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훈의 문화광장] 제주 삼나무의 가치 재발견
입력 : 2026. 06. 02(화) 02:00
현승훈 hl@ihalla.com
[한라일보] 제주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수십 년간 솟아오른 삼나무가 맥없이 잘려 나가는 현장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비자림로는 그 대표적인 곳 중 하나다. 이 일대는 지난 7년에 걸쳐 벌채된 나무만 해도 수천 그루에 달한다. 팔색조와 두견이가 쉽게 건너던 좁은 길은 4차선으로 넓어졌고, 숲 속 어두운 그늘을 거처로 삼던 애기뿔소똥구리는 차량 불빛을 맞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 벌거숭이 오름과 들판을 메워온 삼나무.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 숲이 무성해졌고, 땅으로 내리는 햇빛을 가리며 여러 식물 군락을 피워내기 어렵게 했다. 거문오름의 경우, 제주 고유의 식생 회복 차원에서 인공림을 제거하라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권고가 있었다. 일부 구간을 간벌(間伐)해 모니터링한 결과, 천연림과 유사하게 바뀌는 현상이 확인됐고, 계속해서 10만 그루 전체를 베어낼 계획이라고 한다.

제주 곳곳의 삼나무 숲은 한때 우리의 필요로 심어졌지만, 지금은 거센 지탄을 뚫어가며 혹은 권고를 통해 다시 베어지고 있다. 시대에 따라 가치 판단 기준이 변화하는 현실 속, 사라져 가는 삼나무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수는 없을까?

2011년 서귀포 난대산림연구소에 제주에서 자란 삼나무를 구조체와 마감재로 활용해 테스트하우스를 지은 사례가 있다. 당시 '제주 삼나무가 쓸모없다'라는 부정적 인식을 딛고, 국립산림과학원과 노바건축사사무소가 협력해 용감한 실험을 한 것이다. 제주에 목재 가공시설 기반이 부족했기에 벌목한 나무를 인천으로 보내 구조용 집성재로 만들고, 다시 제주로 가져와 현장에서 조립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 작업이다. 그럼에도 건축물의 주요구조부(기둥·보)를 공장에서 정밀하게 만들 수 있어, 시공 품질을 향상하고 공사 기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수입 목재 의존도가 높은 국내 시장에 제주산 삼나무를 공업화해 건축 재료로 보급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큰 수확처럼 보인다.

기후 위기 시대, 탄소 중립 가치를 부르짖는 제주의 건축 환경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대안으로 앞서 언급했던 '삼나무 테스트하우스'와 같은 시도를 보편화할 수 있는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 이제 제주도 전역에서 발생할 대량의 삼나무를 가공할 수 있는 공장 시설과 구조용 목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험 기술을 구축할 시기가 온 것은 아닐까? 북미와 일본에서 삼나무 수종이 건축 자재로 검증됐고, 오랜 시간 제주 기후에 적응해 온 삼나무가 습도 변화에 잘 견디고 병충해에 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업화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이를 토대로 지역 내에서 재료를 수급할 수 있다면, 도서 지역 운송을 위한 화석연료 사용과 그에 따른 환경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는 생산 공정과 연계된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겠다. 내일의 도정이 제주 삼나무를 밝게 비추며 그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길 바라본다. <현승훈 다랑쉬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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