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콘크리트 마켓] 신세계를 향해
입력 : 2025. 12. 08(월) 02:00수정 : 2025. 12. 08(월) 08:59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영화 '콘크리트 마켓'
[한라일보] 등장하는 순간 극의 공기와 흐름을 일순간 바꾸는 이들이 있다. 느슨하던 자세를 다시 바로 잡게 만들고 흐리던 초점을 선명하게 맞추게 하는 이들을 '무드 체인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기운과 기세로 세계에 발을 들이는 이런 이들은 대개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비밀과 힘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블럭버스터 장르의 영화들에서는 이들의 화려한 등장을 슬로우 모션으로 전시하며 구국의 영웅이 될 이들의 앞길에 비단길을 깔아주곤 한다. 그런데 어떤 배우는 코스튬의 도움 없이도 혈혈단신의 존재감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올해 영화 [하이파이브]와 [콘크리트 마켓]을 통해 단독자의 선명한 존재감을 과시한 배우 이재인이 바로 그 케이스다.



2012년 초등학교 2학년의 나이에 드라마 <노란 복수초>로 데뷔한 배우 이재인은 어느덧 12년차가 된 중견 배우다. 그동안 <어른도감>, <아워 바디>등의 독립영화와 <사바하>, <발신제한>등의 장편 상업 영화, <라켓소년단>, <미지의 서울>등의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 그는 올해 무르익은 연기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똘망똘망하다'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 이재인은 특유의 영민함과 씩씩함으로 다양한 장르물들을 겪으며 성장한 배우다. 특히 전형적인 아역 캐릭터와는 상반된 작품 행보를 보여 오며 이재인이라는 배우가 가진 단독자의 기세를 차근차근 쌓아온 도전자이기도 하다. 올해 주연을 맡은 두 편의 영화 <하이파이브>와 <콘크리트 마켓>은 배우 이재인이 가진 개성과 에너지를 충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인 동시에 그의 가능성을 더 넓게 점 쳐볼 수 있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인 <하이파이브>와 디스토피아 재난물인 <콘크리트 마켓>은 각기 다른 장르의 작품이지만 이재인은 두 작품 모두에서 극의 마디마디를 연결하는 중책을 맡으면서 이전보다 더 분주히 몸을 써야 하는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두 편 모두 몸의 움직임이 중요한 작품이기에 배우 이재인이 얼마나 스스로의 몸을 잘 활용하는 액션 배우로서의 자질을 갖고 있는지를 관객들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이파이브>의 초능력자 완서는 태권인으로서 못다 펼친 꿈을 외롭게 간직한 소녀다. 어느 날 이식 받은 심장이 괴력의 에너지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평범과 비범 사이 짜릿한 질주를 시작하며 외로움을 넘어설 연대의 에너지 또한 기세 좋게 획득한다. 강형철 감독 특유의 유머와 속도감 사이에서 배우 이재인은 쾌활한 무브먼트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홍기원 감독의 <콘크리트 마켓>속 희로를 연기한 이재인은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황궁 마켓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기존의 질서를 뒤흔드는 인물 희로를 연기한 이재인은 어두운 베일 안에 감춰진 인물로 보인다. 무너진 세상 속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공간 속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거래로 삶을 연명하고 있다. 이 공간 속에는 부조리와 불법이 만연하고 인간성은 폐허 위에 부식되어 가고 있다. 아직은 어리게 보이는 한 소녀 희로가 이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 결연한 결심이 서린 얼굴은 그가 해야 할 일이 이곳에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망설임 없이 경직된 세계에 균열을 내기 시작하는 희로는 이재인의 몸을 빌어 탄력을 얻는다. 묵직하고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희로의 동선을 뒷받침하는 이재인의 액션 연기는 능숙하고 비극의 세계 안에서 요동치는 희로의 감정들은 이재인의 섬세한 표정 연기로 구체화된다. 배우 이재인이 연이어 극 안에서 원톱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는 조금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오래 준비한 이들이 정확한 수행으로 보여주는 산뜻한 쾌감마저 들 정도다.



슈퍼히어로 장르와 디스토피아 재난물 속 주연을 맡아 2025년을 보낸 배우 이재인이 또 다시 어떤 세계로 걸어 들어갈지가 자못 궁금해진다. 망설임 없이 극의 안으로, 주저함 없이 인물의 곁으로 향할 이재인의 신세계는 어쩌면 한국영화계가 아직 발을 내딛지 못한 신대륙을 발견할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의 뚜벅뚜벅에 실릴 경쾌한 육중함을 기다려 본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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