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25시]폭우 뚫고 영화감독들이 온 이유
입력 : 2011. 05. 12(목) 00:00
이현숙기자
11일 오전 아름다운 강정 구럼비 해안에 폭우가 쏟아졌다. 구럼비 해안은 길이 800여m에 이르는 한 덩어리의 용암단괴인 구럼비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멸종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가 서식하는 곳이다. 범섬을 마주한 해안에 폭우를 뚫고 '내로라하는' 영화감독들이 모여들었다.

특별한 영화제 시상식이라도 열렸던 것일까? 아니면 대단한 영화라도 한편 찍으려는 걸까? 한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영화감독들은 왜 이곳에 모였을까.

이들은 영화평론가 양윤모씨의 석방과 제주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외쳤다. 장기간 단식중인 양씨를 면회하고 온 이후여서인지 표정은 숙연하고 어두웠다. 해안에 끊임없이 내리는 거센 빗줄기는 강정마을의 눈물 같았다. 기자회견문을 읽기 전에 이들은 돌아가면서 '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30여년전 제주해안 일주를 했었다는 정지영 감독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으로 꼽는 곳이 강정해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양씨를 지칭해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야 이곳에 온 것이 부끄럽다"며 "아름다운 강정해안과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를 함께 구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석한 영화감독들은 하나같이 "국책사업이란 미명하게 환경대책은 물론 주민동의라는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해군기지 건설을 정부와 해군이 철회할 때까지 싸우겠다"며 "이번 싸움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싸움"이라고 했다.

영화인들은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할 말이 있다면 강정마을 주민들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고 이것이 영화·문화예술인의 사명'이라고 했다. 이들의 기자회견이 열리는 동안에도 공사가 시작될 것을 감시하는 반대대책위의 사이렌이 수차례 울려 긴장감이 감돌았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둘러본 해안은 생채기를 간직한채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조용히 서 있었다.

정부 스스로 제주해군기지 건설 배경으로 삼았던 '대양해군'정책을 사실상 접었기 때문에 제주해군기지를 굳이 건설할 이유가 없다는 대책위의 이야기도 들려왔다.

영화인들에 이어 오늘(12일)은 야5당 해군기지 진상조사단이 현장을 찾는다. 현재 해군기지 문제로 인해 강정마을 공동체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문득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싶어졌다. 제주에 왜 해군기지가 들어서야 하는지. <이현숙 제2사회부 차장>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6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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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향기~ 05-17 01:30삭제

"해군기지 강정유치는 마을발전위한 값진 성과물"
찬성주민,추진위원회 야5당 조사단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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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날짜 : 2011. 05.12. 17:02:32
강정마을 해군기지 찬성측 주민들은 12일 야5당 제주해군기지 국회진상조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후보지로 결정된 것은 마을발전을 걱정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변화를 모색하려는 강정주민들의 노력으로 얻어진 값진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민군복합형 제주해군기지건설 강정마을 700여 찬성주민들과 추진위원회 일동'이라고 명칭붙여진 이들은 이어 "일부 주민들은 화순마을부터 이어져온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외부단체들의 개입으로 부정적인 주장과 선동으로 인해 마치 어떤 음모에 의해 진행된 것처럼 매도하고 지금까지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마을에 건설될 민군복합형 제주해군기지가 주민들과 함께하는 친환경적 민군복합항으로 크루즈항의 기능을 갖춘 자랑거리이자 새로운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역설했다.

윤 모 전 마을회장은 "이미 지난 정부 당시 절차가 다 이뤄진 것으로 민주당이 야당이 됐다고 이제와서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문제"라며 "진상조사가 아니라 발전계획을 갖고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참석자는 "해군기지의 중요성과 시급성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로 '이어도'문제를 고려할때 시급히 이뤄져야 하며 해군기지를 통해 인구유입과 상권활성화를 이뤄야 한다. 평화는 스스로 지켜야 하는만큼 해군기지와 평화의섬은 양립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이현숙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저렇게 취재했던 이현숙기자가 편집국 25시라는 자기들만의 공간을 이용해서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어디까지 끌고다닐것인지?

속된말로 양쪽중에 한놈은 대갈통에 피가터져버려야 속이후련하다는건지?

종결한다... 싸움시키지마라...

유채꽃향기~ 05-17 00:52삭제

너희들한테 땅을 한평 강탈했냐? 당신들한테 금전을 착취 했냐? ...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 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어디 틀린 한말이라도 있는가?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이것 또한 유신잔당의 산물인가???

육영수여사의 서거... 국민들은 다울었어도 박정희는 울지도 못했다...

대 한 민 국 대통령 이기때문에...

그사람 박정희대통령이 측근에게 총맞아 죽으니깐?

개나 소나 돼지나 온갖 잡것들이 들고일어난다...

장기집권~ 유신독재~ 독재철패~ 또뭐?

박정희 대통령이 총맞아죽었다... 그것도 심복에게... 잘된일일까?

이후로 전두환... 노태우... 깅영삼...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지금이시대에 까불거리는 당신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의 임금은 누구였는가?

임금? 내마음의 임금도하나 섬기지도못한체 이시대를 잘났던못났던 살아온 사람들...

비겁한것들...지나온 위정자들 인정못하엿다면 세금은 왜내나? 돈은 왜벌었나?

오늘은 5-16 ... 박정희 대통령 영결식때 아마 당신도울었고 당신부모들도 통곡하였을

진데... 간혹 댓글난이나~ 여러 표현글에 박정희 대통령을 쌍욕으로 도배하는 위인들을

보면 호래자식이 따로없다는 생각이든다...

여기 한라일보를 보면 3김시대는 기억하는데 박정희시대는 기억하기 싫으신가?

추억하기 싫으신가? 한라일보 연령이너무 떨어진다...

광복45년~제주일보창간45년~ 따라잡을라면 더욱더 통큰 한라일보 되어야되는데...






유채꽃향기~ 05-16 23:52삭제

5,16 ... 12대 제주도지사 김영관- 박정희 대통령 ...제주일보에는 있다~

▲박정희 의장의 특별한 당부
제주도지사 임명장을 받은 날은 내가 제주도로 부임하기 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혁명최고위원회로부터 전국 시·도지사로 발령받은 장군들이 다 함께 정부 중앙청사에서 부임지로 떠나기 직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에게 신고식을 하던 날이기도 했다.

다른 시·도지사들은 전부 육군 출신 장군인데 나만 유일하게 해군 출신이었다.
나는 박정희 의장을 5·16이후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그 때 그 곳에서 박정희 의장은 내게 가까이 오더니 내 귀에다 대고 “김 제독, 미안해 제일 먼데로 가게 해서. 가서 수고 좀 해줘”라고 하더니 “그 대신 지방시찰 가게 되면 제일 먼저 제주도로 갈게”라며 나를 다독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 줄 알았지 실제로 그렇게 하는 줄은 몰랐다.

박정희 의장은 또 내게 제주도지사 임명장을 주시면서 “제주도는 특수한 여러 가지 여건이 있으니까 가서 잘 좀 해야겠다”며 특별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박정희 의장이 언급한 제주도의 특수한 여건은 지리적인 문제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떠나 4·3사건의 아픔을 시사한 것이었다.

나는 박 의장이 제주도민의 아픈 심정을 남다르게 느꼈던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4·3사건에 대해 당시 제주해협을 경비하고 5·10선거 때 유엔선거감시단이 제주를 방문할 때 동행하고 그랬으니까 알고 있었는데, 박정희 의장은 장군으로 4·3사건의 전장(戰場)관계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박정희 의장은 내게 제주4·3사건에 대해 “우리 제주도민들이 그 때 당한 여러 가지 가슴에 맺힌 것을 혁명정부인 우리 군이 풀어줄 수밖에 없다”며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을 중심으로 제주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할 것을 특별히 지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의장은 당신이 약속한 대로 5·16이후 4개월도 채 되지 않은 9월초 전국 지방시찰을 하면서 제주도를 가장 먼저 찾아 주었다.
박정희 의장이 제주도를 가장 먼저 찾은 것은 그만큼 제주도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자 제주도의 발전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가서 알게 됐다.

제주로 부임하기 전 제주도지사를 역임했던 임관호 지사와 길성운 지사에게 연락했는데 임지사와는 연락이 안됐지만 길 지사에게는 인사를 하고 제주도정 운영에 대한 좋은 조언을 듣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길 지사는 내게 “제주도민들은 순박하기 때문에 도지사가 선정을 베풀면 도정에 잘 협조할 것이다. 단지 어려움이 있다면 도세가 약하기 때문에 중앙정부로부터 지원이 부족한데다가 지원을 받아내기가 어려워 대 중앙정부 절충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를 겸해 당신의 도정 경험을 얘기해 주었다.

또 그동안 나와 교분을 이어오던 제주도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던 장시영 원장에게 연락해 도지사로 부임하게 돼 걱정된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자 장시영 원장은 “걱정 말라”며 “제주도는 섬이니까 해군이 제일 인연이 깊은 것 아니냐. 육군출신보다 타 군인 해군 출신이 도지사로 오게 돼 오히려 잘됐다”는 식으로 말해줘 안심이 됐다.

나중에 보니 5·16이후 제주도민사회에서는 후임 도지사가 누가 될지 초미의 관심사였고 4·3사건을 겪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육군 출신 보다는 해군 출신을 덜 부담스러워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비록 5·16은 육군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도지사는 해군에서 오니까 나를 잘 모르지만 해군출신 도지사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도민사회에서 형성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나는 도지사로 발령 받은 지 6일 만인 1961년 5월 30일 중학교 입학을 앞둔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큰 딸만 빼고 아내와 아이들 셋을 데리고 민간항공기인 KNN(대한항공공사)을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늘 배를 이용해 제주도를 가던 내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가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제주~서울간 비행기는 1주일에 1, 2번 정도 부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었는데 제주의 기상상태가 나쁜 날이 많아 툭하면 결항되기 일쑤였다.
나는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제주도지사로서 해야 할 일과 그 밖의 많은 생각들로 조금은 긴장을 했다.

5·16이후 지금까지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5·16이 군에서 존경받고 신망이 높은 박정희 의장 주도로 일어난 만큼 잘 하리라 믿고는 있었지만 내가 혁명정부에 참여하거나 제주도지사로 발령 날 줄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군 생활만 하다 행정기관에서 더구나 도백으로 어떻게 수행해야 하나? 여기서 잘못하면 현역으로 다시 복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나에게 행정은 어렸을 적 고향의 면사무소, 읍사무소, 군청 정도가 다였고 경상남도 진해에 근무하던 이승만 대통령 시절엔 경남도지사는 만난 적은 있지만 도정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도지사 직을 마치면 반드시 군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잘못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현역 군인으로 나의 군 일생에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나는 전국 시·도지사 가운데 유일한 해군 출신이어서 해군 대표성 문제도 있고 박 의장이 당부한 내용도 있고 해서 어쨌든 잘 해야 한다는 압력과 부담이 상당했다.

이처럼 나는 제주도지사로 부임하면서 불안도 하고 혹시 잘못되면 현역도 끝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을 안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민간인 도지사가 아니라 현역 군인 도지사로서 하얀 해군제독 정장을 갖춰 입은 차림으로 낮 12시께 제주비행장에 도착했다.
내가 제주도와 인연을 맺은 지 13년 만에 또 다른 차원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제주비행장 도착
제주비행장에는 혁명최고위원회의 사전 지시가 있었는지 제주도청의 김벽파 총무국장과 박경철 제주계엄사무소장(해군 대령), 조광호 도청연락관(해군 중령)이 나를 마중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제주도지사로 부임하면서 해군사관학교 출신 장교 중에 제주도 사정을 잘 알 수 있는 제주도출신으로 오현고를 졸업한 이겸우 대위를 특별히 부관으로 삼아 동행했다.
이 대위는 내가 제주도지사직을 수행하는 동안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많은 도움을 준 부하이자 후배였다.

나는 마중 나온 이들과 함께 바로 제주도청으로 향해 도의 공직자들과 도청 내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당시 분위기로 공무원들은 시내에 나가 외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 본 공무원들은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부드럽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였고 나는 제주와 큰 인연이 있는 사람처럼 돼버렸다.
모든 것이 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이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됐다.

점심 식사 후 공보실장이 나에게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좋다고 권유했고 나도 취임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반겼다.
나는 서울에서 군 출입기자들과 만나서 가까이 했던 적도 있고 해서 도청을 출입하는 모든 기자들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예정에 없던 회견에 흔쾌하게 응했다

▲제주도지사 취임 기자회견
오후 2시부터 해군경비사령관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내 생각과 달리 기자들이 나를 우호적이고 환영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경계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서울에서 기자들과 가까이 지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계하고 그랬는데 제주 기자들은 기자의 근성이나 기자의 생리로 나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후로 나는 기자들을 전폭으로 믿고 도정운영에 있어서 무엇이든지 언론기관에 의지하고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첫 번째 인상이 내게는 이처럼 아주 중요했다.
나는 기자회견에서 제주도지사라는 중책을 맡아 소임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혁명정신에 입각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도정 방침은 제주도의 모든 실정을 파악한 후에 발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자들은 간단한 나의 취임 회견에 부족함을 느꼈는지 대략적인 도정운영 방향을 알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나는 우선 혁명정신에 호응해서 용공분자와 불량배를 가차 없이 적발 처단하는데 주력하고 둘째 공무원 인사는 어디까지나 공정 무사한 입장에서 인물과 실력본위로 실시하고 세 번째 인권옹호에 적극 진력하되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기본 권리를 입증하는데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나는 양심적인 공무원은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어 나는 제주도의회에서 제12대 제주도지사 공식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도지사직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퍼옴= 제주일보 강영진진 정치부장 kang@jejunews.com

모범시민 05-16 16:20삭제
할란일보는 대체 어느나라 신문인가요???
게메마씸 05-16 16:10삭제
오늘은 5.16혁명 50주년의 날이다.

하지만, 이 신문 어디에도 이를 언급한 귀퉁이를 찾기가 어렵다. 내일이면, 광주사태에 대한 온갖 아양떨이가 신문 전면을 도배할 것이란 것은 불문가지이겠지만...

제주는 늘 "바다건너 고을"로서 스스로 담장을 쌓고 나홀로 가치에 매몰되어 가는 변방을 자처하고 있으니, 발전을 기대하기는 저 스스로 포기하는 꼴 아닌가 ?

소위, 지식이라는 작자(?)들부터 계몽되지 않고는 제주의 미래는 영영 아니올시다다. 아마 오끼나와 정도나 떠밀려가면 그때야 본토 귀소본능이 좀 돋아나질려나 ?

스마트폰이 쥐어진 현재의 복락은 5.16혁명 후 산업화부터 그 기원을 잡으면 틀린 말 아닐게다. 스마트폰을 튕기는 손은 첨단 시대에 있으나, 머리는 짚세기 시대에 머문다면 정녕 희망이 없다. 잘난 작자(?)들 스스로 깨몽하고 계몽 좀 되어지시길...
유채꽃향기~ 05-16 15:22삭제


문득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싶어졌다. 제주에 왜 해군기지가 들어서야 하는지...

언론정론지라는 한라일보 사회부 차장의 무지와 능청스러움...

그걸몰라? 망쪼한국당 제주도당 대변인도 아니고...

찬성주민들의 말을 빌리자면...

제주해군기지는 봉화마을 부엉이바위에서 떨어진 정권에서부텀 시작된일...

웃기는 사람들... 제발 강정마을 들었다 놓았다... 그만들 하시라...

문득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싶어졌다??? 문득 다시물음을 던진다?

그대들 왜 한라일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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