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낙서(樂暑)'
입력 : 2013. 08. 07(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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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없이 비가 내리지 않는 마른장마에다 폭염까지 더해져 제주도 전역이 연일 '찜통더위'다. 제주지방은 지난 6월 중순 비 날씨를 보인 이후 한 달이 훨씬 넘도록 제대로운 비를 내리지 않은데다 밤낮없이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로 농작물 피해는 물론 사람들의 일상생활마저 위협하고 있다.
기상청 분석결과 7월 제주는 기상관측이래 가장 더웠다. 한달 평균기온이 28℃로 1923년 관측이래 가장 높았고, 낮 최고기온 30℃ 이상인 날과 잠 못 이루는 열대야도 보름을 훌쩍 넘길 정도였다. 절기상 7일 입추, 12일 말복, 23일 처서를 앞둬 가을의 문턱이지만 무더위는 다음달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처럼 유례없는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자신만의 피서법으로 슬기롭게 여름을 나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일상사를 잠시 접고 무조건 '길'을 떠나든지 아니면 묵묵히 '더운 현실'을 받아들이며 여름이 지나가길 기다리든지 개인에 맞게 선택할 일이다.
피서(避暑)란 원래 고온건조한 날씨를 피해 가축들을 목초지로 이동시키던 중앙유목민족들의 풍습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유목민족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고려시대 이후 자리잡은 농경문화로 인해 피서가 가축을 위한 대규모 집단 이동이 아닌 여름날의 폭염을 피하기 위한 휴식으로 바뀌었다.
요즘은 교통수단이 좋아 어디로든 떠나는 피서가 대세지만 과거에는 기껏해야 산에서 흐르는 물에 발목을 담그는 탁족(濯足)이나 유두(流頭, 머리감기) 등이 전부였다.
독특한 피서도구 죽부인(竹夫人)도 피서의 하나다. 길이 1m 남짓한 원통형 도구로 무더운 여름밤에 안고 자기에 알맞아 죽부인이라 했다. 끼고 자면 대나무의 차가운 촉감이 시원한데다 원통 속에선 바람이 솔솔 불기도 했으니 더위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여기에다 더 점잖은(?) 선비들은 더위를 피하기보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낙서(樂暑)를 선호했다고 한다. 선비들끼리 모여 옛 시구나 시조를 읊조리는 시회(詩會)를 즐기거나 집안에서 가벼운 모시옷차림으로 부채를 부치면서 책을 읽는 것 등이 낙서의 한 방법이었다.
중국 당나라의 선승 동산양개 화상의 일화다. "더위나 추위는 어떻게 피해야 하느냐"라고 누가 묻자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으로 가라"고 답했다고 한다. 더울 때는 그대를 덥게 하고, 추울 때는 춥게 하면 더위도 추위도 없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한 것이다.
우리 옛 선조들이 멀리 떠나지 않고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더위를 즐기며 여름을 나는 낙서의 방법과 다를 바 없는 얘기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가. 무엇보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서민들에게 피서는 남의 얘기다. 바다로, 산으로, 해외로 비행기 타고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팍팍한 주머니 사정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생업에 매달리는 서민들이 의외로 많다.
굳이 피서를 떠나지 않고도 하루에도 수 차례 수돗물로 냉수욕을 할 수 있는 최고로 값싼 피서법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공포영화 한 편을 보는 경제적인 피서법도 있다.
夏夏! 好好! 피서는 내 마음에 달렸다. 덥다고 조바심내면 본인만 고생이다. 남은 여름 '낙서'로 더위를 이기자. <김기현 경제부장>
올해처럼 유례없는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자신만의 피서법으로 슬기롭게 여름을 나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일상사를 잠시 접고 무조건 '길'을 떠나든지 아니면 묵묵히 '더운 현실'을 받아들이며 여름이 지나가길 기다리든지 개인에 맞게 선택할 일이다.
피서(避暑)란 원래 고온건조한 날씨를 피해 가축들을 목초지로 이동시키던 중앙유목민족들의 풍습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유목민족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고려시대 이후 자리잡은 농경문화로 인해 피서가 가축을 위한 대규모 집단 이동이 아닌 여름날의 폭염을 피하기 위한 휴식으로 바뀌었다.
요즘은 교통수단이 좋아 어디로든 떠나는 피서가 대세지만 과거에는 기껏해야 산에서 흐르는 물에 발목을 담그는 탁족(濯足)이나 유두(流頭, 머리감기) 등이 전부였다.
독특한 피서도구 죽부인(竹夫人)도 피서의 하나다. 길이 1m 남짓한 원통형 도구로 무더운 여름밤에 안고 자기에 알맞아 죽부인이라 했다. 끼고 자면 대나무의 차가운 촉감이 시원한데다 원통 속에선 바람이 솔솔 불기도 했으니 더위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여기에다 더 점잖은(?) 선비들은 더위를 피하기보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낙서(樂暑)를 선호했다고 한다. 선비들끼리 모여 옛 시구나 시조를 읊조리는 시회(詩會)를 즐기거나 집안에서 가벼운 모시옷차림으로 부채를 부치면서 책을 읽는 것 등이 낙서의 한 방법이었다.
중국 당나라의 선승 동산양개 화상의 일화다. "더위나 추위는 어떻게 피해야 하느냐"라고 누가 묻자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으로 가라"고 답했다고 한다. 더울 때는 그대를 덥게 하고, 추울 때는 춥게 하면 더위도 추위도 없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한 것이다.
우리 옛 선조들이 멀리 떠나지 않고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더위를 즐기며 여름을 나는 낙서의 방법과 다를 바 없는 얘기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가. 무엇보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서민들에게 피서는 남의 얘기다. 바다로, 산으로, 해외로 비행기 타고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팍팍한 주머니 사정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생업에 매달리는 서민들이 의외로 많다.
굳이 피서를 떠나지 않고도 하루에도 수 차례 수돗물로 냉수욕을 할 수 있는 최고로 값싼 피서법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공포영화 한 편을 보는 경제적인 피서법도 있다.
夏夏! 好好! 피서는 내 마음에 달렸다. 덥다고 조바심내면 본인만 고생이다. 남은 여름 '낙서'로 더위를 이기자. <김기현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