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작가의 산책길, 못다 들은 이야기
입력 : 2014. 03. 12(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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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쯤 경남 통영을 찾았다. 초행길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여태 만나지 못했던 '풍경'을 볼 생각으로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뒤졌다.
마침, 주말에 통영항 강구안 문화마당을 출발하는 '토영 이야길' 걷기가 진행된다고 했다. 그날 짠내음나는 항구 앞에 모여든 이들은 15명을 훌쩍 넘겼다. 그 시기에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려 관광객들이 많았다.
알다시피 통영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예술가를 여럿 낳은 곳이다. 시인 유치환·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작곡가 윤이상 등 그들을 기리는 공간이 곳곳에 있고 빗돌이 수시로 눈에 밟힌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제주와 인연이 있는 이중섭도 통영에서 한 시절을 났다.
토박이들이 통영을 일컫는 '토영'에다 그곳에서 언니, 누나를 부르는 말이라는 '이야'가 합쳐진 '토영 이야길'에는 그런 예술가들의 흔적이 배어나왔다.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길을 나선 사람들은 김춘수가 살던 집 대문이 열려있다며 그쪽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박경리 생가로 추정되는 주택 부근에선 설레는 표정으로 한참을 머무는 모습이었다.
그 길에 작고작가들의 발자취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통영 사람들과 입주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동피랑 벽화마을'을 거쳐갔다. '피랑'은 언덕을 뜻하는 방언으로 통영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다란 곳에 들어선 벽화마을은 철거촌에서 '통영의 몽마르트'로 새롭게 변신하며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제주에도 이와 비슷한 길이 있다. 서귀포시에서 운영하는 '작가의 산책길'이다. 이중섭미술관에서 소암기념관에 이르는 4.9㎞ 구간에 조성된 길로 2011년 5월 선포식을 가졌다.
얼마전 이 길을 걸었다. 해설사가 동행해 작가의 산책길에 얽힌 여러 사연을 풀어주는 주말을 택했다. 지난 계절의 차가운 기운이 가시지 않아서일까, 참가자가 단출했다. 그게 뭐 어떤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길을 걷느냐보다 그 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을 새겨보는 게 의미있는 일이란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4시간 가량 걷는 동안 '지붕없는 미술관'을 둘러보는 일이 많았다. 구간 여기저기에 남국의 자연을 배경삼아 갖가지 빛깔의 설치 작품이 놓여있어서다. 그 작품들은 밋밋한 거리의 단조로움을 덜어주며 눈길을 끌었지만 탐방객들은 그보다 예술가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 듯 보였다. 이중섭미술관과 인근 이중섭거주지에서 궁금증을 털어놓으며 적극적으로 서귀포에 살던 예술가와 만나려는 관람객들의 모습을 봤다.
제주도는 '작가의 산책길' 조례까지 만들어 그곳에서 열리는 문화행사를 지원하고 도지사는 매년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문화단체에서 벌이는 각종 공연·전시도 연 1회 이상 '작가의 산책길' 등에서 치르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만큼 지자체가 공들이고 있는 '문화상품'이지만 지금처럼 도심에서 외떨어진 곳에 설치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면 그 길을 얼마나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폭풍의 화가' 변시지, 한국 서단을 이끈 소암 현중화 등 '작가의 산책길'엔 서귀포 앞바다를 품었던 예술가들이 있다. 그 길에 발디딘 사람들에게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지 궁리해야 하지 않을까. <진선희 사회문화부장>
마침, 주말에 통영항 강구안 문화마당을 출발하는 '토영 이야길' 걷기가 진행된다고 했다. 그날 짠내음나는 항구 앞에 모여든 이들은 15명을 훌쩍 넘겼다. 그 시기에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려 관광객들이 많았다.
토박이들이 통영을 일컫는 '토영'에다 그곳에서 언니, 누나를 부르는 말이라는 '이야'가 합쳐진 '토영 이야길'에는 그런 예술가들의 흔적이 배어나왔다.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길을 나선 사람들은 김춘수가 살던 집 대문이 열려있다며 그쪽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박경리 생가로 추정되는 주택 부근에선 설레는 표정으로 한참을 머무는 모습이었다.
그 길에 작고작가들의 발자취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통영 사람들과 입주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동피랑 벽화마을'을 거쳐갔다. '피랑'은 언덕을 뜻하는 방언으로 통영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다란 곳에 들어선 벽화마을은 철거촌에서 '통영의 몽마르트'로 새롭게 변신하며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제주에도 이와 비슷한 길이 있다. 서귀포시에서 운영하는 '작가의 산책길'이다. 이중섭미술관에서 소암기념관에 이르는 4.9㎞ 구간에 조성된 길로 2011년 5월 선포식을 가졌다.
얼마전 이 길을 걸었다. 해설사가 동행해 작가의 산책길에 얽힌 여러 사연을 풀어주는 주말을 택했다. 지난 계절의 차가운 기운이 가시지 않아서일까, 참가자가 단출했다. 그게 뭐 어떤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길을 걷느냐보다 그 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을 새겨보는 게 의미있는 일이란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4시간 가량 걷는 동안 '지붕없는 미술관'을 둘러보는 일이 많았다. 구간 여기저기에 남국의 자연을 배경삼아 갖가지 빛깔의 설치 작품이 놓여있어서다. 그 작품들은 밋밋한 거리의 단조로움을 덜어주며 눈길을 끌었지만 탐방객들은 그보다 예술가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 듯 보였다. 이중섭미술관과 인근 이중섭거주지에서 궁금증을 털어놓으며 적극적으로 서귀포에 살던 예술가와 만나려는 관람객들의 모습을 봤다.
제주도는 '작가의 산책길' 조례까지 만들어 그곳에서 열리는 문화행사를 지원하고 도지사는 매년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문화단체에서 벌이는 각종 공연·전시도 연 1회 이상 '작가의 산책길' 등에서 치르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만큼 지자체가 공들이고 있는 '문화상품'이지만 지금처럼 도심에서 외떨어진 곳에 설치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면 그 길을 얼마나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폭풍의 화가' 변시지, 한국 서단을 이끈 소암 현중화 등 '작가의 산책길'엔 서귀포 앞바다를 품었던 예술가들이 있다. 그 길에 발디딘 사람들에게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지 궁리해야 하지 않을까. <진선희 사회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