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57)표선면 하천리
입력 : 2024. 01. 19(금) 00:00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조상 대대로 내려온 승부근성으로 마을 발전
[한라일보] 마을 이름이 하천(下川)이면 어느 냇가인지 알아야 뜻하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천미천이다. 이 섬의 143개 하천 중에 가장 긴 25.7㎞나 되는 냇가. 한라산 해발 1100m 지경에서 발원해 조천읍 교래리에서 냇가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며 동쪽으로 흐르다가 송당리에서 남쪽으로 우회전해 성읍리를 비롯한 여러 마을들을 거치며 내려와 성산읍과 표선면의 경계를 이루며 하천리에서 바다와 만난다. 산북에서 시작해 산남에서 바다와 만나는 독특한 냇가의 끝이며 바다로 향하는 새로운 시작점이다.

번영로가 표선에 도달하기 전, 하천리 가운데를 지나간다. 제석오름이 주봉을 이루면서 천미천 서쪽을 따라 바닷가까지 정주공간의 대부분이 펼쳐진 마을. 표선면 동쪽 끝마을이다. 신천리와 신풍리를 경계로 성산읍과 마주하고 있고, 서쪽에는 표선리와 가시리가 있고, 북쪽으로는 성읍리와 인접한다.

강시원 이장
상동(묶은가름) 중동(방상동네) 하동(넓밭) 3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돼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전하는 설촌의 역사는 약 500년 전, 지금 상동 윗뱅듸 동산 덕거리에 위씨가 설촌했다고 전한다. 정의현 시절에는 좌면(지금의 성산읍)에 소속돼 있다가 1914년 표선면에 편입됐다. 원래 하천과 신풍, 신천 지역을 이르는 이름이 '냇끼'였다. 천미촌 혹은 천미리라고 불렀던 것은 냇가의 끝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렇게 부르던 시기에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조선 명종 7년(1552년) 천미포에 왜구가 침입해 왔을 때, 주변 마을 백성들이 힘을 합쳐서 싸우는 한편 관군 지원이 있을 때까지 막아낸 기록이다. 사진리, 화공소, 추군머들 등은 이로 인한 지명들이라고 한다.

달산봉과 이어진 느낌을 주며 제석오름이 마을 전체를 아늑하게 한다. 큰길가에서 가지처럼 뻗어나간 작은 농로들이 오밀조밀하게 밭과 밭 사이를 이어준다. 이러한 길들을 답사하다 보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경관적 가치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바닷가 자원과 관련해 예로부터 내려온 풍습이자 마을규약과 같은 불문율이 있었다. 자라는 기간 동안 그 누구도 채취를 금했다가 어느 정해진 날을 기해서 마을 해녀들 모두가 바다에 들어가 미역을 따는 것. 공동체의식의 구현이었다. 마을 주민 남녀노소 모두가 바닷가로 나가서 인산인해를 이뤘으니, 운반 작업과 갯바위 틈에 있는 미역까지 수확하는 행복감. 1970년대 중반까지 학교는 임시 휴교를 할 정도로 연중 가장 큰 행사였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과 해녀 일을 못하는 분들 집에까지 미역을 나눠드리던 공동체문화. 미역은 누구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으므로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규칙을 향약에 담아 실천하며 그 힘이 마을 구성원들에 의해 지탱된다는 것을 실천해 온 마을이다. 이러한 마을 문화는 자연스럽게 외부와의 접촉에서 강력한 결속력으로 작용한다. 마을 사람들끼리는 간혹 티격태격 하더라도 마을과 마을끼리 경쟁을 하거나 다툼이 있을 때, 가족의 일처럼 모여들어 대응하는 단합심은 이웃 마을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유명하다. 강시원 이장에게 하천리의 가장 중요한 자긍심을 묻자 자연스러운 대답은 "우리 마을 하천리의 정신자산목록 1호는 '승부근성'입니다." 다른 마을과 경쟁에서 지고는 못사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외부적 평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일도 계속 이어질 마을공동체 일체감의 표상 하천리. 조상 대대로 마을공동체 규약에 의해 발전을 거듭해 온 마을답게 공감대 형성에 있어서도 개인적 이기주의보다 [한라일보] 마을 전체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가 아직도 박동치고 있다. 그 가치관이 발생시키는 에너지는 사람답게 이웃해 살아가는 행복추구로 귀결된다. 그 옛날, 왜구들의 침략은 농기구와 창검으로 막아냈지만 지금 밀려오는 자본의 힘을 상대로 하천리의 정신적 자산을 지켜내는 일은 참으로 버겁고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놀라운 승부근성으로 이겨낼 것이라는 것. <시각예술가>



새소리 가득한 오후 풍경
<수채화 79cm×35cm>


밭 속에 돌로 쌓은 집이 있다는 것은 오래 전에 농업 용도로 썼던 창고로 보였다. 저 집을 짓던 시기에는 없던 창호며 햇살 가리는 장치까지 새롭게 등장한 것은 리모델링이라는 용어가 보편화 된 이후에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음을 뜻한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오후 햇살이 눈부시게 겨울 삼나무를 장식하고 있는 장면에서 어떤 황홀경을 맛보게 됐다. 밭은 겨울이라 쉬고 있고. 돌담과 상록수가 꿋꿋하게 초록을 지키고 있는 모습들과 집이 참으로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렸다. 수채화가 줄 수 있는 담채적인 요소와 화면에서 마르고 칠하기를 중첩해야 생성되는 공간감을 얻고자 노력했다. 깊이를 얻는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평이한 구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삼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의 농담과 색조 채도의 섬세한 배려가 획득되지 아니하고서는 불가능한 도전이다. 마을이 주는 다사로운 느낌을 이러한 소재들의 규합을 통해 표현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최소한 어느 겨울날 한가롭게 걸어가다가 이런 풍광과 마주하는 행복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화면을 채워갔다.

근경의 돌담과 중경에서 화면의 중심을 잡는 돌담이 묘한 공간적 대비효과를 주고 있다. 직선이 있는 곳은 역시 집이라는 대상뿐이며 자연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런 차이를 시각적 강조용법으로. 햇살을 표현하기 위한 저기 모두의 노력에 감사를 보내게 되는 것은 그린 이유이기도 하다.



제석오름의 저녁
<수채화 79cm×35cm>


해를 그리지 아니해도 서쪽으로 해가 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자연의 모습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시각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나지막한 오름을 주제로 측면에서 햇살이 들어오면 어떤 오묘한 명암을 만들어서 신비감에 이르게 하는지 그리려 했다. 물론 나무들이며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돌들에 이르기까지 조연들의 활동이 왕성하게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 어스름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시간적으로 절묘한 타이밍을 잡아서 무게감을 획득하는데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리려하는 대상보다 그 대상이 간직하고 있는 깊이가 항상 그리는 자를 괴롭히는 것이 현실이며, 실상이다. 사진으로 전달되는 매체의 특성 때문에 원화가 가지고 있는 거친 느낌들은 그냥 그림 속에 간직돼 있다. 한 마을의 주봉이라고 하는 상징성이 타지의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으나 오래전 마을공동체에 초등학교가 설립될 때, 저 오름을 학습림으로 어린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기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감동적인 오름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하루가 저무는 시간, 그리 대단한 존재감은 아닐지 모르나 끊임없이 세월을 이야기하는 포근함이 좋아서 그렸다. 높이 솟아 우쭐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다. 차분하고 품격 있게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닮아서 좋다.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소박한 겸허를 발견한다. 불가에서 이르는 제석천이 민심을 빚는 형상이려니 생각하면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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