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호프
입력 : 2026. 08. 03(월) 02:00수정 : 2026. 08. 03(월) 07:08
진명현 hl@ihalla.com
완벽한 가미 요리
영화 '호프'.
[한라일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의 영화가 개봉 후 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식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 인가 영화는 유독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이 짧은 상품이 되어 버렸다. 개봉 전 대중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던 영화라도 개봉 후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쉽게 시들해 지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공개된 지 꽤 시간이 지난 창작물이 역주행을 통해 차트의 맨 꼭대기에 오르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음악과 출판 시장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물론 <왕과 사는 남자>처럼 천만 관객 이상을 동원해 영화 이상의 현상이 되는 경우는 예외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는 지난 7월 15일 개봉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아 온 영화다. <추격자>, <황해>, <곡성>과 <랑종>에 이르기까지 그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모든 영화들이 화제성의 중심에 선 바 있다. 또한 그는 비평가는 물론 대중까지 해석의 장에 참여시킨 창작이기도 하다. 나홍진의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만 그 호와 불호는 이상할 정도로 일반적인 흐름보다 오래 지연된다. 좋든 싫든 관객들이 물고 뜯고 씹는 행위의 끝까지 가보고 싶게 만들어 하는 영화를 내놓는 요리사가 나홍진이 아닐까. 물론 그의 요리가 완벽할 리는 없다. 모두의 입맛이 다르기에 세상에 완벽한 요리란 있을 수도 없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맛있어서 한 번 더 맛 보고 싶은 성찬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뱉고 싶을 정도로 입맛을 버리게 만든, 한끼도 채워주지 못한 무엇이 창작자 나홍진이 내놓은 신메뉴 <호프>다.

<호프>가 개봉 되기를 기다렸고 개봉 주 극장에 찾아가 두근대는 마음으로 스크린을 마주했다. 재미있게 봤다. '우리 마을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 무언가가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찾아내서 죽여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라는 단순한 플롯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내내 추격하거나 추격을 당하는 거대한 리액션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헐거운 개연성을, 욕설로만 도배된 대사를, 새롭지 않은 크리쳐 디자인과 이해할 수 없고 완결되지 않은 결말을 이 영화의 단점으로 지적한다. 다 틀리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호프>에 열광하는 관객들은 단점으로 지적된 영화의 빈틈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스스로의 나래를 펼치며 이야기를 확장하는 이들이다. 제목은 '희망'이고 만든 이는 '믿음'을 이야기하고 비난하는 이들은 '약속'을 저버린 영화의 모양에 대해 성토한다. 일단 영화는 기승전결로 이루어진 완성품이어야 한다는 오래된 약속을 지키지 않은 <호프>는 그 믿음을 배신한 관객들에게는 다양한 모양새로 실패작인 영화인 동시에 미완성인 영화이고 속편을 염두에 두었다는 미지근한 가능성을 흥행이라는 관객의 투표에 맡기는 비겁한 영화다. 한편 <호프>에 열광하는 이들은 한편의 영화를 자신만의 슬라임처럼 주무르며 쾌감을 느끼는 중이다. 설명되지 않는 영화의 공간 안으로 기꺼이 달려 들어가며 불투명한 인물의 서사를 대신 느끼는 것처럼 적극적인 관람의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음식에도, 영화에도 별점을 매기는 것으로 결과물에 대한 소비자의 피드백이 이루어지는 시대다. 요즘의 소비자들은 평가에 적극적이고 매서운 확신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때로는 권위 있는 평자들의 의견에 기대고 종종은 자신의 취향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창작의 결과물을 가능한 단순한 모양으로 흡수하려고 한다. 재고의 여지는 없는 쪽에 가깝다. 새로운 파도가 밀려들듯 쏟아지는 또 다른 창작물들이 대중의 소비와 평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빠른 회전율의 시대에 <호프>는 식당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요리사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혹은 요리사가 없더라도 내가 느낀 맛의 매력을 공감해 줄 타인과 대화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발견한 작품이다. 해석과 해설로 정답을 찾는 일에 분주했던 관객들이 <호프>의 본문에 각자의 주석을 달고 있다. 어쩌면 이 재미는 영화를 보는 것 이상의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잊히지 않는 영화의 잔상이 남긴 것들이 입을 열게 하고 글을 쓰게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일이다.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새롭게 시작되는 영화적 순간이 있다면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090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