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희의 하루를 시작하며] 기록되지 않은 섬, 다섯 개의 호흡
입력 : 2025. 10. 15(수) 01:0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한라일보] 섬은 바다의 호흡 위에 떠 있는 존재다. 파도는 끊임없이 되돌아오고, 바람은 흩날리듯 사라지지만 언제나 새로운 결을 남긴다. 그 속에서 시간은 쌓이면서도 사라지고, 잊히는 듯하면서도 다른 층위를 드러낸다. 예술은 그 틈을 붙잡아 보이지 않는 흐름을 기록하며, 아직 언어화되지 못한 과정을 새로운 숨결로 되살린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아트페스타인제주는 '기록되지 않은 섬'이라는 제목 아래, 단순히 지나온 연혁을 정리하는 일을 넘어선다. 이 전시는 공식적인 기록에서 빠져버린 목소리, 표면 아래 묻혀 있던 제주의 이야기, 제도화되지 못한 기억들을 다시 불러낸다.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지워왔는가라는 질문은 곧 공동체의 윤리적 태도와 맞닿아 있다. 기록은 언제나 정치적 선택의 산물이기에 우리는 그 빈칸과 공백을 응시해야 한다.

전시는 다섯 개의 호흡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기원의 바다'에서는 탄생과 소멸이 이어지는 생명의 순환을 다룬다. 이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는 근본적 리듬을 드러낸다. 두 번째 '잃어버린 항로'는 지도에서 사라지고 기록에서 배제된 흔적들을 다시 부각한다. 부재와 결핍 자체가 증언이 되며, 보이지 않는 것의 무게를 감각하게 한다. 세 번째 '파편의 지도'에서는 기억과 시간이 파편적으로 중첩되며 새로운 문맥으로 재조립된다. 자료와 이미지, 소리와 텍스트가 얽히는 과정에서 관객은 해석자가 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생성한다. 네 번째 '나의 자리, 나의 섬'은 개인의 작은 좌표들이 모여 공동체의 지형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진, 일상적 흔적, 자전적 서사는 사소하지만 강력한 기록의 힘을 드러낸다. 마지막 '미래의 항해, 아카이브의 숨'에서는 예술가뿐 아니라 시민과 어린이가 남긴 흔적이 전시를 완성한다. 아카이브는 박제된 보관소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호흡임을 확인하게 된다.

10주년 아카이브 전시는 과거를 보존하는 기념비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다. 기록되지 않은 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사라진 것을 되살리는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불러오는 일이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라, 새로운 항해의 시작을 함께 준비하는 실천이다. 예술은 언제나 완결된 답을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틈에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공유하는 자리가 곧 민주적 기억의 장이 된다.

'기록되지 않은 섬'은 지난 10년의 축적을 한눈에 보여주는 연표가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드러내고, 사각지대를 비추며, 잊힌 목소리를 다시 부르는 시도다. 관객은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새로운 기록의 참여자가 된다. 이 항해의 지도는 완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여기에서 서로의 발걸음과 숨결을 겹쳐 놓으며, 앞으로 또 다른 여정을 그려나갈 것이다.

2025년, 아트페스타인제주는 그렇게 또 한 번의 출발선에 서 있다. <권주희 2025 아트페스타인제주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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