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85] 3부 오름-(144)남산봉과 본지오름
입력 : 2026. 08. 25(화) 03:00
김찬수 hl@ihalla.com
오름 지명 해독, 비슷한 말 찾아내기로 알면 곤란
‘남’이란 남쪽일까 나무일까?


[한라일보] 남산봉이라는 익숙한 지명의 오름이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성산읍 신풍리지만, 지리적으로는 표선면 성읍민속마을 가까이 있다. 성읍 정의읍성과는 직선거리 1㎞ 이내다. 그 사이 천미천이 흐르고 있다. 이 하천의 동쪽은 성산읍이고, 서쪽은 표선면이다.

남산봉, 멀리 보이는 마을은 성읍민속마을. 동북쪽 남산봉로에서 촬영. 김찬수
이 오름의 지명 '남산'은 남쪽에 있는 산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의현 시대 성읍리에선 영주산을 뒷산, 남산봉을 앞산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곤 한다. 이런 논리라면 정의현 시대 이전에는 뭐라고 했을까? 왜 이 산을 앞산이라고 했을까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정의읍성을 기준으로 이 오름은 동남쪽이다. 이에 대해 오름 나그네라는 책에는 성읍 정의현청에 일관헌이 있는데, 이 건물이 남동향이라서 앞에 바라보이는 오름을 어느 현감인가가 남산이라고 명명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또 한 전문가는 남산(南山) 뒤에 봉(峯) 또는 봉(峰)이 덧붙어 남산봉(南山峯) 혹은 남산봉(南山峰)이라 하는데, 이것이 남산오름을 제대로 표기한 것이면서 '남산오름'은 '나무가 선(산) 오름'이라고 했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것은 남산오름이라는 오름 이름에 들어 있는 '남'이 무슨 말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남'이란 과연 남쪽일까 나무일까?



나무가 앉은 오름은 어디에


옛 문헌에는 어떻게 표기했을까? 1653년 탐라지라는 책에는 남산(南山)이라고 표기했다. 1679~1680년경 제주 방어체계·풍속 등을 기록한 남사일록이라는 책에는 남산봉수(南山烽燧)라고 해 역시 남산이라고 표기했다.

풍력발전기 뒤로 보이는 본지오름, 모구리오름 정상에서 촬영. 김찬수
비슷한 시기에 나온 지도 탐라도, 1703년 탐라순력도에서도 남산망(南山望)으로 나오고, 1709년 탐라지도, 18세기 중반 제주삼읍도총지도, 1872년 제주삼읍전도 등 여러 지도에 남산봉(南山烽)으로 표기했다. 일제 강점기 지도에는 남산봉(南山峰)으로 표기했으나 역시 '남산(南山)'이라 한 것은 일치한다.

대체로 봉수를 표기하려고 한 지도 등의 문헌에는 남산봉수(南山烽燧), 남산봉(南山烽)으로 표기했다. 그 외로는 최초의 표기인 '남산(南山)', 그 이후 남산망(南山望), 남산봉(南山峰) 등이 검색된다. 남산봉(南山峰)이란 오름이라거나 산의 의미를 주려고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남산망(南山望)이란 남산 '마르'를 표기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르'는 '마'로 축약되고 한자표기로는 망(望)으로 쓰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 오름이 등성마루가 길게 보인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남산이라는 지명이 '남쪽 산'이라는 주장은 우선 이 방위가 현청에서 남쪽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지받기 어렵다. 설령 현청에서 볼 때 남쪽 산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렇다면 왜 북쪽, 동쪽, 서쪽 산은 없는가. 특히 이에 대응하는 북쪽 산은 있을 법한데 그런 기록은 없다. 정의현은 1416년 설치돼 1423년 성읍리로 읍치를 이전했다. 이후 1895년 정의현이 정의군으로 개편되고, 1914년 정의군이 폐지돼 제주군으로 통합되는 역사가 있다. 적어도 491년 간이나 현청 소재지로서 기능했다. 이토록 긴 기간 남산은 있으되 북산은 없다는 건 자연스럽지 못하다.

나무가 선 오름이라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나무가 선 오름이라는 이름을 가지려면 이 외 여러 오름에는 나무가 앉았거나 누워 있었다는 특별한 이유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남’은 ‘낮은’, ‘본’은 ‘작은’


이런 점에서 남산의 '남'이 '남녘 남'이나 '나무 남(낭)'이 아니라 어떤 고유어일 수 있다는 추정을 하게 한다. 고대어로 '남'은 '낮은', '작은'을 의미한다. 퉁구스어로는 '니아마'를 공통 조상어로 분화했는데, 그중 에벤키어 '남아', '남이' 등이 대응한다. 몽골어권에서는 더욱 음형이 유사하다. '남'을 공통 조상어로 해 분화했다. '낮은'의 뜻을 갖는다. 몽골문어에서 '남', '나마가', 칼카어에서 '남', '남우', 부리야트어와 칼미크어에서 '남'이 '낮은'에 대응한다. 인접해 영주산, 모지오름, 모구리오름 등 쟁쟁한 오름들이 있다. 그중 영주산은 표고 326.4m, 자체 높이 176m로서 표고 178.8m, 자체높이 54m에 비하면 압도적이다. 남산이라는 지명은 이들에 비해 '낮은'의 뜻을 갖는 것이다. '산'은 '마루'를 한자로 쓸 때 흔히 동원되는 한자다.

인접해 본지오름이라는 오름이 있다. 본지오름은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남산봉 동쪽 약 1㎞ 거리에 있다. 오름 자락으로 본다면 50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표고 151.9m, 자체 높이는 32m에 불과하다. 면적도 좁다. 노박덩굴이 이 오름에 많이 자생했다는데 연유한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노박덩굴은 제주 방언으로 '본지', 본지낭이라 한다고 부연하고 있다. 이런 설명은 제주의 오름이라는 제주도가 간행한 책을 비롯해 전문가까지 합세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중의 이러저러한 오름 전문가들도 이렇게 설명하고, 그런 이유로 온갖 인터넷 자료들에서 퍼 나르는 실정이다.

본지오름이라는 지명의 '본지'라는 어휘에서 '본지낭'이 떠오르는 건 사실이다. 오름 나그네라는 책에서 처음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의 기저에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위안이 들어있을 것이다.

이 오름에 유달리 본지낭이 많이 자생한다는 상황이나 이유가 있다는 것인가? 본지오름의 '본지'란 이 말은 '본+지'의 구조다. '본'이란 고대어로 '작은'의 뜻이다. '보' 혹은 '보이'로도 나타난다. 여기에 관형격 어미 'ㄴ'이 붙은 구조다. '지'는 '마루 지(旨)'다. 작은 마루의 뜻이다. 인근 영주산과 모구리오름 같은 큰 마루라는 뜻의 오름에 비해서 작은 마루라는 뜻이다. 지명 해독이 오늘날의 비슷한 말을 얼마나 잘 찾아내는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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