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지슬' 고마워요
입력 : 2013. 03. 20(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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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 가라(조금 저리 비켜라) 속솜허라(조용히 해라) 귀껏 달문거사(귀신 닮은 놈아). 영화의 첫 장면, 관람석의 제주사람들은 웃었다. 배우들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제주어를 맛깔스럽게 구사했다. 관객들은 잠시 잊었던 제주어가 들리자 웃으며 반가워 했다. 배우들이 제주어로 슬픔을 토해낼 때는 눈물을 훔쳤다. 제주어는 자막에 표준어로 처리됐다. 제주사람인 배우들의 연기가 조금은 어설프기는 했지만, 그 어설픔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잘 전달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4·3을 다룬 장편 극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 영화는 1948년 제주의 섬 사람들이 '해안선 5㎞ 밖 모든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미(美)군정의 소개령을 듣고 산속으로 피신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자신들이 왜 폭도로 몰려 산속 동굴에 숨어지내야 하는지 모른다.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슬(감자)을 나눠먹으며 집에 두고 온 돼지가 굶주려 죽지는 않을 지, 이웃집 노총각은 언제 장가갈 지 등등의 걱정을 한다. 사태가 심각한데도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소박한 섬 사람들의 여유가 웃음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 최고 독립영화 선정, 프랑스 브졸아시아국제영화제 황금수레바퀴상,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만장일치 대상.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은 개봉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제주사람 오멸 감독이 만든 영화는 지난 1일 제주에서 첫 상영됐고 지금까지 1만명 이상이 관람하며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내일(21일)부터는 전국의 개봉관에서 상영된다. 배우 강수연은 "많은 사람이 꼭 보아야 할 영화로 소개하겠다"며 '지슬'의 한 회차 티켓을 통째로 구매했다. 그는 제주에 내려와 '지슬'을 관람했다. 국내 유명감독과 일반인들의 대량구매 소식도 들리면서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지슬'이 전국 개봉관을 통해 상영되면 제주4·3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들은 현대사의 아픔을 알게 될 것이다. 이념(理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소박한 제주 섬 사람들이 폭도로 몰려 억울한 희생을 당해야 했는지. 박근혜 정부는 국민대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기간 제주를 방문해 "4·3사건 희생자와 가족이 겪은 아픔을 치유하는 일에 앞장서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제주도민 절반 이상(50.46%)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 다음달 3일에는 제65주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열린다.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최근 '제주4·3문제 조속 해결을 위한 대정부 촉구 결의문'을 채택하고 박 대통령에게 희생자 위령제 참석을 요청했다. 민주통합당 제주도당도 성명을 통해 가세했다. 박 대통령은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고 말한다. 박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을 기대한다.
'지슬'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제주4·3을 흑백필름으로 담담하게 그려내며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제주사람이 아니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처음으로 영화에 담으며 소멸위기의 제주어를 되살리고 있다. '지슬'을 만든 오멸 감독과 연기자, 스태프들이 참 고맙다.
<한국현 제2사회부장>
'지슬'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제주4·3을 흑백필름으로 담담하게 그려내며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제주사람이 아니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처음으로 영화에 담으며 소멸위기의 제주어를 되살리고 있다. '지슬'을 만든 오멸 감독과 연기자, 스태프들이 참 고맙다.
<한국현 제2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