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일본의 비극, 남의 일 아니다
입력 : 2011. 03. 22(화) 00:00
한·일간의 관계를 표현할 때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표현을 쓴다. 식민지 지배로 인한 상처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를 짓누르는 20세기의 문제는 과거의 역사가 아닌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토호쿠(東北)지방을 휩쓴 대지진과 쓰나미 재앙 앞에 일본은 가까운 나라일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게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지진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일본과의 관계에서다. 대표적인 것이 1923년 9월1일 발생한 간토(關東)대지진이다. 간토대지진 당시 일제는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조선인 폭동설 등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며 계엄령을 발동했다. 그리고는 수천 명의 조선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1995년 1월 발생한 고베대지진(한신대지진)의 기억도 뇌리에 남아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대지진과 쓰나미가 강타한 토호쿠 지방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지난해 12월 아오모리에서 이와테를 거쳐 미야기현, 후쿠시마, 도쿄로 이어지는 일정의 대부분을 토호쿠 지방에서 보낸 적이 있다. 특히 토호쿠 지방의 최대도시 센다이는 깨끗한 풍광 등으로 인상적이었다. 후기구석기시대인 2만 년 전부터 역사가 이어지는 도시였지만 대재앙 앞에 초토화됐다.

일본인에게 있어서 어쩌면 지진과 화산폭발 보다도 더욱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핵과 관련해서가 아닐까 한다. 그 기저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한 공포가 깔려있다. 지금까지 일본은 지구상 유일의 피폭국가로 남아있다. 그로 인한 두려움은 일본인들의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다. 그러기에 대지진과 쓰나미에다 핵물질 누출이라는 초대형 참사 앞에서 일본국민들은 아우성을 칠 법도 하지만 오히려 순응하듯이 질서정연하다. 대재앙을 견뎌내는 방법을 체득한 때문일까.

상상을 초월한 일본의 비극은 결코 강 건너 남의 일이 아니다. 세계는 지금 원전폭발을 막기 위한 핵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에 이은 후쿠시마원전 폭발과 방사능 누출이라는 최악의 위기에 전 세계가 뭉친 것이다. 일본에서 원전이 폭발한다면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는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니 동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가 방사능 공포 앞에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지진이나 화산폭발, 쓰나미에 익숙지 않다. 이번에 일본에서 벌어지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생생한 간접체험을 했다. 제주도도 자연재해는 언제든지 현실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이 지진과 쓰나미, 원전폭발의 대재앙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마음으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이윤형 사회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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