸우기도 해도 나라가 있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은 어려워도 앞으로 더 잘 되겠지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청소년에게 6·25전쟁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 살아 있는 동안의 우리의 사명이자 의무입니다.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역사를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오는 6일은 제69회 현충일이다. 6·25전쟁은 올해로 74주년을 맞는다. 6·25전쟁에는 제주도민 1만3000명이 참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 오늘날 살아 있는 참전 용사는 650여 명뿐이다. 취재·글=김지은 기자, 영상 촬영·편집=신비비안나 기자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당신삶)

수많은 삶은 오늘도 흐릅니다. 특별한 것 없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우리'가 됩니다. '당신삶'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문을 열어 주세요. (담당자 이메일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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