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25시]사람 사는 법
입력 : 2011. 06. 09(목) 00:00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그제(7일)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광복군으로 활동했으며 우리나라가 해방이 된 후에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노력한 '실천적 지성'으로 꼽힌다.

그는 1985년 전두환 정권의 압력으로 2년8개월만에 고려대 총장직을 사퇴한다. 당시 고려대 학생들은 한 달 동안 그의 총장 사퇴를 결사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독립운동 등으로 건국훈장 애국장과 건국포장 등 많은 훈장을 받은 그는 후에 "그때 학생들의 시위를 최고의 훈장으로 여긴다"고 회고했다.

학자로서 '꼿꼿함'을 유지했던 그는 정치와는 한참 거리를 두었다. 8일 모 일간지는 그의 유명한 일화를 소개했다. 1988년 1월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국무총리를 제안받았는데 5가지 이유를 들어 고사한다. 노 당선자를 두 번 만났지만 잘 모르고, 새 헌법에 따라 전두환씨가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맡게 되는데 총칼로 정권을 잡고 많은 사람을 괴롭힌 그에게 내 머리가 100개 있어도 숙일 수 없고,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에게 투표한 내가 총리가 되면 야당을 지지한 60%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하는데 그 뜻을 이루기 어렵고, 민주주의를 외치다 투옥된 많은 학생들이 아직도 감옥에 있는데 그 스승이라는 자가 총리가 될 수 없으며, 지식인들이 벼슬이라면 굽실굽실하는 풍토를 고치기 위해 나 하나만이라도 그렇지 않다는 증명을 보여야 한다며 이해를 구하고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이전에도 장면 내각의 주일대사, 박정희 대통령의 통일원장관 제의 등을 물리치는 등 '정치 외도'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대학총장을 하다 국무총리나 장관이 되고, 교수를 하다 국회의원·장관이 되는 일부 '정치 학자'들은 그의 일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물론 대학총장이나 교수가 정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의 학자로서의 '꼿꼿함'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사람 사는 법'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조직에서도 그렇다.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해 동료와 선후배를 배신하고, 업신여기고, 추락하는 것을 즐기고, 약점을 잡아 이리저리 뒤흔들고…. 그러면서 잘한 것을 자신 탓으로 돌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 슬픈 일이다.

광복군으로, 중국사 연구와 많은 저서 등으로 학자로서의 '꼿꼿함'을 유지하며 한 평생을 살았던 김준엽. 앞으로도 그가 그리워질 때가 많을 것 같다. <한국현 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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