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경제·고립·정신적 어려움… 겹겹이 쌓인 삶의 무게
입력 : 2026. 08. 18(화) 16:28수정 : 2026. 08. 18(화) 17:25
특별취재팀=박소정·양유리·강희만기자
[제주, 생명존중도시로 나아간다]<2>마주한 위기
제주, 자살원인 '경제생활문제' 비중 커… 전국과 다른 흐름
"생계 책임 남성·고령화 속 빈곤 노인·사회적 허리세대 40대"
평균 4.3개 복합 스트레스 경험… "단일 원인으론 설명 어려워"
[한라일보] '4.3개'. 최근 3년간(2022~2024) 심리부검 대상 자살사망자가 사망 전 경험한 스트레스 사건의 평균 개수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2024년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심리부검은 자살사망자의 가족이나 지인의 진술, 고인의 기록을 바탕으로 심리·행동 변화와 생애 스트레스를 확인하고 자살에 이르게 된 배경을 추정하는 조사다. 조사결과 이들은 정신건강·성장과정·가족관계·경제·직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스트레스를 다중으로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사망을 단일한 원인으로 단정해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제주가 마주한 '아픈 지표' 뒤에도 통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겹겹이 쌓인 삶의 위기가 있었다.

l 커지는 경제적 어려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한 제주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설 제주자살예방센터가 경찰청 변사자 통계를 기반해 분석한 '2024년 제주 원인별 자살 현황'을 보면 '경제생활 문제'가 전체 자살사망자(243명)의 39.9%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이어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31.0%, '육체적질병 문제'가 9.3% 등 순이었다.

전국과는 다른 흐름이다. '전국 원인별 자살 현황'을 보면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전체 자살사망자(1만4872명)의 35.4%으로 가장 많았고 '경제생활 문제'가 29.6%로 뒤를 이었다. 반면 제주는 울산과 함께 '경제생활 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실제 도내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사법정보공개포털에 따르면 도내 가계대출 연체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올해 1~5월 제주지방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94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62건)보다 9.9% 증가했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같은 기간 기준으로 가장 많은 수치다. 개인파산 신청도 299건으로, 지난해 같은기간(248건)보다 20.6% 늘었다. 고금리·고물가·고유가 등으로 경제적 부담이 커진 가운데 도내에서 소득 감소와 경영난 등으로 빚을 상환하지 못해 개인회생이나 파산절차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제주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경제적 어려움이 도민들의 심리적·정서적 위기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면서도 "자살 원인을 단순히 경제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복합적으로 분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한 사람의 삶에 작용하는 위험 요인들이 긴밀하게 맞물려 심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직이나 파산 같은 단일 사건의 결과물이 아니라 개인의 내적 취약성이나 정신건강 문제와 함께 경기침체, 고립 같은 구조적인 사회문제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나타나는 복합적인 위기 상황의 결과로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l 두드러진 위기신호

제주에서는 남성, 80대 이상 노인, 40대 중장년층에서 위기 신호가 두드러진다. 2024년 제주 남성의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 수)은 55.3명으로 여성(17.3명)보다 3.2배 높았다. 연령별로는 80세 이상이 64.6명으로 가장 높았다. 도내 모든 연령대 가운데 자살률 증가 폭이 가장 컸던 건 40대였다. 40대 자살률은 57.4명으로, 전년(33명)보다 24.4명이 늘었다.

40대의 위기는 제주만의 현상이 아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사망원인 통계 결과'를 보면 전국의 40대 자살률은 36.2명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4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암에서 자살로 바뀌었다. 40대가 보내는 위기신호를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정영은 제주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제주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도내 개인회생이나 파산 신청이 역대 최고치에 달했던 금융지표와 40대 자살률 급증 시기가 맞물리는 것을 보면 현실적인 채무 압박과 실직, 폐업에 따른 무력감이 이들의 심리적 임계점을 낮추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 센터장도 지역과 특정 집단에서 나타난 높은 지표를 경제적 어려움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생계 책임자로서 겪는 재정적 부담과 정서적 고립이 겹친 남성, 고령화 속 신체 질환과 빈곤이 중첩된 80대 이상 노인층, 가정과 일터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감을 지는 사회적 허리세대로 금리 부담과 내수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40대 중장년층 등 각 집단이 처한 환경과 인구학적 특성이 유기적으로 얽혀 위기가 다르게 나타난 결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박소정·양유리·강희만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 ☎ 1577-0199, 자살예방 상담 전화 ☎ 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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