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아오모리에서 도쿄까지
입력 : 2010. 12. 14(화) 00:00
최근 일본의 고고역사 현장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달 7일부터 12일까지 일본 본토의 끝에 위치한 아오모리에서 도쿄까지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일본의 고고학 하면 떠오르는 것이 10년 전 벌어진 구석기유물 날조사건이다. 미야기현 가미타카모리(上高森) 유적지에서 70만 년 전의 석기 30여 점을 발견했다고 발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 날조로 드러난 것이다. 당시 발굴단장이 날조한 구석기유적은 수 십 군데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돼 지금까지 일본에서의 전기구석기유적은 백지화된 상태다. 일본의 구석기문화는 이 일로 인해 심각한 학문적 위기와 이미지 추락을 겪어야했고,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유적 발굴현장과 정비 사례 등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 신석기에 해당하는 죠몽시대 아오모리현 산나이마루야마유적지는 유구와 유물의 출토 양과 규모에서 압도적이었다. 5500년 전 시작된 산나이마루야마는 거석문화의 상징인 영국의 스톤헨지라든가 중국문명,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등과 나름대로 견주어가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군마현 이와즈쿠박물관은 1949년 일본에서는 첫 발굴된 구석기유적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박물관동호회의 참여와 활동이 매우 인상적이다. 관장이 직접 구석기시대 창던지기와 석기제작을 시연하는 장면은 국내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치바현의 카쇼리패총은 일본의 패총유적을 대표하는 곳이다. 수 만 점에 이르는 다양한 출토유물과 미래를 고려한 발굴현장 공개와 보존, 유적을 활용한 공원 조성 등이 인상적이다. 제주도의 곽지패총이나 종달리패총 등이 최소한의 구제발굴만 한 채 도로를 개설, 박제화된 유적이 돼버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반면에 타가죠시의 동북역사박물관은 11년 전 개관 당시 사업비만 200억 엔, 약 26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돈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사례로 꼽힌다. 일본 버블경제 당시 지어진 이 박물관은 대규모 건물과 외형에만 치우쳐 박물관 관계자들도 고민하고 있을 정도다.

일본의 고고역사 현장은 십수년에서 수십년에 이르는 지속적인 발굴과 정비, 교육현장으로 활용하는 패턴이 확실히 자리잡고 있다. 발굴에 참여했던 학자와 전문가들이 박물관이나 전시관 운영에 직접 나서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점도 시사적이다.

제주도의 경우는 대부분 고고역사 문화에 문외한인 행정직 공무원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하면서 운영을 쥐락펴락 하고 있지 않은가. 문화진흥본부로 박물관과 문화관련 기구 등을 통합하고 행정직으로 자리를 채운 제주도나 고산리유적과 항파두리유적 정비를 앞두고 있는 제주시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이윤형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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