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올레길이 문젠가, 치안이 문제다
입력 : 2012. 08. 15(수) 00:00
올레길에서 40대 여성 피살사건이 터졌을 무렵이다. 섬뜩한 뉴스를 접했다. 필리핀 관광갔다가 사라지는 한국인들이 많았다. 깜짝 놀랄 정도다. 2009~2011년 3년새 살해당하거나 실종된 사람이 무려 38명에 달했다. 아무리 해외관광이 일상화됐다고 하나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올레길 참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제주를 세계의 보물섬으로 자랑하면서 '손님 맞이 인프라'는 제대로 갖췄는지. 관광객 1000만명 유치목표로 '숫자놀음'에만 빠진 건 아닌지. 이들에게 정작 중요한 '안전여행'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

분명 올레길 피살사건은 일어나선 안될 비극이다. 그렇다고 대통령부터 도지사까지 나서서 호들갑을 떨 일인가. 사건이 터지자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레길 범죄에 대한 철저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제주도는 범도민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는 초유의 일까지 벌어졌다.

번갯불에 콩볶듯이 제대로운 대책이 나올리 만무하다. 즉흥적이고 비현실적인 대책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CCTV 설치다. 우근민 도지사는 예비비를 써서라도 올레길에 CCTV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우 도정의 진중하지 못한, 한없이 가벼운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실망이다. 매사 이렇게 각종 시책이나 정책을 만들어내는지 의심스럽다.

한번 생각해보라. CCTV가 만능인가. 분명 CCTV가 범죄를 어느 정도 예방하거나 억제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곧은 길도 아니고 구불구불한데다 돌고 돌아서 걷는게 올레길이다. 이런 올레길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CCTV 설치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 올레길이 어디 한 두 군데인가. 게다가 그 길이는 좀 긴가. 제주섬 전체가 올레길이다. 올레길에 CCTV를 설치한다면 그야말로 제주는 CCTV로 뒤덮이게 된다.

다시는 올레길에서 이런 불미스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괜한 기우인가. 올레길이 아닌 오름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그땐 오름마다 CCTV를 달건가. 올레길은 자연길이지만 오름의 탐방로는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한 인공길이다. 어쩌면 CCTV는 올레길이 아닌 탐방로가 있는 오름에 설치하는게 맞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제주도는 올레길에 CCTV 설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미봉책도 있을까. 마치 올레길만 안전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말이다. 물론 올레길 안전대책이 필요하지 않다는게 아니다. 문제는 올레길에 앞서 생활주변부터 과연 안전한지 되짚어볼 때란 얘기다. 일이란 순서가 있는 법이다.

그동안 도심지 복판에서 벌어진 강력사건이 한 둘이 아니잖은가. 어린이집 보육교사(2009년)와 제주시 소주방 여주인 피살사건(2006년) 등은 여태 범인도 잡지 못했다. 지금 도심지 골목길 등 으슥한 치안 사각지대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가. 누구나 밤길도 맘놓고 활보할 수 있는 그런 '안전도시'를 꿈꾼다.

그렇다면 올레길 참사는 치안문제로 귀결된다. 올레길이 문제가 아니다. 바로 허술한 제주치안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관광객 유치 못지않게 치안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이젠 제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만 100만명이 넘는다. 머잖아 관광객 1000만 시대를 맞는다. 그런만큼 제주도는 치안확보가 급선무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을 위해서도, 도민을 위해서도 그렇다. <김병준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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