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47)중문동 대포마을
입력 : 2023. 09. 22(금) 00:00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화산섬 주상절리 그 대표적인 해안절경 마을




[한라일보] 관광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하여 관광단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중문 해안으로 입지 선정을 하게 된 것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해안 절경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중문동 해안과 이어지는 주상절리대는 천연기념물 제443호이면서 제주섬이 지질공원으로 인정받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육지가 바다를 향해 돌출한 곳은 제주어로 '코지'라고 한다. 반대로, 코지와 코지에 의해서 에워싸인 곳을 '개'라고 한다. 마을 해안을 따라서 걸어가다 보면 그 코지와 개가 오밀조밀한 멜로디를 연주하듯 시각적인 풍요를 선물하고 있다. 마을 바닷가는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한 지형이기에 '선궷네깍' 부근과 '제베낭궤' 등 곳곳에 주상절리 해안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베튼개' '큰여또' 일대에 잘 나타나 있는 파식대(波蝕臺) 형태는 파도의 침식에 의하여 상대적으로 평탄한 해안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옛 이름 '큰개'포구에서 훈독자 결합표기 형태인 '대포(大浦)'로 바뀌었다. 지금은 현대식 항만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옛날 '큰개'는 제비낭개와 데시비개동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자연포구였다. 이들 동산에서 뻗어나간 '자장코지'와 '모살넙개'는 포구의 천연방파제 역할을 했다. 주변 코지 앞에 펼쳐진 수 많은 '여'들이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의 기세를 잘게 부숴버린다. 한마디로 천혜의 항구다. 마을 어르신들이 설명에 의하면, 옆 마을 하원 법화사 주춧돌과 같은 돌들이 큰개 인근에 떨어져 있다는 것은 큰개를 통해 들어오던 외부 문물의 역사적 증표라는 것이다. 마을 이름 자체가 포구에서 왔기 때문에 큰개포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마을 명칭이야 해안가에서 왔지만 영역은 한라산을 향하여 길게 뻗어 올라가 해발 950m 지역에까지 이른다. 주봉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름은 해발 743m 거린사슴(대포동 주민들은 붉은오름이라고 함)과 동쪽에서 마주보고 있는 갯거리오름이다. 특히 거린사슴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산남지역 서쪽 일대가 시야에 전부 들어오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하천은 주거지역을 대포천과 거린사슴과 갯거리오름 일대에서 발원한 회수천과 동회수천이 주변 마을과 경계를 이루며 건천의 모습으로 내려오다가 약천사 인근에서 만나 '선궷내'가 돼 바다로 나간다. 옛날에는 선궷내의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하여 쌀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지역. 계단식 논을 만들어 섬 제주에서는 귀한 쌀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집들과 과수원, 비닐하우스들이 들어서 있어서 옛 모습들이 많이 바뀌었지만 조상 대대로 대포마을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광을 보유하고 있었는지, 그 자긍심을 보여주는 대포십경(大浦十景)이다. 사단고송(社壇孤松) 송전신지(松田新池) 남산관해(南山觀海) 암지명월(暗旨明月) 하봉목마(下峯牧馬) 남포귀범(南浦歸帆) 보성낙조(堡城落照) 선천관어(先川觀漁) 동회유천(東廻流泉) 사지구허(寺旨舊墟) 이상 열 개다. 마을 자체가 명승지라고 하는 주관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올레꾼들이 대포연대 위에 올라가 바라보며 내지르는 탄성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리라.

대포마을 임영찬 회장에게 마을공동체가 보유한 자긍심에 대하여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중문관광단지와 인접하여 40년 넘는 기간을 보내면서 주민들이 관광산업과 연계된 의식이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미래지향적으로 보존과 발전을 확보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마을이라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농반어의 생활환경을 조상 대대로 이어 내려오다가 중문관광단지라고 하는 거대한 변화의 곁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이 지금은 하나의 자신감으로 승화되어 후손들에게 물려줄 대포마을의 위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가능성이 관광산업과 연계하여 펼쳐질 미래에 대한 대포마을 주민들의 자신감. 주변 여건이라고 하는 것이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하는 환경에서 마을공동체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업그레이드 된 상황을 창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시각예술가>



완만한 오르막길에서
<수채화 79cm×35cm>


많이 변해버린 풍경이지만 오래전에 걸었던 길을 만나면 반갑다. 그 모습이 그대로라면 더욱 정겨운 것이다. 오후의 초가을 햇살의 눈부심을 그리려 하였다. 엠보싱이 있는 와트만지에 연필의 느낌을 가지고 현무암들의 거친 질감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담채로 물상들의 색을 엷게 칠한 것은 돌담이 지니는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풍경을 그리는 방법이야 재료에 따라서 기법에 따라서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지만 얻고자 하는 느낌을 위하여 선택을 한다면 여기서는 이 방법을 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였다. 온화한 느낌의 광선과 오랜 기간을 길과 밭, 길과 집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하게 수행해 온 저 돌담들의 노고를 그렸다. 두텁고 진한 방식이 아니더라도 스며든 듯 화면 속으로 들어간 느낌을 얻기 위하여 은은한 담채 또한 풍경을 표현하는 멋스러움이라 해야 할 것이다.

낮은 경사를 따라서 길가에 펼쳐진 그림자들이 함께 올라간다. 근경에서의 돌담과 중경에서의 돌담은 거리에서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이 다르다. 마치 전체와 부분을 놓여진 위치에서 설명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집 안에 심어진 오래된 나무가 옹골찬 기백을 발산하고 있다. 점점 높은 집들이 들어서는 시대에 그래도 예스러운 정한을 뿜어내는 고마움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

사람이 사는 공간에 대한 정겨움을 너무도 평범한 오르막길을 그리며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저 길을 따라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의 정이 오갔을 것이다.



큰개포구 서쪽 데시배기
<수채화 79㎝×35㎝>


인위적인 어떤 시설이 보이지 않다는 것은 천 년 전의 모습을 그대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 절경으로 수놓아진 해변에 깊은 역사의 흔적을 발견하였다는 기쁨에 그렸다. 50년 전 큰개포구 기록 사진을 보면 어찌하여 탐라시대부터 산남의 대표적인 포구였는지 확인 할 수 있었다. 특히 원나라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던 탐라총관부 99년 동안에 중국을 오가는 선박들이 이 곳을 중요한 항구로 활용하였는지도 알수 있는 저 자갈모래 공간. 손을 뻗어 품에 안은 느낌을 주는 해안지형은 다른 곳에도 존재하지만 너무 독특한 자연 여건이 있는 곳이다. 오랜 기간 현무암이 쪼개져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어 쌓여 있는 해변. 중국의 정크선이나 우리나라의 판옥선과 같은 배들이 밀물에 들어와 정박하고 썰물이 되면 견고한 바닥에 앉아서 배에 있는 물목을 내리거나 배에 실어서 밀물을 기다려 바다로 나가기 좋은 곳.

특히 그림에 등장하는 것 같이 자갈과 모래가 섞여 있는 곳은 목선을 끌어 올려서 수리하거나, 새롭게 건조하여 바다에 진수하기 좋은 작업 여건을 제공한다. 그리는 동안에 끊임없이 상상하였다. 저 곳에 중국을 다니는 수송선이 수리를 위하여 올라가 작업하는 모습. 재현하면 놀라운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는 역사성과 함께. 지금은 대포항 안쪽이 준설되어 깊어졌지만 옛날엔 자갈과 모래가 알맞게 배합된 그런 포구였다. 지금의 기준이 아니라 천 년 전 해양문화 기준으로 얼마나 귀중한 자연 여건을 보유하였던 곳인지 되새김 하듯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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