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이 연주의 끝에서
입력 : 2023. 11. 10(금) 00:00수정 : 2023. 11. 10(금) 23:41
박소정 기자 cosorong@ihalla.com
영화 '블루 자이언트'
[한라일보] 모든 일에는 재능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하면 할수록 더더욱.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느낄 때마다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서 필요한 유일한 것이 노력이란 것을 깨우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재능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할 수 있어?라고 물으면 재능이 보이지 않아도 어떻게든 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대답하게 만드는 것, 그렇게 나 자신의 물음표에 확신에 찬 느낌표를 줄 수 있는 것을 이제는 놀라운 재능이라고 느낀다.

여기 무모한 도전에 인생을 건 십 대 소년들이 있다. 목표는 세계 최고, 분야는 재즈다. 검을 연마하듯 색소폰을 연주하는 다이, 신체의 일부처럼 피아노를 연주하는 유키노리 그리고 우연히 드럼 스틱을 손에 쥔 평범한 대학생 슌지까지. 세 명의 청년들은 도쿄 최고의 재즈 클럽에서 밴드 JASS로 연주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올해 내내 회자되지만 '블루 자이언트'에서는 그 마음만큼이나 육체 또한 중요하다. 분명 음악 영화이고 애니메이션이지만 이 작품은 실사 스포츠영화에 버금갈 만큼의 박력으로 진동한다. 한 번의 무대를 위한 수백 번의 연습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악기를 연주할 뿐인데 연주자가 느끼는 몸의 고통이 보는 이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질 정도다. 그렇게 '전력을 다하면 분명히 전해진다'는 이들의 다짐이 러닝 타임 내내 육화 되어 꿈틀거린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싱 어게인' 세 번째 시즌은 무명 가수들이 '다시 나를 부르다'라는 모토 아래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무대에 서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이름이 아닌 번호로 호명되며 최종 우승자가 아니면 탈락하는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게 된다. 그전까지는 그저 스스로가 부여한 '나는 oo 가수다'로 소개된다. 참가한 가수들은 한 곡의 무대를 부여받는다. 심사위원들은 합격과 탈락 버튼을 눌러 오디션에서의 생사를 결정하고 합격을 한 이들은 다음 라운드에 오른다. 대다수의 오디션과 같은 방식이다. 나는 얼마 전 새벽에 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몇 번이고 눈물이 났다. 사연을 소개할 시간이 많지 않은 프로그램 특성상 참가자들의 곡진한 사연 때문에 흘린 눈물은 아니었다. 자신이 어떤 가수인지를 소개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가장 아끼고 자랑할만한 한 곡을 부르는 몇 분의 시간이 이상하게 마음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다시는 없을 기회일 수도 있고 혹은 늘 상상했던 곳으로 비상하게 만들 마지막 문턱일 수도 있을 그 무대에서 어떤 이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세월이 느껴졌다. 달고 쓰고 맵고 신, 오직 그 사람의 시간만이 숙성할 수 있었던 고유하고 놀라운 맛이 느껴져 입에 침이 고였다. 한 곡의 노래가 이토록 멀리 사람을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을 눈 감고 노래 부르는 이와 입 벌리고 노래를 듣는 이가 동시에 느끼는 시간이었다.

'블루 자이언트'는 일본 소년 만화의 서사를 충실하게 따르는 작품이다. 성공은 좌절 끝에 이루어지고 좌절은 소년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의아할 정도로 전력 투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만화적'일 수밖에 없다고도 느껴진다. 저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를 궁금해할 틈도 없이 그들은 내달린다. 내장을 다 꺼내어 보일 정도로 스스로를 입증하는 연주가 과연 있을까? 하는 타인의 심드렁한 감상도 송두리째 태워 보인다. 한 번을 쏘아 올려도 정확하고 아름답게 , 누구보다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감동시킬 수 있게 조준하는 이들의 불꽃놀이는 찬란했다.

한 곡의 대단한 무대가, 한 편의 훌륭한 원고가, 한 번의 근사한 기록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몸 던진 이들은 모르지 않는다. 모든 미래는 불투명하고 지난 과거가 빛을 바라는 것은 생각보다 빠르다. 재능의 유통기한은 분명 정해져 있을 것이고 인기라는 섬광에서 지킨 시력이 내다보는 곳에는 다시 허허벌판이 펼쳐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력을 다한 이들의 몸은 그 감각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타인들이 호명한 영광이 아니라 이 연주의 끝에서 기어코 성취한 나의 명예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는 가장 값진 메달일 것이다. 내가 나에게 걸어준, 묵직하고 기특하며 뛸 때마다 스스로의 심장 언저리를 박동하게 하고, 그래서 다시 나를 출발선 앞에 위치하게 만드는.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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