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76] 3부 오름-(135)아부오름
입력 : 2026. 06. 23(화) 03:00수정 : 2026. 06. 23(화) 06:25
김찬수 hl@ihalla.com
‘아부-’는 고대어로 ‘낮은’, 높은오름에 대비한 지명
개인적 감상을 일반화


[한라일보] '아부-'가 무슨 말일까? 아부오름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표고 301.4m, 자체높이 51m의 오름이다. 이 오름은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일 만큼 뚜렷한 기하학적 형태가 특별하다. 어떻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지형이 이럴 수 있는가 할 정도다.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 따르면 '바깥둘레 약 1400m, 바닥둘레 500m, 화구깊이 78m다. 화구 깊이가 오름 자체높이보다 깊다. 지명에 대해서도 산 모양이 믿음직한 것이 마치 가정에서 어른이 좌정해 있는 모습 같다 하여 한자로는 아부악(亞父岳), 아부악(阿父岳), 송당마을과 당오름의 앞(남쪽)에 있는 오름이라 하여 전악(前岳)이라고도 표기한다. 아부(亞父)란 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 아부(阿父)는 아버지의 뜻'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새롭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오름 나그네라는 책에서 이미 설명한 내용이다.

오름 밖에서 오른다면 높이가 낮고 사면이 완만해 별 기대를 갖고 말고 할 여유도 없이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나 정상에 이르면 올라온 높이보다 훨씬 깊은 동그란 분화구를 마주하게 되는데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지금은 심은 나무며 자연생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이런 광경이 모두 숨어버렸다. 다시 과거의 모습을 되찾자는 주장도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저 아쉬움만 쌓여가고 있다.

과연 아부오름이란 무슨 뜻인가? 산 모양이 믿음직하고, 그것이 마치 어른이 좌정해 있는 모습 같아 아부악(亞父岳), 아부악(阿父岳)이라고 한다는 설명은 믿을 수 있을까? 산 모양이 동그라서 믿음직하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유래하는 말인가? 이 모양이 어른이 좌정해 있는 모습 같은가? 이런 건 개인적 감상일 순 있어도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먼 얘기다.



‘아부’를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


송당마을과 당오름의 앞(남쪽)에 있는 오름이라 하여 전악(前岳)이라고도 표기한다는 이야기는 어떤가? 1696년 출간된 지영록에 '압악(狎岳)'으로 표기 된 것이 최초 기록일 것 같다. 이후 18~19세기에 '전악(前岳)', 20세기 들어 '아부악(亞父岳)', '아부악(阿夫岳)', '아부미, 아부악(亞父岳)' 등으로 표기했다. 지역에서는 남악(南岳), 압악(鴨岳), 아보악(亞保岳) 등으로도 표기한다고 한다.

이렇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지명들은 모두 8개 정도가 된다. 가장 이른 시기 지명은 '압악(狎岳)'이다. '압(狎)'이란 '익숙할 압'이다. '익숙한 오름'이란 뜻인데, 이런 오름이란 상상하기 어려우므로 '압-' 혹은 '아브-'를 표기하기 위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음가자 차자 방식이다. 음가자 차자 방식이란 뜻과 무관하게 발음을 표기한 것을 말한다. 압악(鴨岳)의 '압(鴨)'은 '오리 압'이다. 이 오름과 '오리'의 관계를 상정하기 어려우므로 역시 음가자 차자 방식으로 동원한 글자임을 알 수 있다. 그 외 아보악(亞保岳), 아부악(亞父岳), 아부악(阿夫岳) 등은 역시 '아보-' 혹은 '아부-'를 나타내려고 동원한 글자다. 음가자 차자 방식이다. 그러므로 '압-', '아부-', '아보-'는 같은 발음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다.

전악(前岳)의 '전(前)'은 '앞 전'이다. 여기서 '앞'이란 이 지명을 표기했던 중세에는 '앏' 혹은 '앒'이었다. 이 글자가 이런 표기 그대로 발음했는지 '알브-'와 '알프-'에서 'ㄹ'이 탈락한 '아브-'와 '아프-'로 발음한 것으로 표기한 것인지는 알기 어렵다. 어떻게 발음했던 '앞'의 뜻으로 쓴 것이라면 훈독자 차자 방식으로 쓴 것이 된다. 그저 발음 '알브-'와 '알프-'를 나타내려고 '전(前)'을 쓴 것이라면 훈가자 표기 방식으로 쓴 것이 된다.

여기서 궁금한 부분은 일관되게 '전(前)'을 쓰지 않고 '압-', '아브-', '아부-', '아보-' 등 다양한 발음이 동원됐나 하는 점이다. 유일하게 고유어 지명표기라고 할 수 있는 '아부미'도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과연 이 표기들이 '앞(前)'의 뜻으로 쓴 것이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아버지도 마을 앞도 아니다


이런 표기들은 마을 남쪽에 있다는 데서 붙였다는 것이 대체적인 설명이다. 즉, 송당마을의 남쪽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송당마을에서는 당악과 괭이모루에 막혀 이 오름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뒷 오름도 없고 옆 오름도 없는데 왜 이 오름만은 '앞오름'이라 인식하게 됐는지 설명이 없다. 그뿐만 아니다. 수많은 마을과 오름이 있지만 이런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부오름은 높은오름과 가깝다. 높은오름은 자체높이 175m로 아부오름 높이의 3배 이상 현저히 높다. 두 오름은 인접해 있다. '아부오름'이란 바로 이 '높은오름'과 대비가 되는 뜻의 지명이 아닐까? 알타이어 공통 조상어 '아프-'가 있다. 이 말은 여러 언어에서 '오프-', '어프-', '아프-' 혹은 여기에서 약화한 '오브-' '어브-', '아브-' 등으로 파생했다. '작은 산' 혹은 '언덕'의 뜻을 갖는다.

'높은'은 현재 국어에 남아 있다. 다만, 지금은 '높다', '높은' 같은 형용사로 쓰이지만, 이 어휘의 명사형은 '높'이다. 고대어에서는 이 '높'이라는 명사가 개음절어로 쓸 때는 '노프'로 발음한다. 따라서 '높은오름'은 원래 '높오름' 혹은 '노프오름'이다. 언어 습관상 여기에 관형격 어미 'ㄴ'이 첨가돼 '높은오름'이 된 것이다. 본 기획 '높은오름'을 참조하실 수 있다. '아부오름'이란 '아프오름'의 약화형인 '오브-' '어브-', '아브-' 오름으로 발음했던 것인데 위 같이 다양한 형태로 기록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아부오름'이란 송당마을 앞에 있는 오름이 아니다. '낮은 오름'이란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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