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필사의 기록
입력 : 2023. 09. 08(금) 00:00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영화 '수라'
[한라일보] 국어사전에는 '필사'의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먼저 '베끼어 씀'이라는 명사가 있고 두 번째로는 '죽을 힘을 다한다'는 명사가 있다. 이밖에도 필사는 '붓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 또한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필사적이라고 할 때는 두 번째 필사의 뜻을 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필사의 두 번째 뜻에는 '죽을 힘을 다한다'는 뜻 이외에도 '살 가망이 없다'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살리려고 할 때 그러니까 가망이 없다는 고갯짓에 저항할 때 필사는 기적처럼 완성되기 마련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는 더 이상 '가망 없음'이라고 등을 돌리는 이들의 틈으로 솟아난 카메라가 필사적으로 기록한 귀중한 시간들을 담고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사라져 버린 아름다운 갯벌의 굴곡 많은 역사를 기록한 이 영화의 제목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마지막 갯벌 '수라'의 이름이기도 하다. '어느날 그 길에서', '잡식동물의 딜레마' 등의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 중 특히 동물권에 관심을 보여온 황윤 감독의 신작인 '수라'는 환경 영화인 동시에 성장 영화이고 어떤 순간에는 공포 영화이기도 하다. 갯벌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들을 포착한 이 영화의 카메라는 마치 만든 이가 손에 꽉 쥐고 놓지 않는 붓처럼 느껴진다. 말 그대로의 절경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그 풍경을 채우던 생명체들이 얼마나 큰 고난에 처하는지 그리고 그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어떤 감정과 태도를 취하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영화는 필사적으로 스크린으로 옮겨낸다.

 '수라'는 많은 순간 분노를 자아내는 영화다. 인간이란 얼마나 이기적인 종인지, 그중에서도 특히 더 이기적인 인간들이 세상을 얼마나 빠르게 망칠 수 있는지를 보고 있자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입가에 맴돌던 말은 '도대체 얼마나 더 잘 살려고'였다. 이유야 만들면 있는 것이고 남의 상처야 보지 않으면 그만인 것인 데다 사람이 아닌 생명체의 삶이란 그야말로 안중에 없는 이들의 삶. 권력이 쥐어진 손이, 결정을 내리는 순간이 어찌나 무의미한 지 탄식조차 들지 않았다. 반면에 이 한 줌의 어처구니없음과 대비되는 '수라' 속 대자연의 삶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환멸의 감정이 무너뜨릴 수 없는 경이로운 생의 감각들이 영화 속에 담긴 세월에 너무나 선명했다.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동사로 가득한 카메라의 필사 노트에는 누구도 매립할 수 없는 생명의 강인함과 위대함이 차고 넘쳤다. 마치 가두거나 막을 수 없는 바다의 파도처럼.

 
그리고 그 자연을 대하는 또 다른 한 줌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절멸 앞에서 쉽게 절망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 인간의 세상의 정해놓지 않은 길을 내고 걷고 머무르는 사람들. 돈이 되는 일도 밥이 나오는 일도 아닌 앞에서 오로지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마음이 머무는 곳, 그 마음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바다를 바라는 오래된 갯벌이 있었다. 갯벌 '수라'를 지키는 사람들은 막막할 정도로 덮쳐오는 인간 세상의 파도를 타는 법을 오래, 묵묵히 배워간다. 할 수 있는 일을 멈추지 않고 할 수 없다는 절망의 소리들에 침잠하지 않는다. 대신 생명의 거대한 움이 트는 순간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압도적인 도요새들의 군무와 검은 머리 갈매기의 사랑스러운 몸짓을 그들은 목격한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목도한 죄라며 웃다 우는 사람들이 그 새들의 친구임을 보는 이들은 알 수 있다. 그렇게 자연과 인간이 포개지는 프레임 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뜨겁게 만든 장면은 이미 사라져 버린 줄로만 알았던 흰발농게가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던 순간이었다. 이 갯벌은 아직 살아 있다고, 인간은 자연의 숨통을 끊을 수 없다고 증명하듯이 죽어가는 갯벌에서 살아가고 있던 흰발농게의 작지만 위대한 움직임은 일순간 내 마음을 적셨다.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 환경의 황폐화가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 넘쳐나는 지금의 삶에서 우리는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더 영위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 중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삶은 선택하는 것이, 그 선택을 위해 무수히 많은 다른 생명체들의 삶을 짓밟고 외면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인지를 '수라'는 묻는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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