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사랑의 이해
입력 : 2023. 02. 03(금) 00:00
편집부기자 hl@ihalla.com
영화 '단순한 열정'.
[한라일보] JTBC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네 남녀가 서로에게 다가서고 멀어지며 이해와 오해를 반복하는 시간들을 담아낸 이야기다.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이들은 지겹고 고통스러운 사랑이라는 실타래를 풀고 감기를 되풀이한다. 나를 사랑하는 당신과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같다고, 우리가 서로를 알아봤다고 사랑이 이뤄진다면 쉽고 행복한 결말이겠지만 사랑만 가지고 사랑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이들에게 사랑은 자신도 모르게 답안지를 새카맣게 칠해버린, 아무도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지독한 시험의 시간이기도 하다.

20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 '단순한 열정'이 영화화 됐다. 제목처럼 그리고 1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소설의 분량처럼 뜨겁고 명료한 작품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이야기, 숨을 헐떡이며 감정을 연료 삼아 타인의 육체를 탐닉하는 이야기다.

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복잡한 관계의 한복판에서 중의적인 인물들의 대화로 보는 이들을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한다면 영화 '단순한 열정'은 거침없이 돌진하는 인물들의 몸과 몸이 섞이고 떨어지는 장면들을 보여주며 사랑이라는 감정의 실체에 대한 고민을 관객 쪽으로 밀어 놓는 작품이다.

왜 '완전한 사랑'이나 '완벽한 연인'이 아니라 '단순한 열정'일까. 타인의 육체에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는 마음은 단지 욕정일까, 그렇다면 육욕은 사랑이 아닌가 사랑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왜 이다지도 집요할까.

'단순한 열정'의 주인공 엘렌은 단 몇 시간의 부대끼는 쾌락을 위해 무너뜨릴 모래성을 쌓는다. 공들여 모래를 끌어 모은 후 그것을 덮쳐버릴 파도를 기다리는, 파도에 휩쓸리는 일이 가장 행복해 보이는 상태에 놓여있다. 이혼 후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엘렌은 아들이 학교에 간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집으로 찾아올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에 어느 순간 깊이 들어온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 알렉산드르와의 육체적 만남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그를 상상하고 욕망하고 그의 눈앞에 벗겨질 자신을 치장한다. 언제나 그의 전화로 시작될 만남의 시간, 당연히 그의 리드로 진행될 육체의 탐닉, 어김없이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배웅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들은 많은 대화 없이 서로를 안고 핥고 비비고 만진다. 일견 단순하게 보이는 육체의 탐닉은 서로가 서로의 몸에 익숙해질수록 엉켜있던 몸에서 떨어진 후의 시간들이 덧붙여지며 복잡해 진다. 섹스 후 침대에 누워 나누는 대화들이 늘어나고 알렉산드르를 향한 엘렌의 질문들이 많아지고 구체화 되는 것이다. 열망했던 몸의 실체와 기능을 알게 된 엘렌은 그 몸의 소유주가 지닌 다른 것들에도 마음을 품는다. 붙어있던 몸이 떨어진 순간 마치 각질처럼 놓인 질문들과 의심들.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지, 사랑한다고 말해 줄 수 있는지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몸이 아닌 것들로 듣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엘렌의 마음이 꿈틀대기 시작한 순간 육욕은 단지 몸의 욕망만은 아닌 것이 된다.

'단순한 열정'이 그리는 육체의 탐닉은 둘의 만남이 반복될수록 점점 더 단조롭게 느껴진다. 눈빛을 보내고 외면하고 교환하고 망설이는 시간이 부재한 상태로 혹은 혼재한 상태로 이들이 부딪히고 조각나기 때문이다. 뜨거워서 데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자국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할 리 만무하다. 내가 나에게 남긴 상처, 아물기도 전에 가해지는 자극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한 열정 너머에 자리한 복잡한 냉대가 남기는 것들 때문에 엘렌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당장 내 눈앞에 그가 보이는 일, 그가 나를 탐하고 내가 그를 탐하는 것이 사실상 신기루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열정은 순식간에 집착으로 변한다.

영화는 아니 에르노가 남긴 날카롭고 덤덤한 문장들을 적극적으로 내레이션으로 사용한다. 솔직하고 건조해서 매력적인 글들이 배우의 목소리로, 몸짓으로, 풍경으로, 음악으로 울려 퍼질 때 창에 김이 서리 듯 물기가 만들어진다. 어떤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 시간의 앞에서는 짐작하지 못했던 것들의 모양을 발견하는 일은 고통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아깝지 않다. 나의 완연한 희망이자 지독한 절망이었던 것 역시 모두 나에게 속해 있음을 알게 되는 이 경험의 기록을 그저 사랑했다고 말하기엔 무언가 모자란 느낌이다. 우리의 삶에는 허무와 관능이, 열망과 초라함이 그리고 사랑과 사랑 밖의 다른 것들이 함께 있음을 우리는 계속 알아가는 중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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