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입력 : 2023. 10. 27(금) 00:00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영화 '너와 나'
[한라일보] 언제나 세월은 그렇게 잦은 잊음을 만들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너의 이름과 너의 목소리, 너와 내가 나눈 이야기들과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 나눌 수 없이 온전히 하나였던 시간들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충만한 낮과 밤들. 조현철 감독의 장편 데뷔작 '너와 나'는 그 너와 나, 우리 사이에 분명히 존재했던 사랑을 잊지도 잃지도 않으려 필사적으로 헤매고 찾아내는 영화다. 누군가는 언젠가 이 영화를 만나 영화가 흩뿌려 놓은 사랑의 조각들을 조심스레 그러모으며 찾아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잊지 않음의 결심과 잃지 않음의 충만함을.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어느 봄날, 세미는 이상한 꿈에서 깨어난다. 그 꿈은 불길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그 꿈은 이상하게 세미가 좋아하는 친구 하은에게 고백을 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루 종일 세미는 하은을 찾아 헤매고 하은에게 사랑을 말하려 애쓴다. 정말로 하루 종일 세미는 하은의 생각만을 한다. 그런데도 이 사랑을 말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너와 나'는 너 없는 나로는 존재할 수 없는 여고생 세미의 구애담인 동시에 "사랑해"라는 육성과 그것을 둘러싼 모든 감각들을 화면 안에 존재하게 하려는 야심을 지닌 사랑 영화다. 간지러울 정도로 생생한 여고생들의 대화와 수학여행을 앞둔 봄날의 학교라는 공간의 나른한 입자들을 싱그럽게 담아내는 팬시함이 '너와 나'의 도입부에 담겨 있다. 달콤하고 나른한 청춘 영화의 전형적인 시작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시작만 그런 것이 아니다. 탈색된 듯 과한 노출의 영상이 극 전체 내내 이어진다. 마치 어떤 무지개 빛 안개가 이 이야기를 감싸 안고 있는 것처럼. 이 색감이 주는 당도가 다소 넘친다고 느껴질 지음 영화는 청춘물이라는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좀 더 먼 곳으로 노를 저어 나간다.

'너와 나'는 세월호 참사를 정면으로 다룬 극영화다. 다수의 다큐멘터리들이 세월호 참사를 조명했지만 극영화가 이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에서는 안산이라는 지역성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수학여행을 앞둔 고등학생들의 하루라는 점이 겹쳐지며 극의 중후반에 이를수록 명징하고 시적인 상징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너와 나'에는 죽음의 이미지가 생의 활기로 가득한 젊은 이들의 곁에 말 없는 새처럼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풍경이 무섭거나 불안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죽음이라는 다음을 앞에 둔 생의 충만함이 오히려 영화의 구석구석을 소생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두르지 않고 보는 이들의 감각들을 건드리는 이 장치들은 이 사랑 이야기가 무엇을 또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 불현듯 깨닫게 만든다.

애도는 슬픔이라는 한자어로만 구성된 단어다. 얼마나 그 슬픔이 깊기에 두 번이나 같은 말을 덧댔을까 생각을 했다. '너와 나'는 애도의 태도를 갖추는 영화인 동시에 '슬플 애'를 '사랑 애'로 치환하려고 시도하는 영화다. 너와 나 사이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거리를 단숨에 달려가게 만드는 단 하나의 단어를 내뱉기 위해 이 영화는 만들어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닿을지 모르는, 도착했다고 해서 닿았다고 확인받을 수 없는 그 안개로 뒤덮인 시간들을 영화는 기어코 사랑으로 채운다. 그리고 그 뿌옇고 희미하던 것들의 실체가 드러날 때,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말한 자들이 서로를 마주하게 될 때 거대한 슬픔의 덩어리가 작은 빛들로 조각나기 시작한다.

'너와 나'는 정성스러운 야심으로 가득한 영화다. 사랑을 발음하기 위해 뭉개지는 감정들을 쉽게 도려내지 않아서 어떤 장면들은 영화가 사랑 자체에 도취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이란 것이 원래가 그런 것이 아닐까. 서툴고 번복되며 남이 보기엔 길고 내가 느끼기엔 부족한 그 장황한 아름다움 이야말로 사랑의 조각이 아닐 리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너와 나'의 야심은 오로지 그 사랑을 보려 하고 보여 주려 하는 데 있다. 드물게 귀한 순도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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