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예술로서의 4·3과 여성서사
입력 : 2025. 12. 08(월) 21: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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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지난 20일부터 제3회 4·3 영화제가 열렸다. '올해는 언제 열리지' 라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작년에 비해 다소 늦어진 것 같다. 개막작은 '가자지구'의 이야기를 다룬 '그라운드 제로'였다. 인권과 평화라는 4·3의 가치를 고려하여 선정된 것 같았다. 관심이 가는 영화는 단연코 '한란'이다. 4·3에 대한 극영화라니 어떻게 다루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란'이라는 제목도 신선하였다. 사전에 매진됐다고 한다.
이 영화는 1948년 가을부터 그다음 해 봄까지 진행되었던 초토화 작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요 인물은 '아진'과 그녀의 딸 '해생'이다. 모녀 간의 4·3 경험담을 다루었는데, 이 외에 주요한 여성 인물로는 애기 심방 역할을 맡고 있는 '봉순'이다. 4·3은 기본적으로 남성서사로 인식된다. 해방정국의 정치적 혼란과 이념 갈등은 남성들의 이야기가 되기 쉽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4·3을 재해석한다.
'아진'은 기존의 4·3 작품에서는 볼 수가 없던 인물 유형이다. 여성은 주로 수난의 상징이 되거나, 드물기는 하지만 항쟁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아진'은 모성을 중심으로 그 상황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자식과 가축(돼지)이 어우러진 장면은 그녀의 행복했던 과거이며 미래이다. 그녀의 휴머니즘적인 사고는 이데올로기 문제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나타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싸우지 않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진'의 세계관은 거부감 없이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은 남는다. 우선 남성들의 서사가 주로 폭력적인 모습으로 비추어 진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 대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다음으로 그녀에게 이상형의 가족 형태는 부부와 자식으로 표상되는 핵가족이다. 행복한 가족의 이미지에 할머니의 모습이 없다는 점이다.
모녀가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가다보면 동굴, 중산간, 한라산과 바다 등 제주의 곳곳을 만나게 된다. 그 공간은 학살이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하고, 제주민의 공동 생활을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제주자연은 아름다운 배경으로만 소비되지는 않는다. 가령 고생 끝에 다시 만난 모녀의 장면에서, '아진'은 '해진'에게 나무에서 채취한 생명체를 먹이며 '어멍'이라고 말해보라고 한다. 장엄한 제주의 오름과 한라산이 이어지게 되고, 자연은 사람을 품고 길러내는 모성의 모습을 띄게 된다. 제주의 산과 바다는 생명과 삶의 역사를 간직한 상징으로 나타난다.
이 영화에는 심방이 등장한다. 무속이 강한 제주에서 심방의 등장은 자연스러워 보이며, 그 역할도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애기 심방 '봉순'이의 사고와 행동에는 제주인의 정서와 지혜가 담겨있다. 심방은 산을 내려가려는 '아진'에게 현실적인 선택을 하도록 조언을 하거나, 산을 내려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등을 시행한다. 샤머니즘이 외부에서 들이닥친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샤머니즘은 제주공동체의 보존과 안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해생'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와는 달리, 희망적으로 많은 부분이 처리된다. 어린 '해생'은 생명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토벌군이 모녀에게 총부리를 겨눌 때 어린아이는 가볍게 뿌리친다. '어멍'이 미안하다고 하거나 '심방'이 '해생'의 고생을 헤아릴 때, '해생'은 오히려 그들의 눈물을 닦아준다. '해생'이 어른들을 위로한다. 어린아이의 순진함이 이러한 행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4·3 예술은 그 당시의 비극을 증언하고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감독도 이 영화가 교육적 역할을 담당하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그동안의 4·3 예술 작품이 이데올로기와 역사에 억눌려 상상력에 제약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는 비교적 역사에 대한 '재현의 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사와 인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술은 그럴듯한 허구이다. 예술의 이러한 성격이 4·3의 재해석과 현재적 의미를 풍부하게 한다.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러한 시도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토대가 이미 확보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양철수 인문예술연구소 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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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진'은 기존의 4·3 작품에서는 볼 수가 없던 인물 유형이다. 여성은 주로 수난의 상징이 되거나, 드물기는 하지만 항쟁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아진'은 모성을 중심으로 그 상황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자식과 가축(돼지)이 어우러진 장면은 그녀의 행복했던 과거이며 미래이다. 그녀의 휴머니즘적인 사고는 이데올로기 문제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나타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싸우지 않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진'의 세계관은 거부감 없이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은 남는다. 우선 남성들의 서사가 주로 폭력적인 모습으로 비추어 진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 대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다음으로 그녀에게 이상형의 가족 형태는 부부와 자식으로 표상되는 핵가족이다. 행복한 가족의 이미지에 할머니의 모습이 없다는 점이다.
모녀가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가다보면 동굴, 중산간, 한라산과 바다 등 제주의 곳곳을 만나게 된다. 그 공간은 학살이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하고, 제주민의 공동 생활을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제주자연은 아름다운 배경으로만 소비되지는 않는다. 가령 고생 끝에 다시 만난 모녀의 장면에서, '아진'은 '해진'에게 나무에서 채취한 생명체를 먹이며 '어멍'이라고 말해보라고 한다. 장엄한 제주의 오름과 한라산이 이어지게 되고, 자연은 사람을 품고 길러내는 모성의 모습을 띄게 된다. 제주의 산과 바다는 생명과 삶의 역사를 간직한 상징으로 나타난다.
이 영화에는 심방이 등장한다. 무속이 강한 제주에서 심방의 등장은 자연스러워 보이며, 그 역할도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애기 심방 '봉순'이의 사고와 행동에는 제주인의 정서와 지혜가 담겨있다. 심방은 산을 내려가려는 '아진'에게 현실적인 선택을 하도록 조언을 하거나, 산을 내려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등을 시행한다. 샤머니즘이 외부에서 들이닥친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샤머니즘은 제주공동체의 보존과 안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해생'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와는 달리, 희망적으로 많은 부분이 처리된다. 어린 '해생'은 생명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토벌군이 모녀에게 총부리를 겨눌 때 어린아이는 가볍게 뿌리친다. '어멍'이 미안하다고 하거나 '심방'이 '해생'의 고생을 헤아릴 때, '해생'은 오히려 그들의 눈물을 닦아준다. '해생'이 어른들을 위로한다. 어린아이의 순진함이 이러한 행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4·3 예술은 그 당시의 비극을 증언하고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감독도 이 영화가 교육적 역할을 담당하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그동안의 4·3 예술 작품이 이데올로기와 역사에 억눌려 상상력에 제약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는 비교적 역사에 대한 '재현의 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사와 인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술은 그럴듯한 허구이다. 예술의 이러한 성격이 4·3의 재해석과 현재적 의미를 풍부하게 한다.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러한 시도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토대가 이미 확보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양철수 인문예술연구소 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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