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녀를 말하다-4부] 제주해녀 구술사 (2)일본 오사카 강명희 해녀
입력 : 2026. 08. 31(월) 04:00수정 : 2026. 09. 01(화) 14:54
양유리 기자 glassy38@ihalla.com
바다 오염으로 일터 빼앗긴 해녀, 일본으로 건너가다
일본서 출생해 7살에 한국으로… 법환리서 물질 시작
남편 떠나보내 가장이 된 해녀… IMF에 다시 일본행

30여 년 해녀 생활 회상하며 “고됐지만 덕분에 행복”


[한라일보] 일본 오사카 코리아타운 인근에 한인들이 자주 찾는 한 다방. 주황빛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꽃이 그려진 흰 블라우스를 입은 강명희(90)씨는 다방에 들어서는 손님들에게 연신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강명희 씨가 일본 오사카 이코노구 모모다니의 한 다방에서 취재진과의 인터뷰에 답변하고 있다. 강희만기자
강 씨는 새로 온 손님에게 앉을자리를 안내하는가 하면 오랜만에 얼굴을 본다며 손을 쓰다듬고 근황을 나눴다. 이 다방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강 씨는 약 30년 전 제주에서 오사카로 건너온 해녀다. <한라일보>는 지난달 9일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 모모다니의 한 다방에서 강 씨를 만나 제주에서 해녀로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강 씨는 1937년 4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시절 강 씨의 부모는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강 씨가 5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낯선 땅에서 5남매를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강 씨가 7살이 되자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이들 가족은 서귀면 법환리(서귀포시 법환동)로 터전을 옮겼다. 일본에서 태어난 강 씨는 한국말이 서툴러 초등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다. "친구들이 니혼진(일본 사람)이라고 놀리면서 막 나무랐어.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학교에 못 가겠다고 했어. 한 5학년 때쯤 결국 학교를 그만뒀지."

홀로 가족의 생계를 이끄는 어머니를 도와 강 씨는 일찍이 밭일 등 노동에 뛰어들었다. 강 씨는 당시로선 드물게 두 살 연상의 남성과 2년간 연애 후 19세에 결혼했다. 강 씨 부부는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낳아 길렀다.

강 씨는 결혼한 뒤에 해녀 물질을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필요했고, 강 씨가 사는 곳은 넓은 바다가 있는 법환이었고, 주변 여성들은 모두 해녀였다. 여자가 물질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주변의 권유에 강 씨는 물질에 뛰어들었다. 광목(무명실로 만든 면직물)으로 만든 물옷부터 연철(허리춤에 차는 쇠), 테왁 등 각종 물품은 남편이 구해줬다.

물질을 그만둔 지 30년이 다 돼가지만 바닷속은 훤히 기억난다. "아이고 기억나고 말고. 처음엔 물질이 겁나고 해도, 물질하다 보면 느낌이 와. 여긴 들어가면 못 나오겠다. 오늘은 바당(바다)이 너무 세다. 다 느껴져."

바다 날씨에 생명이 달린 만큼 물질은 절대 혼자 가지 않는다. 같은 바다라도 기상이 달라 같은 날이라도 특정 바다에서만 조업했다고 강 씨는 전했다. "그때는 텔레비전(TV)도 없으니까 바당(바다)이 안 세면 도모다찌(친구)들이 물질하자고 해. 같은 법환 바다라도 날씨가 달라. 바당에도 지역이 있어. 망다리, 배엄주리(배염줄이), 막수개(막숙개), 남해. 지역이 더 많긴 하지만 이렇게 4개로 나눠졌어."

강 씨는 주로 오후 3~5시쯤 물질을 시작해 한 번 들어가면 2~3시간가량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물때에 따른 바다의 밝기도 기억했다. "바다가 서물, 너물, 다섯물(물때를 이르는 말)이 있어. 서물날은 좀 밝은 데, 너물날은 조금 어두운 데, 다섯물날은 캄캄하니까. 물질하고 나오면 불턱에서 불도 쬐고. 바다에서 소라랑 전복, 문어, 미역 같은 걸 캐면 다음 날 아침 일찍 오일시장이나 매일시장에 가서 팔아. 전복이랑 문어가 최고야. 제일 돈이 됐어."

강 씨가 55살이 되던 해에 남편은 일하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강 씨는 가족에게 남은 빚을 감당하면서 아이들을 홀로 키워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시기 법환 바다에서는 해양 오염이 발생해 더 이상 조업이 힘들게 됐다고 강 씨는 전했다.

강명희(가장 왼쪽) 씨가 일본 오사카 이코노구 모모다니의 한 다방에서 손님들과 함께 음료를 마시고 있다. 강희만기자
법환 바다는 1971년 호근 재래식 간이분뇨처리장이 들어선 이후 해양오염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졌다. 1980년대에는 분뇨처리장의 오·폐수가 바다로 흘러들어와 법환마을 바다가 크게 오염되는 피해도 발생했다. 1990년대 초 신시가지 개발이 본격화되며 대규모 아파트와 주택 등이 들어섰고, 법환 주민들은 생활 오·폐수가 바다를 오염시킬 것이라며 집단 반대운동을 하기도 했다.

강 씨에 따르면 1990년대 말쯤 법환마을 바다는 더 이상 해녀들이 조업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이 심각했다. "바다가 오염되니까 물건이 안 나와. 물 안이 어두워서 안 보였어. 바다가 더러워진 게 희한할 정도더라고." 해양오염이 없었다면 물질을 계속했을 거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강 씨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로 다시 건너갔다. "처음 갔을 때 일본말도 기억 안 나고. 공항에서 하루 노숙을 했어. 근데 한국인이 말을 걸면서 일자리를 추천해 줬어. 김치 만드는 가게였는데 거기서 6년을 일했어. 새벽 4시부터 일하면서 빚도 다 갚고, 집도 샀어."

강 씨는 일본으로 이주하며 해녀 생활을 그만뒀다. "너무 힘들었거든. 바다에 들어가면 숨이 꼴깍꼴깍 했지. 숨이 차서 위험할 때도 많았어. 다시 돌아가면 절대 못 해. 생각이 없어."

이처럼 고된 해녀생활이었으나 바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여전하다. 강 씨는 "바다가 밉진 않았다. 젊을 때에는 바다가 잠잠한 걸 보면 들어가서 돈을 벌고 싶었다"며 "바다 덕분에 아이들도 키우고, 지금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양유리 기자·강희만 부국장(사진·영상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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