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태평양전쟁과 제주도의 아픔
입력 : 2013. 08. 14(수) 00:00
태평양전쟁은 인류사에 있어서 가장 비극적인 전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은 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 항모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 조인으로 공식적으로 끝났다.

전쟁기간 일제는 한반도를 비롯 아시아 각국을 상대로 반문명적인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관동군 731부대의 생체실험, 위안부 강제 동원 등은 끔찍한 기억들이다. 일본의 전쟁도발은 결국 비극적 부메랑으로 귀결된다. 남태평양 티니안섬에서 발진한 B29폭격기에 의해 인류 최초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것이다. 이는 곧 패망으로 이어진다.

제주도라고 전쟁의 비극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태평양전쟁의 가장 중요한 전장의 하나로 제주도가 상정됐었다고 한다면 선뜻 이해할 수 있을까. 그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제주도는 일본 대본영에 의해 결 7호 작전지역으로 설정됐다. 제주에 진주한 병력만도 약 7만5000명이었다. 각종 대공화기 등으로 중무장한 일본군이 만주에서 혹은 일본 본토에서 한반도의 남쪽 섬 제주도를 향해 꾸역꾸역 몰려드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일본 본토 방어와 천황제 유지에 있었다. 제주섬 전체가 전쟁기지화 되고 제주도민은 강제노역에 내몰린다. 다른 지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강제 동원됐다.

제주도 오름 368곳 가운데 약 120곳에서 지하진지가 구축된 것이 지난 몇 년간 탐사에서 드러났다. 그 수는 700여 곳에 이른다. 현재까지 파악된 길이는 15㎞ 정도에 달한다. 하지만 함몰 갱도가 상당수여서 구축 당시 규모는 훨씬 컸을 것이다. 세계자연유산지구인 거문오름과 일출봉, 세계지질공원인 수월봉, 용머리해안, 산방산 등도 상처투성이다.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대 지하호와 비행장 격납고, 지하벙커 등 태평양전쟁 관련 군사시설은 세계적 규모와 다양성을 보여준다.

유네스코 3관왕과 세계7대자연경관 타이틀을 내세우는 제주도의 속살은 이처럼 전쟁의 상흔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는 일제가 한반도와 아시아 각국을 침략한 가해의 현장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일제가 끊임없이 역사왜곡 도발을 시도하고 있어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역사의 아픔은 몇 년 전부터 언론을 통해서 조명되고 학술사회단체에서 관심을 보이면서 차츰 알려지는 단계다. 그렇지만 상당수 도민들은 그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제주가 1천만 명 관광객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안내책자 하나 없는 실정이다. 체험프로그램의 부재는 물론 등록문화재 동굴진지에 대한 관리 역시 소홀하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과거 역사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 교훈으로 삼아나가야 한다는 뜻이 함축돼 있는 말이다. 마침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제주도의회 박희수 의장을 비롯 도의원들이 일제 지하진지 체험에 나서기로 해 관심을 모은다. 아픈 역사 체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역사교훈의 장으로 보다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제주도정과 도의회가 해야 할 책무이다. <이윤형 사회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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