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62] 3부 오름-(121) 사라오름, 돌출한 봉우리
입력 : 2026. 02. 03(화) 03: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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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영향을 받은 오름 지명이 많다는 것은 허구

불교와 인과관계 없어
[한라일보]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지경에 있다. 표고 1324.7m, 자체높이 150m다. 화구호는 접시 모양이며 둘레 약 250m, 화구륜 1.2㎞ 정도다.
이 오름 지명은 1703년 탐라순력도와 177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삼읍도총지도 등 여러 고전에 사라악(舍羅岳), 사라봉(紗羅峰), 사라악(沙羅岳), 사라오름으로 표기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라오름은 제주시에 위치한 사라봉과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사라'는 우리나라 산 이름에 표기되는 '술'에서 파생되었으며, 신성한 산이나 지역을 의미한다.
또한 '사라'는 불교적인 의미로는 '깨달음'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제주의 지명에는 불교적 영향을 받아 범어가 많이 남아 있다." 불교 용어로서 '사라'라는 말은 석가모니가 열반한 숲의 신성한 나무를 사라수라고 한데서 볼 수 있고, 고승을 다비했을 때 나오는 유골을 사리라 혹은 사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부처의 몸을 상징하는 중요한 불교 용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단지 어형의 유사성에 기댄 풀이로서 '사라'라는 말이 왜 이 오름의 지명에 붙게 되었는지 등 그 인과관계를 제시하지 않아 수용하기 어렵다.
제주의 지명에 불교적 영향을 받은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고 했으나, 그 사례는 어떤 것을 상정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만약 같은 지명인 제주시의 '사라봉' 외에 보리악, 볼레오름 등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정된다. '보리'란 깨달음·신성함·보리수와 같은 불교적 상징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볼레오름은 간혹 불래(佛來)오름으로도 인식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볼레오름과 보리악이란 본 기획에서 이미 다룬 바 있듯이 불교와는 관련이 없다.
불래악과 보리악은 벼랑 기원
"'볼래'는 보리수의 제주어이다. 이 오름에 '볼래낭'이 많아서 '볼래오름'이라 부른다. 또한 존자암이 있어 불래악(佛來岳)이라고도 부른다." 서귀포시가 발행한 서귀포시지명유래집의 내용이다. 이런 식의 설명들로 인해 보리수나무와 관련이 있다거나 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재창작되고 있다. 이 오름에는 보리수나무가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다른 오름에도 난다.
존자암지에 대해선 1993년과 1994년 두 차례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이 절은 1373년과 1384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밝혔다. 포애악(浦涯岳), 볼라악(乶羅岳), 보라악(甫羅岳), 포라악(鋪羅岳), 불래악(佛來岳), 볼레오름 등 모두 여섯 가지가 된다. 이 지명들은 볼레오름 혹은 볼래오름의 음을 그대로 차용한 한자 지명이다. 소리 나는 그대로 표기하기 위해 동원했을 뿐이다. 즉, '벼라', '비러', '비레', '보레', '볼레' 등으로 변천을 겪은 '벼랑'의 변음들이다. 그러니 이 지명들은 벼랑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지 불교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다.
'보리오름' 역시 신성한 산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 보리오름 지명은 볼레오름과 같이 벼랑의 의미가 포함된 지명이다. 이 오름에는 엄청난 규모의 벼랑이 있다. 보리오름의 '보리'란 벼랑의 뜻이다. 이와 같이 볼레오름과 보리오름 지명은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법정악, 평평한 오름
법정악은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표고 760.1m, 자체높이 90m의 오름이다. 이 오름은 봉우리라 할 만한 지형은 없고 남북으로 긴 등성마루를 하고 있다. 이 오름 지명에 대해 “법정사(法井寺)란 절이 있었는데 연유하여 법정악(法井岳), 법정이오름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라는 설명이 유포되어 있다. 이 부분도 이해하기 어렵다. 절의 이름은 그 지역의 지명을 따서 작명할지 몰라도 그 절 이름으로 그 지역 지명을 짓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등성이가 평평하여 ‘ᄇᆞᆫᄇᆞᆫ한 오름’ 즉, 평평한 오름이거나 단지 ᄆᆞ르라고 했을 것이다. 제주어 ‘ᄇᆞᆫᄇᆞᆫᄒᆞ다’는 표면이 기울지도 않고 파이지도 않아 편편한 모양을 가리킨다. ‘ᄇᆞᆯ다’에서 온 말이다. ‘ᄇᆞᆯ’은 벌, 벌판 등의 ‘벌’과 기원이 같다. ‘ᄇᆞᆯ’이나 ‘벌’은 지명에서 ‘법’으로 차자한 경우가 많다. 법정악의 ‘정(井)’은 위가 평평하여 마루라 하여 ‘마루 지(旨)’를 차용했던 것인데 점차 잊히고 바뀐 것이다. 즉, 법정악은 고대인들이 ‘ᄇᆞᆯᄆᆞ르’라 했던 것이 한자화하면서 ‘법ᄌᆞ이(法旨)’로 부르다가 이곳에 절을 창건하여 절 이름을 ‘법정사(法井寺)’라 하면서 오늘날 지명도 이렇게 굳어진 것이다. 법정악은 산등성이가 평평하다는 뜻이다. 불교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 아니다.
사라오름의 ‘사라’는 ‘돌출하다’, ‘두드러지다’ 등을 의미하는 고대어에서 기원한다. 퉁구스어와 만주어에서는 ‘펼쳐지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발음은 ‘사라’로서 거의 같다. 이 말은 한국어 ‘서다’의 ‘서’에 대응할 것이다. 제주 고대어에서는 이보다 앞선 형태로서 ‘높은 산’ 혹은 ‘돌출한 봉우리’의 뜻으로 불렀을 것이다. 사라오름은 내부에서는 펼쳐진 공간으로 보이지만 멀리서 바라볼 때 돌출한 봉우리다. 한편 봉우리를 지시하는 ‘수리’에서 기원했을 가능성도 있다. 제주도 지명에서 흔히 나타나며, 멀리서 볼 때 뚜렷하게 봉우리로 보인다는 점에서 고려할 만하다. 다만 여기에서는 발음이 뚜렷하게 ‘사라’로 차별된다는 점에서 ‘돌출하다’라는 북방어 기원으로 봤다. 사라오름이란 두드러지게 돌출한 봉우리란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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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지경에 있다. 표고 1324.7m, 자체높이 150m다. 화구호는 접시 모양이며 둘레 약 250m, 화구륜 1.2㎞ 정도다.
이 오름 지명은 1703년 탐라순력도와 177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삼읍도총지도 등 여러 고전에 사라악(舍羅岳), 사라봉(紗羅峰), 사라악(沙羅岳), 사라오름으로 표기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라오름은 제주시에 위치한 사라봉과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사라'는 우리나라 산 이름에 표기되는 '술'에서 파생되었으며, 신성한 산이나 지역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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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오름, 오른쪽 눈 덮인 봉우리로 멀리서도 높게 돌출해 보인다. 김찬수 |
제주의 지명에 불교적 영향을 받은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고 했으나, 그 사례는 어떤 것을 상정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만약 같은 지명인 제주시의 '사라봉' 외에 보리악, 볼레오름 등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정된다. '보리'란 깨달음·신성함·보리수와 같은 불교적 상징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볼레오름은 간혹 불래(佛來)오름으로도 인식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볼레오름과 보리악이란 본 기획에서 이미 다룬 바 있듯이 불교와는 관련이 없다.
불래악과 보리악은 벼랑 기원
"'볼래'는 보리수의 제주어이다. 이 오름에 '볼래낭'이 많아서 '볼래오름'이라 부른다. 또한 존자암이 있어 불래악(佛來岳)이라고도 부른다." 서귀포시가 발행한 서귀포시지명유래집의 내용이다. 이런 식의 설명들로 인해 보리수나무와 관련이 있다거나 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재창작되고 있다. 이 오름에는 보리수나무가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다른 오름에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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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오름 분화구, 능선 뒤로 보이는 망체오름은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김찬수 |
'보리오름' 역시 신성한 산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 보리오름 지명은 볼레오름과 같이 벼랑의 의미가 포함된 지명이다. 이 오름에는 엄청난 규모의 벼랑이 있다. 보리오름의 '보리'란 벼랑의 뜻이다. 이와 같이 볼레오름과 보리오름 지명은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법정악, 평평한 오름
법정악은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표고 760.1m, 자체높이 90m의 오름이다. 이 오름은 봉우리라 할 만한 지형은 없고 남북으로 긴 등성마루를 하고 있다. 이 오름 지명에 대해 “법정사(法井寺)란 절이 있었는데 연유하여 법정악(法井岳), 법정이오름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라는 설명이 유포되어 있다. 이 부분도 이해하기 어렵다. 절의 이름은 그 지역의 지명을 따서 작명할지 몰라도 그 절 이름으로 그 지역 지명을 짓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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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오름 정상, 멀리 서귀포 일대를 조망하기에 알맞다. 김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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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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