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7)곤을동4·3유적지~화북환해장성~화북포구~삼양포구~삼양검은모래~삼양선사유적지~원당봉 정상~불탑사~남생이못~닭머르(12.2㎞)
입력 : 2025. 10. 24(금) 02: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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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자연과 역사를 잇는 기억의 길을 걷다

지난달 27일 진행된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7차 참가자들이 원당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정자
별도봉서 일제 침략 상흔 마주하고
화북포구에서 되새긴 ‘을묘의 기억’
구름 걷힌 원당봉 정상서 깨달음…
[한라일보] 가을비가 깊다. 2025년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7차'가 도심 속 공원 사라봉을 시작으로 진행됐다. 김명자 안내자는 초입에서 고르지 못한 날씨에도 참여해 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미끄럼 주의 등 안전에 심혈을 기울여주길 강조하며 오늘의 일정을 설명하고 첫발을 내딛는다. 오붓한 오솔길로 들어서니 물을 먹은 초록의 나무들이 우둑우둑 우리를 호위하듯 서 있다.
별도봉 7호 동굴진지 앞에서 멈췄다. 왠지 으슥하다. 안내자는 태평양전쟁 말기 궁지에 몰린 일본군이 파놓은 동굴진지에 대해 설명했다. 침략 전쟁의 역사적 단면을 잘 보여주는 군사 유적이며, 다른 오름과 해안에도 유사한 동굴진지가 있다. 근현대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교육의 장소로서 기억하자고 설명을 이었다.
우비 안에서 땀인지 물인지 범벅이 돼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어느덧 별도봉 해안을 넘어 곤을동 4·3유적지에 이른다. 조성된 유적지는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있어 근접하기 어려웠지만 안내판에 설명이 잘 쓰여있어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포고령과는 무관하게 해안마을 주민들이 희생된 이유를 안내자의 설명으로 알 수 있었다.
다시 해안의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스레 걸었다. 머릿속은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며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어느 곳 하나 성하지 않았던 제주의 땅 그리고 역사…. 화북 포구로 접어드는 바닷길 가장자리에는 비 맞은 작은 들꽃들과 어우러진 숨비기나무 꽃망울이 영롱하다. 들꽃이 마음에 드는 까닭은 꽃의 색이 고운 때문만은 아니다. 꽃이 선명한 색을 발현하는 것은 성장과정에서 환경적 고난과 변화를 모두 품은 결실임을 안다. 고난의 역사를 이겨낸 제주인 들도 그러하다.
이중돌담으로 쌓인 환해장성을 바라보니 그 옛날 고려 삼별초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바다에선 궂은 날씨에도 해녀들이 붉은 테왁에 의지해 물질을 한다. 젖은 날개를 털어내는 왜가리 한 마리가 쓸쓸하게 보이는가 하면, 짝을 이뤄 꽁지를 하늘을 향해 자맥질하는 '흰뺨검둥오리'의 기이한 모습에 일행들은 웃음보를 터뜨린다.
화북포구에 이르니 '문화제'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바닷바람에 펄럭인다. 암초가 많지 않아 배를 접안하기 쉽고 풍부한 용천수가 있어 화북포구는 예전에 많은 문물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해신사 안내판에 모여 을묘대첩의 승전사를 듣는다. 해신사는 문물이 많이 오갔던 옛 시대에, 배의 출항에 앞서 국가적인 의례에 버금가는 안전기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지금은 마을제로 전환해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있다. 돌담이 잘 남아 있는 화북진성은 당시의 군사방어 규모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장소다.
발길을 옮기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기억하며 걷는다. 빗줄기가 잦아들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산뜻한 기운으로 바뀐다. 삼양해변에 이르니 맨발로 '어싱' 운동을 즐기는 일행들이 눈에 띈다. 일행 중에 한 분이 이곳에 검은 모래의 기원에 대해 묻는다. 친절한 해설사가 설명을 잘해준다. 용출량이 많은 수원지가 있는 삼양은 인구 밀도가 높다. 곳곳에 용천수가 있어 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고 쓰임새와 모양에 따라 붙여진 물 이름들이 이색적이다. 샛도리물, 궷물, 새각시물 등 물이 귀했던 시대에 물에 대한 문화적 요소들도 특별하다. 잊혀가는 물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벌랑새각시물' 비석에 새겨진 '정인수'님의 시를 옮겨 본다.
벌랑 새각시물에서 술잔을 들면
술잔에 파도가 된다.
서동 파도는 벌랑!
중동 파도는 거문여!
동동 파도는 사근여!
파도가 잦아들면 누각 아래로
새각시 멱감는 소리…
새각시물은 물이 깨끗해 정화수(井華水)로 쓰였고, 이웃마을에서도 물을 길어 갈 정도로 풍부했다고 안내자는 설명한다. 먹는 물. 채소 씻는 물. 목욕물 등으로 구역이 뚜렷이 나뉘어져 있다.
시원한 기분으로 원당사 입구에 이른다. 주말마다 열리는 장날을 맞아 온갖 농산물들이 좌판에 펼쳐져 있다. 뒤로 돌아 앞에 우뚝 선 원당봉을 마주 한다. 원당봉 유래는 오름 허리에 원나라 당인 원당이 세워진 연유에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문강사, 불탑사, 원당사 3개의 다른 종단이 불사할 정도로 3첩7봉의 기세가 느껴진다. 이제까지 걸어왔던 길과 대비되는 가파른 고뇌의 절로 가는 길이다. 한 고비를 꺾어 데크에 올라서니 멀리서 시작 지점인 별도봉과 시가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는 참가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다시 정상에 있는 정자를 향해 무거운 행군이 시작된다. 땀이 식었던 머리에서 뜨거운 액체가 떨어져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시선은 습관처럼 이곳 식생들이 자라는 방향 쪽으로 향한다. 실거리나무, 팽나무, 멀구슬나무 등이 능선에서 관찰되는데, 나뭇잎을 몇 개 남겨놓지 않은 벚나무에 철 모른 꽃이 피어있다. 정자에 이르러 안내자가 점심시간을 알린다. 구릉지 아래에서 올라오는 연무가 주변을 감돌아 신선이 된듯하다. 환상적이고 오붓한 식사시간을 마무리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하산한다. 분화구 습지 앞에 문강사가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주변을 보니 분화구가 북쪽으로 벌어져 있다. 한 단계 밑에 자리 잡은 원당사 일주문을 통해 불탑사로 향한다. 안내자는 현무암을 불에 굽고 다듬어 세운 불탑사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원나라 기황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찰 내를 안내했다.
사찰을 두른 울담에 꽃무릇, 수선화, 맥문동이 싱그럽고, 잘 관리된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운치를 더 해 아늑함이 느껴진다. 원당봉의 기를 받고 발걸음이 가볍다. 비가 그친 진드르 넓은 길은 시원하다. 참가자들은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소담스럽게 웃음꽃을 피워낸다.
'남생이못'에 이르러 정자에 앉아 주민들의 남생이못 개설에 대한 역사를 듣고 해안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닭의 머리를 닮아 지명이 된 '닭머르' 절경은 압도적이다. 용암의 풍화 작용에 의해 단단한 부분만 남은 모습을 설명 듣는다. 억새가 출렁이는 해안의 절경을 뒤로 하고 우중의 축축함을 털어내며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한다.
<김정자 글 쓰는 자연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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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포구에서 되새긴 ‘을묘의 기억’
구름 걷힌 원당봉 정상서 깨달음…
[한라일보] 가을비가 깊다. 2025년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7차'가 도심 속 공원 사라봉을 시작으로 진행됐다. 김명자 안내자는 초입에서 고르지 못한 날씨에도 참여해 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미끄럼 주의 등 안전에 심혈을 기울여주길 강조하며 오늘의 일정을 설명하고 첫발을 내딛는다. 오붓한 오솔길로 들어서니 물을 먹은 초록의 나무들이 우둑우둑 우리를 호위하듯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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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비 안에서 땀인지 물인지 범벅이 돼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어느덧 별도봉 해안을 넘어 곤을동 4·3유적지에 이른다. 조성된 유적지는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있어 근접하기 어려웠지만 안내판에 설명이 잘 쓰여있어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포고령과는 무관하게 해안마을 주민들이 희생된 이유를 안내자의 설명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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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원당봉에서 별도봉과 시가지를 조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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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닭머루를 탐방하고 있다. |
이중돌담으로 쌓인 환해장성을 바라보니 그 옛날 고려 삼별초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바다에선 궂은 날씨에도 해녀들이 붉은 테왁에 의지해 물질을 한다. 젖은 날개를 털어내는 왜가리 한 마리가 쓸쓸하게 보이는가 하면, 짝을 이뤄 꽁지를 하늘을 향해 자맥질하는 '흰뺨검둥오리'의 기이한 모습에 일행들은 웃음보를 터뜨린다.
화북포구에 이르니 '문화제'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바닷바람에 펄럭인다. 암초가 많지 않아 배를 접안하기 쉽고 풍부한 용천수가 있어 화북포구는 예전에 많은 문물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해신사 안내판에 모여 을묘대첩의 승전사를 듣는다. 해신사는 문물이 많이 오갔던 옛 시대에, 배의 출항에 앞서 국가적인 의례에 버금가는 안전기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지금은 마을제로 전환해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있다. 돌담이 잘 남아 있는 화북진성은 당시의 군사방어 규모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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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머루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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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봉 동굴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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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구 습지(문강사 앞). |
벌랑 새각시물에서 술잔을 들면
술잔에 파도가 된다.
서동 파도는 벌랑!
중동 파도는 거문여!
동동 파도는 사근여!
파도가 잦아들면 누각 아래로
새각시 멱감는 소리…
새각시물은 물이 깨끗해 정화수(井華水)로 쓰였고, 이웃마을에서도 물을 길어 갈 정도로 풍부했다고 안내자는 설명한다. 먹는 물. 채소 씻는 물. 목욕물 등으로 구역이 뚜렷이 나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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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을동 4.3유적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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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생이못 |
시선은 습관처럼 이곳 식생들이 자라는 방향 쪽으로 향한다. 실거리나무, 팽나무, 멀구슬나무 등이 능선에서 관찰되는데, 나뭇잎을 몇 개 남겨놓지 않은 벚나무에 철 모른 꽃이 피어있다. 정자에 이르러 안내자가 점심시간을 알린다. 구릉지 아래에서 올라오는 연무가 주변을 감돌아 신선이 된듯하다. 환상적이고 오붓한 식사시간을 마무리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하산한다. 분화구 습지 앞에 문강사가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주변을 보니 분화구가 북쪽으로 벌어져 있다. 한 단계 밑에 자리 잡은 원당사 일주문을 통해 불탑사로 향한다. 안내자는 현무암을 불에 굽고 다듬어 세운 불탑사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원나라 기황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찰 내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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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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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비기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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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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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
<김정자 글 쓰는 자연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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