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혁의 건강&생활] 치매를 이기는 힘, 인지예비능
입력 : 2026. 04. 08(수) 01:00
박준혁 hl@ihalla.com
[한라일보] 뇌에 병리적 변화가 생겨도 그 영향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정도의 뇌 손상이 있더라도 누군가는 치매로 고통받는 반면, 누군가는 일상을 유지하며 큰 어려움 없이 지낸다.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인지예비능(Cognitive Reserve)이다.

이 개념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1980년대 후반의 사후 뇌 부검 연구로, 알츠하이머병의 전형적인 병변이 광범위하게 발견됐음에도 생전에는 인지 기능이 정상이었던 사례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평생에 걸친 교육과 복잡한 직업 활동, 활발한 사회적 관계가 이러한 회복력을 만들어낸다고 봤다.

인지예비능은 쉽게 말해 노화나 뇌 질환으로 인한 뇌 손상에도 불구하고 교육, 학습, 사회적 활동 등을 통해 축적된 신경망의 적응력을 활용해 인지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뇌의 체력을 의미한다. 뇌세포가 손상되면 정보 처리 능력이 급격히 저하된다. 그러나 인지예비능이 높은 사람은 남아 있는 신경망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거나 손상된 회로를 대신할 우회 경로를 형성해 과제를 수행한다. 그래서 인지예비능은 치매의 발병 시기와 경과에도 깊이 관여한다.

인지예비능이 높을수록 뇌 손상이 있어도 증상 발현이 지연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일단 증상이 시작되면 이미 상당한 손상이 누적된 상태이므로, 이후에는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

다행히 인지예비능은 타고난 유전적 요인보다 후천적 노력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핵심은 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활동에 있다. 인지예비능은 생애 전반에 걸쳐 향상시킬 수 있으며, 특히 교육은 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학습 과정에서 형성되는 풍부한 신경 연결망과 효율적인 정보 처리 능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문제 해결과 의사 결정, 대인 관계를 요구하는 직업적 경험은 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해 인지적 유연성을 높인다. 언어 능력 역시 중요한 요소로,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 인지적 전환 능력이 강화돼 치매 발병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연구들이 보고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관계 유지와 다양한 여가 활동은 뇌에 지속적인 자극을 제공하고 새로운 신경 회로의 형성을 촉진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지예비능이 평생에 걸쳐 변화하고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젊은 시절부터, 혹은 지금 이 순간부터 이어가는 지적 활동과 건강한 생활 습관은 훗날 뇌가 손상에 직면했을 때 이를 견디게 해주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낯선 일에 도전하면 뇌의 가소성이 활성화돼 인지예비능이 증가한다. 인지예비능은 태어날 때 정해진 고정된 능력이 아니라, 삶의 선택과 습관에 따라 키워갈 수 있는 역량이다. 따라서 젊을 때부터 학습과 지적 활동을 지속하고, 중년 이후에도 사회 참여와 새로운 경험을 이어가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박준혁 제주도광역치매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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