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인턴] 우리의 기초 회화
입력 : 2026. 09. 14(월) 03:00
진명현 hl@ihalla.com
영화 '인턴'.
[한라일보] 일이 손에 익으면 저절로 베테랑이 될 줄 알았다. 시간의 힘을 믿는 성실한 태도의 가치는 사라질 리 없겠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망연자실한 기분은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었다.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 위에는 먼지가 쌓인다는 것, 그 두께가 만든 흐릿함이 때로는 시야를 어둡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도전이라는 단어가 무서웠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발 밑에 두고 이제 그 층이 흔들릴 일은 없겠다고 믿었건만 나는 한 번 더 쿵쿵 발을 굴러야 했다. 지나온 날의 내가 아니라 지금부터 앞으로의 내 걸음들을 위해서 새 신을 신고 또 한 번의 물집을 감당해야 할 시간이 누구에게나 오기 마련이다.

김도영 감독이 연출하고 최민식, 한소희가 출연한 영화 <인턴>은 2015년 낸시 마이어스 감독, 로버트 드니로, 앤 해서웨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인턴>의 한국판 리메이크다. 지긋하게 나이 든 남성이 성공한 젊은 여성 사업가의 인턴이 되는 이야기로 세대 간의 갈등과 반목을 넘은 우정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일찌감치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얻은 영화다. 한국판 <인턴>역시 원작의 기본 서사를 충실히 이어 받는다. 기호(최민식)는 아내와의 사별과 퇴직 후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던 차에 자신이 30년 넘게 일하던 회사의 터에 자리잡은 패션기업 우투투의 실버 인턴 자리에 지원하고 채용된다. 워라벨이 무너진 채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우투투의 대표 선우(한소희)에게 갑자기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온 기호는 불편한 어른일 뿐이고 3개월이라는 인턴의 시간 동안 둘의 관계가 발전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영화를 좋아한다. 세상이라는 넓디넓은 시공간 안에서 태어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이야기라서 그렇다. '낭만'은 현실에 메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람이나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혹은 그렇게 파악된 세계를 뜻하는 단어다. 이 단어 자체가 철 지난 것처럼 느껴진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감상과 이상이라는 썩 근사한 단어가 무용하게 취급 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인턴>속에서 관계는 타인을 바라보고 긍정하려 하는 순간 시작되고 지속된다. 낯선 존재에게 시간을 주는 일이 거듭될 때 발생하는 기류가 기호와 선우 사이에서 작용한다. 다름이라는 외피 속에 감춰진 닮음을 목격하고 반기는 두 사람만의 순간이 그 기류 안에서 생겨난다.

말도 길게 섞지 않던 두 사람이, 한 공간 안에서 부딪히지 않으려 노심초사 하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곁에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는 풍경을 <인턴>은 만들어 낸다. 스쳐 지나가 타인으로 남을 줄 알았던 두 사람이 정중한 인사를 건네고 오래 고민한 부탁을 하고 깊은 감사를 표하며 끝내 해야 할 사과를 하고 뭉클한 호통을 치는, 더 가까이로 향하는 회화의 과정이 영화 안에 눌러 담겨 있다. 한국판 <인턴>은 기본적인 태도의 언어를 성실하게 쓰는 영화다. 한 문장의 기초 회화가 관계를 어떻게 시작하게 할 수 있는지, 타인의 언어를 배우겠다는 마음이 자신의 삶 안으로 생각지도 못한 대화의 정원을 만들어 주는지 발견할 수 있는 영화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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