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대형마트의 '끝없는 탐욕'
입력 : 2010. 12. 28(화) 00:00
'경주 최부자'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울림이 남는다. 부자가 지녀야 할 철학을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최부잣집은 12대에 걸쳐 300여년 동안 '만석꾼'의 재력을 이어왔다.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데 한 가문이 이렇게 부를 누리는 집안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오늘날까지 존경 받는 부자로 회자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최씨 집안에는 대대로 지켜오는 여섯가지 가훈이 있다. 그 중에서도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는게 눈에 띈다. 가훈대로 소작료를 만석 넘게는 거둬들이지 않았다. 땅이 늘어도 최부잣집의 소작료는 늘어나는게 아니다. 그래서 소작인들은 최부자가 더 많은 땅을 가지길 바란다. 최부잣집이 부유해지면 소작인의 곳간도 덩달아 부유해지니까. 이른바 '상생의 정신'을 지켜온 것이다.

상생이 뭔가. 나도, 남도 더불어 살자는 것이다. 큰 기업과 작은 기업, 강자와 약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대형 유통업체들의 탐욕은 끝이 없다. 이들의 횡포는 이미 도를 넘고 있다. 정부가 법까지 만들며 상생을 부르짖고 있지만 소용 없다. 급기야 영세 자영업자들의 고유영역까지 침해하기에 이르렀다. 얼마전 롯데마트가 5000원짜리 '통큰치킨' 판매로 도마위에 올랐잖은가. 결국 1주일만에 중단됐지만 초저가(시중가의 3분의 1)로 팔면서 논란이 뜨거웠다.

값싼 피자로 반발을 사고 있는 이마트는 꿈쩍조차 않는다. 이마트 피자 역시 매장을 찾아야 주문할 수 있다. 통큰치킨과 마찬가지로 '미끼상품'인 셈이다. 저가 판매로 인기를 끌면서 동네 피자집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통큰치킨의 판매중단에도 이마트는 계속 팔겠다는 속셈이다. 피자는 영세상인의 생존권이 걸린 치킨과는 다르다고 강변한다. 간식거리인 피자나 치킨이나 뭔 차이가 있는가.

물론 소비자의 선택권도 중요하다. 허나 더 중요한 것은 자영업자도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가 선진국에 비해 유독 많다. 작년말 현재 자영업자가 487만명이다. 경제활동인구의 20.2%를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이 31.3%(2008년 기준)에 이른다. OECD 회원국 평균(15.8%)보다 두배나 높다. 그러니 자영업자끼리만 경쟁해도 먹고 살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대형마트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골목상인의 씨를 말리려 든다. 돈만 되면 영세상인이 죽든 살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누구를 위한 '상생'이며 누구를 위한 '동반성장'인지 씁쓸하다. 어쩌면 피자와 치킨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지 모른다. 다음에는 어떤 것으로 영세상인들을 더 울릴지 걱정이다. 제발 더 이상 자영업자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지 않았으면 한다. 힘없는 자영업자를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짓밟아서야 되겠는가.

<김병준 경제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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