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모리를 가다] (2)전통과 문화
입력 : 2025. 10. 23(목) 03: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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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전통의 고장

네부타 마츠리 현장. 네부타 앞에 하네토들이 서있다.
잠귀신 몰아내는 '랏세라' 함성… 장인 혼 깃든 네부타 행진
격렬한 현의 울림, 츠가루 샤미센 연주가 전하는 깊은 감동
히로사키 목조건물 속 레트로 감성… 근대와 현대가 공존
[한라일보] 전통 보존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전통을 박물관에서만 찾을 수 있다면 살아있는 전통이라 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아오모리현은 일상생활 속에서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ㅣ여름잠 쫓아내는 전국적인 축제
한여름 뜨거운 햇볕 아래, 농사꾼은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체력은 고갈돼간다. 이때 쏟아지는 잠은 농사꾼에게 한 해 농사를 넘어 생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일 것이다. 아오모리현의 주민들은 이 '잠 귀신'(睡魔)을 쫓아내기 위해 축제를 열어왔다.
매년 8월 2일부터 7일 사이 아오모리시엔 수많은 타지인들과 외국인들이 모인다. 일본에서 방문자 수 1, 2위를 다투는 축제인 '네부타 마츠리'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시기 도심·도외 심지어 바다 위까지 형형색색의 '네부타'가 행진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네부타는 축제에서 쓰이는 나무와 철사, 종이로 만들어진 거대한 조형물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부리부리한 인상의 무사가 귀신들과 싸우는 장면이 다뤄진다. 이는 역시 잠 귀신과 싸우기 위한 축제의 목적 때문이다. 독특한 점은 장인마다 내세우는 무사의 얼굴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장인은 항상 같은 무사의 얼굴을 사용하는데, 일종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다.
장인 혼자서 대형 네부타 하나를 만드는 데 보통 6개월가량 소요된다. 축제에서 입상하지 못한 네부타는 축제가 끝남과 동시에 소각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짧은 축제 기간을 위해 반년 동안 장인의 영혼을 불태우는 것이다.
"랏세라 랏세라!" 하네토(네부타를 끄는 사람)들이 구령에 맞춰 네부타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춤을 춘다. 여기에 태고의 박력까지 합쳐져 행인들을 압도한다. 네부타 마츠리에선 네부타의 예술성, 랏세라 구호 소리, 하네토의 춤 등을 종합해 경연을 진행한다. 1~4위와 특별상을 수상하면 아오모리시 앞바다 배 위에 작품이 띄워지는 영예를 누릴 수 있다. 또한 축제 이후 네부타 박물관인 '네부타의 집 와랏세'에 작품이 보관된다.
만약 네부타 마츠리를 놓쳤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다. 아오모리현에는 이외에도 20개에 달하는 '잠 귀신 쫓아내기 축제'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히로사키시의 '네푸타 마츠리'를 들 수 있다. '네푸타'와 '네부타'는 같은 어원을 공유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자의 사투리로 분화했다. 각 축제가 지역의 자부심인 만큼, 주민들은 한 글자 차이조차 소중히 여긴다.
네푸타는 네부타와 달리 주로 부채꼴 모양을 지닌다. 양면으로 돼 있는데 앞면에는 무사가, 뒷면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그려져 있다. 네푸타 마츠리에선 거대한 북에서 나오는 생동감이 심장을 뛰게 한다. 구호 역시 "랏세라"가 아닌 "야-야-도"로 구별된다.
ㅣ격렬한 현의 울림, 츠가루 샤미센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 현악기 샤미센(三味線). 중국의 싼시엔(三弦)이 류큐 왕국을 거쳐 일본 본토에 정착한 표현력이 뛰어난 악기다. 샤미센이 아오모리현 서쪽인 츠가루 지역에서 한번 더 변화를 겪었는데 그것이 바로 '츠가루 샤미센'이다.
츠가루 샤미센은 다른 샤미센에 비해 목이 굵고 줄이 두껍다. 그러나 가장 큰 특징은 외견이 아닌 마치 줄을 때리는 듯한 격렬한 주법에 있다.
일정을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들른 한 이자카야. 즐거운 회식 중 갑자기 점원이 손님들 사이에 의자를 가져와 앉더니 츠가루 샤미센을 꺼내 든다. 가야금과 같은 애절한 소리를 기대했지만, 그에게서 나오는 소리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츠가루 샤미센은 쫀득한 소리에 경쾌한 그루브를 지니고 있었다. 점원은 '어떻게 줄이 끊어지지 않는가' 싶을 정도로 빠르고 강한 주법을 구사했다. 손님들의 추임새와 어우러지며 흡사 버스킹 현장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현지인에 따르면 츠가루 샤미센 연주자는 '감성파'와 '테크닉파'로 나뉜다. 취재진이 만난 점원은 록 주법 느낌의 테크닉파에 가깝다고 한다.
과거에는 츠가루 샤미센 연주자 중 시각장애인이 많았다. 길거리 연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나쁜 기운을 없애기 위한 강한 주법이 발전했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입지전적 연주자인 타카하시 치쿠잔이 등장했다. 그는 감성과 테크닉을 겸비했다고 하니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과 비슷한 위상을 지녔으리라.
타카하시 이후 츠가루 샤미센은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반인 연주자가 늘어나며 일본인들의 일상 속 깊은 곳에 들어오게 됐다. 현재 츠가루 샤미센은 일본 록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등 전통으로서 튼튼한 기반을 지니고 있다.
ㅣ현대와 맞닿은 근대 건물들
아오모리현을 돌아다니다 보면 서양풍과 일본풍이 동시에 느껴지는 건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19세기 후반~20세기 초 근대에 지어졌는데, 지자체 차원에서 건물들을 보존하고 있다.
그중 히로사키 공원 주변 스타벅스 건물이 눈에 띈다. 1917년 지어진 이 건물은 2003년 국가유형문화재로 등록됐다. 이후 문화재의 매력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스타벅스와 지자체의 뜻이 맞아 2015년에 '스타벅스 히로사키 공원앞점'이 개장한 것이다.
건물의 내부는 옛 목조건물만의 고풍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의자의 등받이는 히로사키시 전통 자수(刺繡)인 '코긴' 무늬로 이뤄졌다. 목조건물과 코긴, 아오모리 사과 파이가 만나는 그곳은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이라 할 수 있다.
아오모리현에는 이외에도 1872년에 지어진 고등학교를 개조한 카페, 1903년 지어진 도서관을 개조한 향토 문학관 등 레트로한 건물들이 잘 보존돼있다.
아직 한국인들에겐 낯선 아오모리현. 대도시의 분주함보다는 자연의 여유로움이 그리울 때, 현대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전통이 주는 고즈넉함이 필요할 때, 일본의 숨은 보석 아오모리현에 방문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끝>
<일본 아오모리현=고성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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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현의 울림, 츠가루 샤미센 연주가 전하는 깊은 감동
히로사키 목조건물 속 레트로 감성… 근대와 현대가 공존
[한라일보] 전통 보존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전통을 박물관에서만 찾을 수 있다면 살아있는 전통이라 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아오모리현은 일상생활 속에서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한여름 뜨거운 햇볕 아래, 농사꾼은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체력은 고갈돼간다. 이때 쏟아지는 잠은 농사꾼에게 한 해 농사를 넘어 생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일 것이다. 아오모리현의 주민들은 이 '잠 귀신'(睡魔)을 쫓아내기 위해 축제를 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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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연에서 우승을 거머진 네부타 |
네부타는 축제에서 쓰이는 나무와 철사, 종이로 만들어진 거대한 조형물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부리부리한 인상의 무사가 귀신들과 싸우는 장면이 다뤄진다. 이는 역시 잠 귀신과 싸우기 위한 축제의 목적 때문이다. 독특한 점은 장인마다 내세우는 무사의 얼굴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장인은 항상 같은 무사의 얼굴을 사용하는데, 일종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다.
장인 혼자서 대형 네부타 하나를 만드는 데 보통 6개월가량 소요된다. 축제에서 입상하지 못한 네부타는 축제가 끝남과 동시에 소각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짧은 축제 기간을 위해 반년 동안 장인의 영혼을 불태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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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사키시의 네푸타 |
만약 네부타 마츠리를 놓쳤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다. 아오모리현에는 이외에도 20개에 달하는 '잠 귀신 쫓아내기 축제'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히로사키시의 '네푸타 마츠리'를 들 수 있다. '네푸타'와 '네부타'는 같은 어원을 공유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자의 사투리로 분화했다. 각 축제가 지역의 자부심인 만큼, 주민들은 한 글자 차이조차 소중히 여긴다.
네푸타는 네부타와 달리 주로 부채꼴 모양을 지닌다. 양면으로 돼 있는데 앞면에는 무사가, 뒷면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그려져 있다. 네푸타 마츠리에선 거대한 북에서 나오는 생동감이 심장을 뛰게 한다. 구호 역시 "랏세라"가 아닌 "야-야-도"로 구별된다.
ㅣ격렬한 현의 울림, 츠가루 샤미센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 현악기 샤미센(三味線). 중국의 싼시엔(三弦)이 류큐 왕국을 거쳐 일본 본토에 정착한 표현력이 뛰어난 악기다. 샤미센이 아오모리현 서쪽인 츠가루 지역에서 한번 더 변화를 겪었는데 그것이 바로 '츠가루 샤미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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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카야에서의 샤미센 연주 |
일정을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들른 한 이자카야. 즐거운 회식 중 갑자기 점원이 손님들 사이에 의자를 가져와 앉더니 츠가루 샤미센을 꺼내 든다. 가야금과 같은 애절한 소리를 기대했지만, 그에게서 나오는 소리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츠가루 샤미센은 쫀득한 소리에 경쾌한 그루브를 지니고 있었다. 점원은 '어떻게 줄이 끊어지지 않는가' 싶을 정도로 빠르고 강한 주법을 구사했다. 손님들의 추임새와 어우러지며 흡사 버스킹 현장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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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츠가루 샤미센 연주자 중 시각장애인이 많았다. 길거리 연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나쁜 기운을 없애기 위한 강한 주법이 발전했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입지전적 연주자인 타카하시 치쿠잔이 등장했다. 그는 감성과 테크닉을 겸비했다고 하니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과 비슷한 위상을 지녔으리라.
타카하시 이후 츠가루 샤미센은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반인 연주자가 늘어나며 일본인들의 일상 속 깊은 곳에 들어오게 됐다. 현재 츠가루 샤미센은 일본 록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등 전통으로서 튼튼한 기반을 지니고 있다.
ㅣ현대와 맞닿은 근대 건물들
아오모리현을 돌아다니다 보면 서양풍과 일본풍이 동시에 느껴지는 건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19세기 후반~20세기 초 근대에 지어졌는데, 지자체 차원에서 건물들을 보존하고 있다.
그중 히로사키 공원 주변 스타벅스 건물이 눈에 띈다. 1917년 지어진 이 건물은 2003년 국가유형문화재로 등록됐다. 이후 문화재의 매력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스타벅스와 지자체의 뜻이 맞아 2015년에 '스타벅스 히로사키 공원앞점'이 개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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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히로사키 공원앞점. |
아오모리현에는 이외에도 1872년에 지어진 고등학교를 개조한 카페, 1903년 지어진 도서관을 개조한 향토 문학관 등 레트로한 건물들이 잘 보존돼있다.
아직 한국인들에겐 낯선 아오모리현. 대도시의 분주함보다는 자연의 여유로움이 그리울 때, 현대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전통이 주는 고즈넉함이 필요할 때, 일본의 숨은 보석 아오모리현에 방문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끝>
<일본 아오모리현=고성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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