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올레에도 성찰이 필요하다
입력 : 2012. 07. 25(수) 00:00
걷기 붐이 일면서 길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었다. 걷기는 인류가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인류가 두 발로 걷기를 시작한 시기는 '남방의 원숭이'라는 뜻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등장한 약 400만년 전 무렵부터다. 이 원시 인류는 자유로운 두 손으로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줄 알았다. 인류가 직립보행을 할 수 없었다면 현대문명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인류는 걷기를 통해, 길에서 생존과 문명을 일구어낸 셈이다.

누군가 '길은 가고 나면 열리는 법'이라고 했다. 누군가 앞서 간 그 길을 따라 수많은 길이 만들어졌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걸어갔다. 사람들은 그 길에서 욕망하고 갈등하고 사색하고 치유를 한다. 길은 때론 전쟁과 정복의 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문명의 교차로가 되기도 한다.

그 길이 혁명적인 변화를 하고 있다. 걷기 열풍이 불면서 전국에 수많은 길이 재탄생 하는 것을 본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길의 대명사로 통하는 것이 바로 '올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제주의 길은 '올레'로 통한다고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올레와 함께 제주에는 명품 숲길이 있다. 사려니숲길이나 한라산둘레길, 종교계의 순례길과 마을 올레길 등등 제주는 길로 넘쳐난다. 다양한 길이 엮어지면서 제주는 걷기 천국이 됐다. 그렇다보니 길도 다 같은 길이 아님을 안다. 길에도 느낌이 있고 저마다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제주의 길과 관련해서 지인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길도 가슴으로 걷는 길이 있는 반면, 사색하며 머리로 걷는 길, 뜨거운 신앙심으로 걷는 길이 있다고. 철 따라 길 따라 텅 빈 가슴으로 바람을 맞는 길은 또 어떻고. 그렇다면 올레는? 누군가 '그냥 발로 걷는 길'이라고 했다.

올레를 폄훼하는 것 아니냐고 곡해 마시길…. 약간 썰렁한 듯한 이 말은 여러 가지를 함축하고 있다.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킨 올레지만 무언가 2%가 부족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주변 자원을 씨줄날줄로 엮어내는데 한계가 있고, 생각보다 길이 헷갈리기 일쑤라는 얘기도 있었다. 제주도민의 길이었던 올레가 특권화하고 사유화돼버리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얘기들도 쏟아졌다.

올레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길'을 모토로 하고 있다. 2007년 9월 1코스 개장 후 5년이 흐르면서 많은 올레꾼들의 사랑을 받았다. 오는 9월이면 제주 해안을 잇는 정규코스가 모두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처럼 거침없던 올레에서 한 여성 여행객의 피살 사건은 그야말로 비극이고 충격적이다. (사)제주올레는 부랴부랴 올레길 도보여행 안전수칙을 내놨지만 이미 소중한 생명을 잃은 뒤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도 CCTV설치 등을 지시했지만 임기응변식 대응은 자칫 졸속으로 흐르기 쉽다.

올레는 그동안 길을 내는데 신경을 쓰면서 매뉴얼 마련 등에 소홀히 해왔다. 이제라도 간과한 부분들에 대한 자기점검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행정에서도 지원 못지않게 지도, 점검 등에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길'에서의 비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윤형 사회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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