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33)한림읍 금능리
입력 : 2023. 01. 27(금) 00:00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마을공동체의 가치로 행복을 추구하는 마을
[한라일보] 비양도가 바다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으뜸원해변에서 월림리와 인접한 지역까지 길게 올라간 지형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중간에 정월오름이 나지막하게 마을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동쪽으로는 협재리, 서쪽에는 월령리가 자리잡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오백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원래 지명은 '배령리'라고 불렀는데 약 100년 전에 배령이라는 말이 제주어에서 '버랭이(벌레)'와 비슷하다고 놀림을 받을 수 있느니 마을 중심에 있는 금동산을 한자로 바꿔서 금능(金陵)이라고 정했다는 것. 1970년대에 금능리를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눠서 동네 이름을 부여했다. 특이한 것이, 당시에 한창이던 새마을 운동 정신에서 가져와 자조동, 자립동, 협동동, 근면동으로 명명하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없는 것이 없는 마을이다. 농수축산에 농공단지까지 있어서 제조업과 관광시설에 따른 시설까지 6차산업이 힘차게 작동하는 대표적인 마을이다. 어떻게 마을 한 곳에 이렇게 산업적 다양성이 풍성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까? 분명 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의 다양한 개성과 욕구를 진취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협력으로 북돋아줬기에 가능한 상황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원은 소박한 취락구조가 옛 마을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찾아보면 특색 있는 공간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해수욕장과 인접한 큰 원담이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아직도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매년 원담축제를 열 정도로 그 가치 극대화에 힘쓰고 있는 주민들, 원담이란 단순하게 어로방식이 아니다. 제주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너무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바닷가마을 원담은 마을주민 공동의 소유. 밤사이에 멸치가 들어와서 바닷가에 길게 쌓은 돌담 높이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해 있을 경우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큰 소리로 "맬 들었져~!"라고 외치면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너나 없이 크게 외쳐준다. 확성기가 없던 시절 사람들의 목소리로 전달하며 외치는 것은 모두 나와서 함께 멸치를 잡자는 신호요, 불문율의 실천이다. 발견한 몇몇만 횡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행운을 나누자'는 의미다. 공동체적 가치가 그대로 드러나는 일.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원담에 든 멸치를 잡는 그 공간에서는 평등하다. 멸치보다 더 소중한 그 행복을 누리던 공간. 금능리 원담축제는 그러한 제주인의 정신문화의 정수를 향유하는 축제인 것이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마을공동체의 이상향을 체험하는 시간이라 여긴다.

100여 년 전, 어떤 사냥꾼에 의해 발견됐다는 정구수굴은 굴 안에 샘이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따스해서 주민들이 목욕시설로 활용했다.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지질 특성으로 볼 때 땅 속에 흐르는 화산섬 특유의 지하 공간이 있다는 것.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공간을 상상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금능리 송문철 이장에게 마을주민들이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아주 간명하게 여섯 글자로 대답했다. "마을 일이 나 일" 마을공동체 결속력이자 단결심을 제주어가 지닌 찰진 정서로 표현한 것이었다. 금능리의 단합심이야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지만 이토록 강렬하게 마을공동체정신을 주장하는 모습이 너무도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어찌 생각하면 제주인의 마을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더 나아가 마을 일을 나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숙명적 존재로서의 '마을'이라는 것을 표방하는 것이다. 원담을 통하여 일상화 된 공동의 이익을 전통적으로 누려온 사람들의 의식 속에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결속력이 놀랍다. 해변을 낀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하여 관광과 관련된 시설과 업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보면 다른 마을에 비해 젊은층의 인구가 상대적으로 월등하게 많은 마을이다. 마을이 젊다는 것은 희망이 크기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을 이름처럼 황금이 쌓여지는 부촌으로 거듭 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릴 수가 없다. 모두의 이익이 나의 이익이라는 가치관으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대적하여 이길 어떠한 상대가 있으랴. 사람들이 모여 살면, 그 사람들의 마음가짐보다 더 큰 자산이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금능리다. <시각예술가>





펄랑가름 풍경

<수채화 79㎝×35㎝>


빛은 시간성의 산물이라는 회화적 관점이 있다. 지금도 꾸준하게 추구되는 인상주의적 과제이기도 하거니와 같은 사물도 '언제' '어디서'라는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것. 보통 풍경화에서 지붕 위에는 하늘이 그려지게 되지만 금능리에서 조감도처럼 조금 위에서 내려 보면 바다가 하늘을 대신하여 배경에 자리잡게 된다. 그것도 오후 다섯 시 정도에 태양을 등지고 바라보면 금능모래해변이 보유한 옥색에 가까운 파란 색이 신비감을 극대화시키며 펼쳐진다. 광원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와 바다 사이에서 그려낸 그림. '펄랑'이라고 하는 바다로 뻗어나간 해안가 마을 특유의 조간대 공간을 주제로 그린 것은 똑 같은 염분을 가진 바닷물임에도 바닥에 방대한 모래가 깔려 있는 곳과 그러하지 않은 곳의 차이를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다. 두 개의 바닷물 사이에 들어선 집들은 대부분 외벽을 흰색으로 칠해 있어서 화면 전체에 밝은 청량감을 불어넣어준다. 겨울이라 누런 풀잎들이 태양광선을 받아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소박하면서도 파격적인 구도 속에서 바닷가 마을의 조용한 일상을 담담하게 드러내는 일. 전체적인 색채대비를 위하여 집들의 형태는 단순화시켰다. 원근법의 방식이 조금은 동양화적인 요소가 동원된 측면이 있어서 어떠한 정한과 여유로움이 드러나게 된다. 바닷가에 살면서도 늘 바다가 그리운 그런 아이러니를 그리려 하였다. 지붕과 지붕들이 끊임없이 무언의 대화하는 이웃사촌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정겨움.





바다는 고요하고 산이 일렁이는 곳

<수채화 79㎝×35㎝>


관점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바라 봄'이기도 하다. 풍경화가 보유한 감성적인 요인이 있다면 관점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 평소에 필자가 섬 제주의 독특함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명소로 생각하는 위치와 시간. 바닷가엔 방금 전 일몰이 완료되었지만 한라산 영실기암 위에서부터 백록담까지는 아직도 햇살을 받고 있다. 금능리 해안가 원담에서 한림공원 숲 지역을 아우르는 수평구도 위에 펼쳐지는 오름들과 한라산은 출렁이는 파도다. 저녁이라 해풍과 육풍이 교차하는 시간에 잠시 바람은 고요하고. 멀리 펼쳐지는 곡선의 향연은 흡사 일렁이는 파도와 닮았다. 그런 느낌을 선물하는 곳. 그림을 그리러 다닌다는 이유가 세상에 주관적 관찰로 기여하는 경우가 된다면 이런 그림을 제시하는 일이다. 자연적인 원담 기능을 해주는 금능모래해변의 검은 투뮬러스가 채색하지 않은 조용한 바다를 상징하는 흰색과 명도 대비돼서 근경의 강렬함을 표현하였다. 저 검은 원담에서 백록담까지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과정. 인공구조물과 건물은 생략했다.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는 느끼게 하는 한라산과 오름들의 출렁거림은 악보의 흐름과 다르지 않다. 엉뚱한 소망이 있다면 저 검은 암반지대에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앉아서 교향곡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저 배경의 흐름이 확연하게 심포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금능리가 보유한 이 엄청난 경관자원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크나 큰 보람이요 소명의식의 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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