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훈의 문화광장] 머흐러지민 또시 다우곡
입력 : 2025. 10. 21(화) 01:0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한라일보] "머흐러지민 또시 다우곡 허민 된다게." 무너지면 다시 쌓으면 된다는 말로 제주 돌챙이(석공의 제주어)들의 인생철학이다. 제주의 척박한 자연환경 속 돌담이 종종 무너지는 상황이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며, 기존 돌담을 보완하며 계속해서 쌓아간다는 뜻이 담겨있다. 무너지고 남아 있는 돌담을 완전히 부수고 전체를 새로 쌓는 것과는 어감이 다르다.

그렇게 흑룡만리 제주 돌담은 처음에 만들어진 형태가 오늘날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쉽게 무너질 듯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긴 시간 다듬고 또 다듬어지며 버텨가고 있다. 영겁의 세월이 돌담에게 '너는 안전하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얼마 전, 서귀포 관광극장의 돌담 벽체 중 두 면이 무너져 내렸다. 서귀포시는 극장 옆 이중섭 미술관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진동이 전달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고, 철거를 빠르게 진행했다. 제대로 된 공론화가 없던 터라 도내 건축가들이 공사 현장에서 철거를 반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현재는 철거가 중단된 상태로 콘크리트 건축물과 야외극장의 돌벽 한 면만이 남아있다.

60여 년의 시간을 견고하게 버텨 온 돌벽은 장인들의 손길로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9m가 넘는 홑담이었다. 'ㄷ'자 형태였던 극장 공간은 1993년 화재로 지붕이 소실되면서 하늘을 품었고, 돌벽은 담쟁이로 덮이며 계절에 따라 분위기를 자아냈다. 건축과 자연이 절묘하게 만나 문화를 피워내던 곳. 제주 도민에게 예술적 감동을 선사하던 특별한 장소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까 아쉽다.

우리 사회가 안전성을 잣대로 결정 내릴 수 있다는 점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기존 구조물을 보강해서 안전하게 만드는 방안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쉽게 철거를 선언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위험하니 아예 없애고 다시 안전한 것을 만들자는 태도. 우리가 안전한 것과 안전하지 않은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는 것이 과연 얼마나 오래 유지되고 있는가. 작금의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손수 쌓은 돌담이 안전하지 않다며 부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끼리의 검증만으로 기계 문명에 의존하는 새 것을 단시간에 만들기 위해 애쓴다. 안타깝게도 미래 세대는 우리가 오늘 저지른 것을 그들의 새로운 가치 기준에 맞지 않다며 부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를 무시하고 만들어 낸 현재의 결과물이 또다시 사라진 과거가 되면서 파괴의 역사만 반복될 뿐이다.

역설적으로 불안함을 인정하고 나아가 그것을 포용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안전함의 가치가 발현되는 것 아닐까? 매 순간 불안한 상태를 꿰어가며 끊임없이 보완해 나가는 노력 자체가 안전함을 향한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위태롭게 남아있는 서귀포 관광극장의 돌벽 한 면이 철거되지 않고도 진정한 '안전의 길'로 이어질 수 있기를. 머흐러지민 또시 다우곡. 제주 돌챙이들 삶의 철학에서 어렴풋한 길이 보인다. <현승훈 다랑쉬 건축사사무소>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60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오피니언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