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부끄러운 병역의 두 얼굴
입력 : 2012. 11. 07(수) 00:00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른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군에 입대하면 파악하는게 있었다. 장관·국회의원 등 고위직 자녀들은 손들라고 했다. 당시는 뭣 때문에 이런 조사를 하는지 몰랐다. 이유없이 했겠는가. 고위직 자녀들에게 좋은 보직 등 '특혜'를 주기 위한 일환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더라도 고위직 자녀의 입대 자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회피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마침 흐믓한 소식이 전해진다. 해외 영주권을 가진 젊은이들의 자원 입대가 꾸준히 늘고 있단다. 그 누적 인원이 지난해 1000명을 넘어섰다. 2004년만 해도 이런 젊은이는 불과 38명에 그쳤다. 그게 2007년 127명, 지난해엔 221명이 입대했다. 올해는 250명에 이를 전망이다. 해외 영주권자들은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 의무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발적으로 국토방위에 뛰어든 것이다.

해외 영주권자들의 입대사연도 저마다 기특하다. 미국 해병대에서 7년간 복무하고 다시 한국을 찾아 입대한 젊은이. 시력이 좋지 않아 4급 보충역판정을 받자 시력교정 수술을 거쳐 현역 입대한 경우. 이 뿐이 아니다. 입대전 신체검사에서 신병문제로 귀가조치 되자 재신청해 입대한 사례도 있었다. 참으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조국을 위한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되레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런가하면 병역과 관련 낯을 들기조차 부끄러운 얘기도 한 둘이 아니다. 올해 국정감사 기간에 불거져 나왔다.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 국적을 버리거나 상실한 18~35세 남성이 무려 1만5560명이다. 이 가운데 국내서 태어났지만 외국 국적 취득으로 국적을 상실한 사람이 상당히 많다. 전체의 95%인 1만4695명에 달한다. 단지 군대 안가기 위해 조국마저 쉽게 팽개치고 있어 씁쓸하기 그지 없다.

병역 때문에 국적을 포기한 고위공직자의 자녀들도 적잖았다. 현직 고위공직자의 자녀 33명이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면제받은 것. 정부기관의 장, 국립대학장, 지방자치단체장, 청와대 비서관 등의 자녀가 포함됐다. 그 중 27명의 고위공직자가 아들의 국적을 포기시키며 병역의무에서 벗어났다. 특히 지식경제부의 한 간부는 장남이 2008년, 차남이 2009년 국적을 버리면서 병역을 면제받았다.

더 아이러니한 사례도 있다. 정신질환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이 현직 판사와 검사로 재직중이다. 판·검사 모두 현역병 입영대상이었으나 정신질환 판정으로 병역을 피해갔다. 병역면제를 받을만큼 정신질환을 앓았는데 판·검사 임용땐 '정상'이 됐다. 금융위원회와 통일부 간부 역시 병역기피 의혹이 짙다. 이들은 일시 해외영주권을 얻어 병역을 면제받은 뒤 국적을 회복해 현재 공직에 몸담고 있다.

그러잖아도 병역문제는 정부 고위직 인사청문회 때마다 입방아에 올랐다. 그만큼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병역 인식이 어떤지를 반증한다. 한 여론조사에서도 이같은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바로 국민 절반 이상이 병역의무가 불공정하게 이뤄진다고 여겼다. 때문에 병역에 대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삐뚤어진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국방의 의무에는 그 어떤 편법이나 반칙도 통해선 안된다. 그래야 누구나 군대 가는 것을 '신성한 의무'로 받아들일 수 있다. <김병준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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