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지나치는 ‘화북’에서 머무는 ‘포구’로... 빈집에 문화를 채우다
입력 : 2026. 01. 19(월) 02:3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한라일보] 제주 원도심의 빈집 문제는 이제 통계로 확인되는 현실이다. 2024년 기준 제주도 내 빈집은 약 1,160호로, 상당수가 제주시 원도심과 해안 인접 마을에 집중돼 있다. 최근 5년 사이 제주 청년 인구는 1만5천 명 이상 감소했다. 빈집이 늘어난다는 것은, 이곳에 머물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동안 빈집 재생의 해법은 카페나 숙소 같은 상업 모델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수익성 중심의 방식은 오래가기 어렵고, 제주만의 삶과 시간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공간은 남아도 이야기는 지워진다. 그래서 빈집은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며 시간을 쌓는 방식을 묻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화북포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화북포구는 대형 항만이 아닌 생활 포구로, 오랜 시간 어업과 물류, 생활 이동이 겹쳐온 해안이다. 조선시대에는 송시열, 최익현, 김정희와 같은 유배 인물들이 공식 항만뿐 아니라 이러한 생활 포구를 통해 제주 사회와 연결됐다. 화북포구는 국가 통치의 말단이자 제주의 일상이 맞닿던 공간이었다. 조선 후기 상인 김만덕의 해상 유통망 역시 여러 생활 포구를 기반으로 작동했으며, 화북포구와 같은 소규모 포구는 물류와 생계, 연대가 교차하던 생활 경제의 거점이었다. 여기에 더해 인근에는 제주4·3 당시 사라진 마을 곤을동의 흔적과 삼양동 원당봉 일대의 기황후 전설이 겹쳐 있어 이 일대가 외부 권력과 제주의 기억이 중첩된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미 행정 역시 이 가능성을 인식한 바 있다. 2020년 제주시가 화북 원명사 터 유휴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공식 검토한 사례가 이를 말해준다.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이 일대에 문화적 거점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분명히 확인됐다. 화북포구는 고려의 숨결부터 올레 18코스까지 이어진 역사의 길목이지만, 지금은 체류 공간이 없어 그저 '지나치는 통로'로 남아 있다. 해법은 거창한 개발이 아니라, 방치된 빈집을 청년들의 기록 작업실이자 커뮤니티 공간으로 전환해 실질적인 체류 동력을 만드는 데 있다. 청년들이 화북을 아카이빙하고 여행객이 포구의 시간에 스며들 때, 화북은 비로소 '목적지'가 된다. 이러한 관계 인구의 형성이야말로, 지역 소멸을 늦추는 가장 현실적인 방어기제다.

빈집은 철거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화북포구는 그 질문을 가장 오래 품어온 장소다. 이제 제주는 이 공간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머물게 할 것인지 답해야 할 시간이다. <정훈교 제주도 문화협력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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