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29)구좌읍 하도리
입력 : 2022. 12. 23(금) 00:00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역사·자연자원이 풍부한 전통적인 장수마을
[한라일보] 마을 면적도 크거니와 하도리의 역사와 문화, 자연자원을 일거에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요약한다고 해도 책 한권은 필요한 방대한 콘텐츠가 기다리고 있다. 1999년 장수마을로 지정된 사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누가 봐도 사람 살기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어서 그럴 것이다. 선사유물도 있지만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모습은 1300년경,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제주목 포구 중에 '도의여포'라고 표기 되어져 있다. 도의여는 토끼섬 부근. 그 도의여마을이 커져서 웃도의여마을과 알도의여마을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웃도의여마을은 상도리라 부르고 알도의여마을은 하도리가 되었다.

창홍동, 동동, 굴동, 신동, 서문동, 서동, 면수동. 모두 7개의 동네를 거느린 하도리는 굴가름이라고 부르는 굴동과 동동에 먼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유서 깊은 마을이 제주 역사의 중요 지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조선 중종5년(1510) 제주목사 장림이 우도를 왜구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하도리 지역으로 옮겨서 진성을 구축하면서다. '탐라순력도' 41점의 그림 중에 '별방조점'(別防操點) '별방시사'(別防試射) 두 점이 수록된 비중이 큰 역사적 장소다. 제주의 9개 진성 중에 특별한 방어가 필요한 진성이라는 뜻을 가진 별방(別防)은 하도리를 부르는 다른 명칭이기도 하다.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성곽으로 둘레가 1008m. 1974년에 제주도문화재로 지정.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진성 복원 사업이 이뤄졌다. 성곽만 복원되고 역사관광자원으로써의 활용가치를 이끌 정비사업은 요원하다. 복원공사를 하는 12년 동안에 주민들은 얼마나 큰 기대에 부풀었는 지 모른다고 했다. 관광차들이 엄청나게 많이 들락거릴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성곽만 보수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진취적인 프로그램은 마련하지 못했던 것. 소프트웨어 빈곤을 보여주는 행정적 사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긴 안목을 가지고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하도리의 대표 이미지 중 하나는 환경자원에 있다. 75만3000㎡ 면적을 가진 철새도래지. 연안습지로써 해수와 담수가 섞여있는 기수습지에 해당된다. 새들이 무려 71종 7854개체수가 확인되는 곳이다. 시베리아나 중국 등에서 이동하는 철새들이 월동지 또는 중간기착지로 삼는 곳이다. 국제적 희귀조류인 저어새가 찾아오는 곳으로 전 세계 1200여 마리 중 1.7%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쇠가마우지, 큰기러기, 물수리와 같은 보호조류와 천연기념물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원앙, 황조롱이, 개구리매 등이 하도리 철새도래지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너른 경지 면적을 가진 하도리는 명품당근 주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토질에 알맞은 경제작물로 그 역할을 충분하게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들보다 밭담의 원형이 잘 보존 되어져 있는 경관적 특징이 돋보인다. 밭농사를 중심으로 어업과 축산업 또한 막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마을. 해안선이 긴 마을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지 굴동포구, 동동포구, 구도리통포구, 가리묻은개포구, 한개포구와 같이 포구가 많다는 것은 아직도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는 주민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직도 해녀들의 수가 200명이 넘는 해녀마을의 명성을 보유하고 있다. 축산 경쟁력 또한 하도리의 중요한 경제역량이다. 24만5000평 너른 공동목장에 조합원들이 참여하여 제주 동부지역 축산을 선도하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이영태 이장에게 하도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자긍심을 물었다. 대답이 독특했다. "우리 마을 주민들의 자긍심은 자연을 보호하려는 각오와 노력이지요." 너무 많은 자연적 보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지키기 위한 자발적인 인식이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의 저변에 깊게 깔려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법적, 행정적 노력도 그 마을의 주민들이 자연자원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이는 어떤 성과도 낼 수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가치관이다. 어떤 의미에서 하도리의 진정한 가치는 이러한 가치관에서 나온다. <시각예술가>



별방진성 입구에서
<수채화 79㎝×35㎝>

제주의 돌문화가 망라된 듯한 곳이다. 성담에서 밭담과 집담, 축담이 한 화면에 들어와 나름대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상황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구도가 파격적이다. 진성의 성담이 근경에서 햇살을 받지 못하고 마치 판화의 음각처럼 오른쪽을 차지하고 있다. 전봇대 두 개가 세로 선을 형성하고 그 뒤로 마을이 보인다. 지붕들의 뒤편에 아주 작은 성담의 모습까지 돌의 크기가 원근을 추동하는 시각적 역할을 하고 있다. 멀고 가깝다는 의미가 공간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심정적으로 주는 메시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정오가 조금 지난 상황에서 역광에 가까운 풍경을 택한 것은 돌담 위에 그려지는 강렬한 선을 그리기 위해서다. 그리는 내내 제주의 돌담문화가 지닌 소중한 가치를 생각했다. 밭담과 집담들은 오래 전에 쌓은 것들이라 바닷가에서 날아오는 해수 염분에 검어졌지만, 10여 년 전에 복원공사를 해서 축조한 매끈한 성담은 아직도 회색이 밝은 편이다. 어두운 부분이 많아서 대비효과에 의하여 햇살의 강도는 더욱 눈부시게 느껴지고, 돌과 집들의 절묘한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저 태양광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소중한 역사적 가치를 현재의 관점에서 그리는 행위는 짜릿한 흥분을 제공한다. 사람이 살기 위하여 필요한 돌. 살아남기 위해 쌓아야 했던 제주 현무암의 역사를 한 폭의 풍경화에 담을 수 있는 곳은 여기다. 저 성담을 쌓으며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여기 조상님들의 통곡소리는 풍경화라서 그리지 못했다.



토끼섬 문주란 자생지
<수채화 79㎝×35㎝>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19호. 1962년에 지정되었다는 사실은 여기가 지닌 소중한 가치를 국가적인 관점에서 일찍 자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어린시절 화북동 바닷가에서 동네 어른들로부터 이런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저 동쪽 별방 앞바다에 토끼섬이 있는데 그 섬에는 토끼만 살아서 그 섬의 주인이 토끼다. 그 토끼들은 문주란만 먹고 산다.' 아이들을 놀려주려고 지어낸 이야기지만 그 동화같은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 토끼섬을 직접 풍경화로 그렸다. 토끼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겨울이지만 문주란의 초록 잎들이 보이니 분명 토끼가 있어야 하거늘 달나라로 이민이라도 갔나?

수평구도의 전형이다. 하늘과 바다 사이를 가르는 산과 같은 섬. 그 아래 펼쳐지는 세상. 소중한 가치를 품은 작은 섬이 전하는 메시지는 문주란이다. 그리고 저 표류식물 문주란은 바다의 위대함을 전하고 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라고 한다면 인도양에서부터 어떤 뿌리가 파도와 해류를 타고 태평양까지 와서 다시 북상을 거듭한 끝에 제주의 부속도서(?)인 토끼섬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린 것. 섬을 그리는 방법은 바다를 그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바다의 색이 그 섬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모래가 쌓여있는 방향에서 그린 이유는 겨울하늘 빛이 섬 아래 바다에 비치면 그 빛이 고려청자의 색깔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을 감싸는 바다색을 국보급 컬러로 그려야 직성이 풀릴 듯 하여 겨울바다와 함께 그렸다. 바닷속 모래가 빚어낸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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