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82] 3부 오름-(141)지그리오름
입력 : 2026. 08. 04(화) 03:00
김찬수 hl@ihalla.com
‘지그리’라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이름의 기원
이리저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아


[한라일보] 생소하기 그지없는 '지그리'라 불리는 오름이 있다. 큰지그리오름과 족은지그리오름이다. 큰지그리오름은 표고 598m에 자체높이 118m, 족은지그리오름은 이보다 훨씬 작은 표고 504m에 자체높이 69m 정도다.

큰지그리오름은 남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오름이다. 분화구는 이와 같이 벌어졌다고는 하나 폭이 매우 좁아 골짜기를 이룬다. 골짜기는 남서쪽으로 이웃하는 민오름을 사이에 두고 작은 골을 형성하고 있다. 족은지그리오름은 동남쪽으로 넓게 벌어진 말굽형 오름이다. 여기에서 발원하는 골이, 이웃하는 바농오름과의 사이로 이어진다.

왼쪽부터 바농오름, 족은지그리오름, 큰지그리오름, 민오름, 절물오름. 북서쪽 상공에서 촬영.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제공
이 오름 지명에 대해선 1653년 탐라지에 지기리악(之奇里岳)이라고 한 것이 처음이다. 이후 지고리악(智古里岳), 지구리(止九里), 지기이악(只其伊岳), 대지기리악(大地氣理岳), 소지기리악(小地氣理岳) 등으로 표기됐다. 이에 대해 '이 오롬은 일찍부터 지기리오롬으로 부르고, 이게 점차 소리가 변해 지그리오롬, 지구리오롬, 지고리오롬 등으로 실현하면서 한자로 지고리악(智古里岳), 지구리(止九里) 등으로 표기하게 됐다'는 책이 있다. 이런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 뜻은 모른다'가 결론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이 지명들이 나오는 고전의 연대순으로 지명을 나열하면 1653년 지기리악(之奇里岳), 1703년 지고리악(智古里岳), 1734~1754년 사이 지구리(止九里) 순이다. 1841년에는 다시 1653년에 표기했던 지기리악(之奇里岳)으로 표기했는데 이것은 실로 188년 만의 일이다. 지기리악이라 했던 것을 지고리악으로 표기한 것이 불과 30~50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이 기간은 너무 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후 1899년 지기이악(只其伊岳), 1910년 지기리악(地氣理岳)이 된다.



한자 사용 집단이 이주해 온 증거


그러므로 일찍부터 '지기리오롬'으로 불렸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이후 소리가 변해 지고리악(智古里岳), 지구리(止九里) 등으로 표기됐다는 것도 단정하기 어렵다. 수백 년 세월 동안 소리가 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기리'가 '지그리', '지구리', '지고리'로 변했다는 추정은 무리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위의 기록으로 볼 때 '지기리'라는 표기가 '지고리', '지구리' 등으로 혼란을 보이다가 다시 '지기리'로 되돌아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소리가 변한 것이 아니라 '기리', '고리', '구리'가 혼용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지'는 무슨 뜻이길래 이렇게 장구한 세월 변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기리', '고리', '구리'는 무슨 뜻이길래 조금씩 변하면서도 끈질기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음상이 조금씩 변했거나 심지어 변하지 않았더라도 채록하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적느냐에 따라 표기는 달라질 수 있다. 화자가 남녀노소 그리고 어느 지역인가에 따라 달라지고, 받아 적는 사람이 어떻게 들었는가에 따라서도 달라지며, 또 어느 글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여러 기록으로 볼 때 '지그리'가 음차 표기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위와 같이 지명 표기의 흐름이 어떤 경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그리고 표기에 동원된 한자를 볼 때 이 지명은 한자어가 아니라 고유어 기원임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다.

다음에는 이 '지기리', '지고리', '지구리'가 복합어인지 단일어인지 풀어보자. 이 지명의 변천에서 일관되게 변하지 않은 말이 있다. 바로 '지'라는 말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보통 '지'+'그리', '고리', '구리'일 가능성이 높다. '지'는 제주도의 지명에서 '마로 지(旨)'에서 기원한 예가 여럿 보인다. 손지오름, 모지오름, 저지오름, 지미봉의 등의 '지'에서 볼 수 있었다. 마르 즉, 등성마루가 평평한 지형을 말한다.



‘마르오름’이면서 ‘골’이 팬 오름


한자어 '지(旨)'가 제주 지명에서 언제부터 사용됐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제주도 지명을 기록한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이라고 해 봐야 고려사 정도다. 그러나 이 기록이 제주도 고대인들이 한자를 언제부터 썼는지를 단정해 주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기록만이 전부도 아니다. 앞으로 발견될 수도 있고, 아니면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언어학에서 이런 파편이나마 발굴하고 음운의 변화 등을 고려해 재구한다면 고대인의 이동, 역사를 복원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한자를 사용했던 집단이 제주도에 이주해 온 증거의 하나라고 추정할 따름이다.

다음은 여기에 붙어 있는 '기리', '고리', '구리'를 풀어야 할 차례다. 이 말은 '골'에 온 말이다. 즉, 골짜기가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제주어에서는 '갈'로 나타나며 이 말은 연음화 과정으로 '가르'가 된다. '기리', '고리', '구리' 등은 결국 '가르'에서 기원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명사형 접사라 불리는 '기'가 붙으면 '까끄래기', '꾀꼬리', '갓그래기' 등으로 됨을 앞 회에서 몇 차례 살펴보았다. 극락오름은 '가라기'를 한자로 표기한 것임도 알 수 있었다. 이 오름들은 샘이 있거나 골짜기가 있는 오름들이었다. 지그리오름은 이와 달리 위가 평평한 '마르오름'이면서 '골'이 팬 오름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이런 점을 지명에 반영한 것이 '지그리'다.

큰지그리오름 남서쪽에 연접한 오름이 민오름이다. 표고 641.8m, 자체높이 136m다. 등성마루는 얕게 기복을 이루며 길게 이어진다. 그 길이가 무려 570m 정도나 된다. 여러 저자들이 이 오름에 나무가 없어 민둥산이란 뜻으로 민오름이라고 한다지만, 실제 뜻은 이와 거리가 멀다. 등성마루가 두드러진 오름이라는 뜻의 '마르' 오름이란 뜻이다. '민'이란 '마르'의 축약형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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