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보행권 이제 되찾아야 할 때
입력 : 2011. 08. 02(화) 00:00
서슬 퍼렇던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를 찾은 동남아의 한 정치지도자는 육교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육교를 오르내리는 모습이 꽤나 효율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지도자는 일정을 쪼개 육교전문가를 만나 한 수 배웠다고 한다. 그 나라에 육교가 생겼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를 찾았던 서구의 한 지도자는 자동차 위주의 교통정책이 만들어 낸 괴물로 해석했다.

유럽 등지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나라의 보행환경에 찬사를 보낸다. 도시 곳곳에서 시민들이 길을 건너는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길을 따라 걷다보니 그 이유가 온 몸으로 와 닿더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가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이제 100여년. 현재 제주시 지역에만 18만여대를 넘어설 정도로 자동차가 홍수를 이룬다.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우리의 보행환경은 나날이 열악해지고 있다. 교통관련 예산은 대부분 자동차가 다닐수 있는 길을 내거나 주차환경을 개선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보행자가 마음 놓고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분야에는 극히 일부가 돌아갈 뿐이다.

제주시는 이와 관련 최근 의미있는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김병립 제주시장은 지난달 1일 간담회를 빌어 ▷대중교통수단 확충 ▷공영주차장 유료화 등 교통정책의 일대 전환을 예고하고 나섰다. 대중교통수단을 대폭 확충하는 반면 차량 소유자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과 불편을 강제하는 방향으로 교통정책을 바꿔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공영주차장을 유료화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는 중이다.

행정안전부도 이에 앞서 지난달 15일자로'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보행자가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보행권을 지켜나가기 위한 목적에서다. 법률이 시행되면 보행환경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기 위한 법적 뒷받침과 보도·이면도로 등 보행공간에서 보행자 보호의무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시책들이 만들어 진다.

건강한 보행권은 몇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먼저 마음놓고 걸을 수 있는 안전한 길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정비가 잘 된 대중교통수단과 원활히 연계되어 있어야 한다. 여기에 역사·문화, 쇼핑, 나들이, 운동 등 여가생활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교통정책의 우선 순위가 보행자→대중교통수단→자동차 순으로 바뀌어야 한다.

보행권은 시민생활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쾌적한 환경에서 길을 걷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 때 우리 모두의 삶 역시 더욱 풍요로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아닌 바로 사람이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이다. <현영종 사회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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