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주인의 건강보고서 Ⅷ 건강다이어리] (119)상급종합병원이 필요한 이유
입력 : 2023. 08. 23(수) 00:00수정 : 2023. 08. 23(수) 13:28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지역 완결적 의료서비스 공급 전제된 진료권 보편적
제주지역 '대진료권' 범위 서울과 함께 묶이며 관행적 부재
'100만 명 배후 인구 필요' 기존 논리 현 실정과 맞지 않아
'진료권 내 전반적인 의료기술 수준의 향상' 여전히 유효

[한라일보] 제5기(2024~2026년) 상급종합병원 지정 절차가 시작됐다. 이번에 처음으로 상급종합병원 지정 신청서를 낸 제주대학교병원은 제주도민들의 원정 진료비 감소와 양질의 의료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주인의 건강다이어리는 2회에 걸쳐 제주 지역에 상급종합병원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제주대학교병원 최국명 병원장의 설명을 들어본다.



최국명 제주대학교병원장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제주특별자치도에 상급종합병원을 새롭게 지정하겠다는 지역공약을 내 건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고, 올 하반기에는 전국적으로 상급종합병원을 새롭게 지정하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도민들 사이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된 병원을 이용할 때 돈만 더 낼뿐 도민들에게 도움 될 것이 없다는 반론도 있는 것으로 안다. 올해 내에 제주도에 상급종합병원이 지정될 필요성에 대한 광범위한 도민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상급종합병원 관련 제도의 수립과 변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상급종합병원'이라는 이름은 두 번의 변화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 1977년 7월 500인 이상 사업장 직장인을 대상으로 의무적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이후 13년 만인 1989년 7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가 확대됐다. 바로 그 시점에서 오늘날 상급종합병원의 기원이 된 '3차 진료기관' 지정 제도가 최초로 도입됐다. 근로자와 공무원을 중심으로 의료보험 가입자격을 단계적으로 넓혀가다가 1988년에 농어촌지역 전 주민과 1989년 도시지역 주민 전체에게 의료보험 가입자격을 부여하고 보험료를 징수하면서 모든 국민들이 의료보험증을 갖게 됐다. 의료보험제도는 의료보험 자격을 부여하고, 의료보험증만 나누어 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의료보험증을 갖고 있더라도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거나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다반사라면 국민들이 체감하는 혜택이 나아질 리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때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개혁을 향한 국민적 염원이 들끓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 시점에는 전국 어디에서나 의료인력, 의료장비, 병원시설이 국민적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보완과 대응이 필요했다. 이와 관련해서 정부당국자들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종합병원 설립을 위한 해외 차관을 부탁하기 위해 외국을 간절하게 돌아다녔다. 그렇게 얻어 온 차관으로 최소 7년의 거치기간을 보장하고 장기 저리로 민간병원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갔다. 이를 기반으로 1989년 무렵에는 1970년대 중후반 대비 적지 않은 종합병원과 병상이 전국적으로 늘어났지만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단기간에 확대된 농어촌과 도시지역 지역의료보험 가입자 1500만 명을 포함한 전 국민 의료수요를 감당하기에는 그 수효와 역량이 많이 부족했다.

이 상황에서 정부당국은 발전된 현대의학을 바탕으로 의료서비스 조직화 방법을 체계화한 서유럽 방식의 '의료전달체계'를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된다. 동네의원을 1차 진료기관, 규모가 작은 병원을 2차 진료기관, 규모가 더 크면서 전문성이 높은 종합병원을 3차 진료기관으로 구분하고, 3차 진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대(大)진료권을 설정해서 대진료권 내에서 완결적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를 구획하고 1989년 7월 전 국민의료보험제도 시행과 함께 병행하기 시작했다. 전국을 140개의 중진료권과 8개 대진료권으로 나눴는데, 당시 존재하던 종합병원의 규모와 역량을 중심으로 대진료권과 중진료권 간에 균형적인 의료이용을 보장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대진료권 안에서 '3차 진료기관'을 가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이 발행 한 진료의뢰서가 필요했고, 대진료권 간에 환자 이동을 제한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를 만든 것이다.

이때 설정된 '3차 진료기관' 지정 기준은 '400병상 이상의 대학병원 혹은 종합병원으로 환자 의료이용 형태와 진료의 전문화, 교육연구 기능 수행' 여부였다. 안타깝게도 당시 제주도에는 이 기준을 충족할 종합병원이 없었다. 당시에도 제주도민들이 육지 병원을 찾으려면 당연히 서울이 우선이었을 것이기에 제주도는 자연스레 서울 대진료권에 묶이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2000년부터 '3차 진료기관' 지정 명칭이 '종합전문요양기관'으로 바뀌고 그 세부 기준도 바뀌었지만 2000년 시점에서도 제주도에는 기본 요건을 충족하는 종합병원은 없었다. 그 이후로 '종합전문요양기관' 지정 방식과 기준이 '상급종합병원'으로 바뀌어 온 지금까지도 제주는 관행적으로 계속해서 대진료권 범위가 서울로 묶여있으면서 제주도에는 상급종합병원이 부재한 실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의료전달체계를 조직화할 때, 지역 완결적인 의료서비스 공급을 전제로 한 진료권은 중증응급질환 3시간 이내의 골든타임이 준수될 수 있는 지리적 범위를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지금까지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종합병원이 없었다는 이유로 상급종합병원 지정에서 제주가 배제돼 왔다면 이제는 이 원칙에 충실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시 100만 명이라는 배후 인구가 필요하다는 기존 논리도 20세기 중반을 살았던 한 전문가의 의견에 근거한 것일 뿐 21세기 중반을 목전에 둔 제주 실정에 적합한 것도 아니다.

제주에 지정될 상급종합병원이 어디가 되더라도 그 병원을 중심으로 병원생태계를 건강하게 꾸려나가고 건강한 경쟁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제주도민의 과제이지 제주의 조건이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1989년 의료전달체계를 수립할 당시 정책 방향 또한 '진료권 내 전반적인 의료기술 수준의 향상과 의료전달체계를 정리할'것을 목적으로 했었다. 제주에 상급종합병원을 지정할 필요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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